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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백지선,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by Jaime Chung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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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백지선,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이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살면서 내가 직접 낳았든 아니든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정상 가족’의 기준을 벗어난,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여 주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눈여겨 보고 있던 차에, 밀리의 서재에서 발견해 읽게 됐다.

이 책의 전체 평부터 말하자면, 소재와 주제는 훌륭하지만 글 자체는 아마추어 같다. 비혼이지만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한 여성의 이야기, 이것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많은 이들이 귀 기울여 듣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이고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말 딱 적당한 시기를 잘 타고났다. 문제는 글이 그 소재를 잘 살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내가 기대한 것은 저자가 비혼 여성으로서 아이를 두 명이나 입양해 키우면서 어려웠던 점, 힘들었던 점, 그 와중에 이 아이들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점, 기뻤던 점 등등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서 느끼는 감동과 사랑 등을 표현하며 타인에게 입양에 관한 정보를 주는 그런 글 말이다. 자신이 두 아이를 입양할 때 어떤 점이 어려웠다든가, 이런 점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사회에 대한 코멘터리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내가 정작 읽은 건,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글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문제는 글이 많이 정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판권 페이지를 보니 지은이와 펴낸이가 똑같던데, 저자가 20년간 편집자로 일해 왔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자기 글을 편집한 듯하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객관적으로 자기 글을 보고 완벽하게 고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어색한 부분들이 많았다.

이 책은 책 중간에 삽입된 저자 가족 사진을 기점으로 앞과 뒤가 완전히 다른 책 같다. 앞부분은 저자가 두 아이를 입양할 때 어땠고, 본인이 뭘 느꼈고, 아이들은 어떠하다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반면에 뒷부분은 갑자기 이 사회와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나는 다음 세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저자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가? 둘째, 다른 책이나 영화, TV 프로그램 언급을 많이 하는데 이게 정말로 저자가 하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셋째, 저자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가 이 책의 주제와 상관이 있는가?

 

첫 번째, 전문적인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저자는 두 아이를 입양한 사람일 뿐인데 자신이 전문 분야가 아닌 부분에 관해 자기 의견을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피력한다는 느낌을 준다.

내가 사귄 남자들은 모두 선량한 편이었지만, 같은 길을 동행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어쩌다 마주친 인생길에서 서로 잠시 힘이 되어주면 좋지만, 억지로 여정을 바꾸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나는 중학생 때 좋아했던 남자애를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수년 전에 내가 왜 그 애를 좋아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 자신이 너무 변했기 때문이었다. 성인기에 사귄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남자친구가 군대 간 사이에 마음이 변한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20대 초중반은 급격하게 삶이 변화하는 시기이니 1, 2년 떨어져 있으면, 아니 계속 사귀고 있더라도 헤어지기 쉽다. 최신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만 25세경까지 급격하게 발달한다. 만 25세까지도 뇌는 청소년기 질풍노도의 시기다. 뇌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으니 연인 관계가 오래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삼십 대 이후에도 인생은 파란만장하고 뇌는 계속 변화한다.

이 문단에서 그래서 도대체 하고 싶은 핵심 이야기가 뭔지도 감이 안 잡히는데, 뇌과학 이야기는 왜 꺼냈는지는 더더욱 오리무중이다. 본인이 과학자도 아닌데 뇌과학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20대 초중반은 급격하게 삶이 변화하는 시기라 헤어지기 쉽다는 얘기까지만 해도 괜찮았을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는 넘어갈 만하다. 우리나라가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있는데 그에 대해 저자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부분은 어딘가 께름칙하다.

그러나 형제복지원의 경우 처음부터 설립과 운영에서 범죄적 성격이 있었던 반면, 일반적인 보육시설과 입양기관을 같은 차원에서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해외 입양을 장려하는 상황에서, 실적에 눈이 먼 일부 보육시설 운영자가 입양기관 담당자들, 관공서 공무원들이 서류 작업을 소홀히 하고 위조를 한 사례들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조직적 범죄 차원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 부모가 보육원에 맡긴 경우라도 연락이 끊어진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어차피 친생부모가 다시 아이를 찾을 잃은 없다고 생각했거나 해외 입양을 가는 편이 가난한 부모가 키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서류 작업을 소홀히 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정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낮은 시절이었다. 해외 입양인이 현대 한국을 방문하면 이렇게 잘살고 행정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가 왜 그토록 많은 아동을 해외로 보냈는지, 왜 친부모를 그토록 찾기 어려운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는 지금과 상황이 크게 달랐다.

과거의 잘못된 해외 입양 관행에 대해 ‘고아 수출’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해외에 입양되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당시 우리나라의 인권 수준이 후진적이었고 절차에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수많은 양부모와 위탁모와 입양기관 종사자는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며 해외 입양이 그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 해외 입양과 관련된 사람들을 악의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대중적인 판타지와 큰 차이가 있다. 현실은 달랐더라도 대중적 인식이 그러했으므로 해외 입양 관계자들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

부유한 외국인의 입양 수수료와 후원금으로 복지사업을 했던 과거의 역사를 ‘고아 수출’로 매도하기보다는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오히려 다른 나라를 도와줘야 할 상황이 된 현실을 축복하고 복지사업 확대의 계기로 삼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해외 입양 수수료가 비싸다는 점 때문에 돈벌이를 위해 아이들을 외국에 팔았다고 얘기하는데, 사회복지법인이 수익을 올려봤자 개인이 착복하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 인건비와 사회사업비로 지출할 것이다. 회계감사를 철저히 해서 방만하게 자금을 운용했는지 점검하고, 누군가 횡령한 사람이 있다면 처벌할 문제다. 입양 수수료를 적법하게 사회사업을 하는 데 사용했다면, 당시 복지에 재정을 투입할 여력과 의지가 부족했던 우리나라 상황을 탓할 일이다. 전문인력의 통역비나 인건비 등을 제외하더라도 국외 입양을 가기까지 약 2년간 아기를 키우는 데만 최소한 수천만 원 이상 든다.

아니, 그러니까 저자가 그 당시 친생부모나 보육시설 운영자, 입양기관의 상황을 어떻게 잘 안다고 이렇게 전문가처럼 말할 수 있는 건지 정말 궁금하다. 이쪽 문제의 전문가도 아닌데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해도 되는 건가? 입양아들이 한국 내의 새 가정을 만나든, 해외에서 새 가정을 찾든, 어느 쪽이 낫다고 내가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나도 그에 대해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당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 간 것은 많은 양부모, 위탁모와 입양기관 종사자들이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며 해외 입양에 그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그 종사자들이 아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제1순위에 두지 않고 어떻게든 수익을 내려고 아이들을 해외 입양 보낸 것인지 어떻게 안다고 그렇게 단적으로 말하냐는 것이다. 저자가 굉장히 입양 기관 종사자들을 두둔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그래서 더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단 한 번의 검색만으로 “과거 입양기관들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기 위해 실제 가족 정보, 출생 정보와 다른 내용을 기재하기도 했다. 입양국의 규정에 맞춰 합법적 서류를 구비하기 위해 허위 정보를 기록해 아이들을 ‘법적 고아’로 만든 것이다.”라는 주장이 담긴 BBC 뉴스 코리아의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정말로 그 당시 입양 기관 관련자들이 아이를 최우선순위로 놓고 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외 입양을 보냈다?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더라도 그 와중에 저질러진 사문서 위조 등은 범죄가 아닌가? 확실한 객관적 자료도 보여 주지 않고서 어떻게 그들을 옹호하는지 나는 잘 이해가 안 되서, 특히 이런 부분이 멋모르고 그냥 책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독자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지 않나 걱정이 됐다.

 

두 번째, 굳이 이야기의 흐름에 핵심적이지도 않은데 다른 책이나 영화, TV 프로그램을 과다하게 언급한다. <어머니의 나라>라는 책을 읽고 깊이 감명받았는지 모계 가족 형태를 가진 모쒀족 얘기를 정말 자주 언급하는데 처음에는 ‘내가 지금 모쒀족에 관한 논픽션 책을 읽는 건가?’ 하고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언급되는 미디어에서 다루어진 주제가 저자가 말하려는 바가 크게 상관이 없는데도 그냥 자신이 그 미디어를 알고 그것에 자기가 말하려는 바와 미세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다른 미디어를 끌어들인다. 예컨대 이런 부분이다.

나는 리안 감독의 <색계>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해서는 안 된다. 일제의 앞잡이를 암살할 기회를 잡고자 일부러 유혹해서 애인이 된 주인공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그에게 넘어감으로써 자신과 동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아이를 학대하는 배우자를 옹호하는 사람은 괴물이 아니다. 학대를 인정하는 순간 가정이 파탄 나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를 지키는 선택을 하려면 평소에도 아이가 무조건 1순위여야 가능하다.

그러니까 위에서 인용한 문단 앞뒤 맥락에서 하고 싶은 핵심적 이야기는 ‘배우자/애인보다 아이가 1순위여야 아이를 최우선으로 지킬 수 있다.’이다. 그런데 굳이 <색계>나 (이 바로 다음 문단에서 언급되는) 1996년도 영화 <돈 크라이 마미(Bastard Out of Carolina)>를 주워섬겨야 할까? 이런 예시는 끝이 없지만, 딱 하나만 더 보여 드리겠다. 내가 읽으면서 정말 저자가 글을 못 쓰고 편집도 못한다고 느끼게 만든 문단이다.

선수를 돈으로 보는 스포츠 산업의 에이전트가 개과천선하고 성공도 거두는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싱글맘에게 양육된 운동선수는 싱글맘을 사귀는 주인공에게 싱글맘은 성스러운 존재(A single mother, that’s a sacred thing, man.)라고 말한다. 주인공이 여자친구에 대한 감정에 확신이 없는 채로 얼떨결에 청혼하고 결혼 후에도 겉돌자 그의 본심을 간파하고 솔직해지라고 조언한다. 어정쩡한 태도로 상처를 주지 말고 그녀를 진지하게 대하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진실해지기로 하고 둘은 잠시 헤어진다. 나중에 주인공이 일에도 성공하고 사랑에도 확신을 느껴 다시 두 사람은 결합하게 된다. “당신은 나를 완성시켜 줘(You complete me).”라는 유명한 대사와 함께. 주인공은 그토록 갈망하던 성공을 거머쥐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네? 싱글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제리 맥과이어> 줄거리를 늘어놓는다. 아니, 싱글맘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이 흔히 들어 보지 못했거나 어려운 개념이면 그것을 쉽게 설명하고자 대중에게 친근한 영화를 언급하며 설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즘 시대에 싱글맘이 설명이 필요한 용어도 아닌데, 도대체 글의 흐름과 상관도 없는 (참고로 저 인용한 문단 다음 첫 문장은 “싱글맘은 동정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다.”이다) 인용은 왜 하는 건가? 이 책은 최소한 편집 과정에 제3자의 객관적인 눈이 절대로 필요함을 방증한다. 저자 본인이 편집자였으니 자기 글을 자기가 손볼 수 있다고 너무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그 결과물은 그 자신감을 따라가지 못한 것 같다. 비꼬는 게 아니고, 자기가 쓴 글은 너무 익숙하고 논리 구조가 자기 눈에는 너무 그럴듯해 보여서 고치는 게 쉽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이 ‘영화나 책 등 대중 매체에 묘사되는 부모의 모습’ 뭐 이런 제목의 글이라면 전혀 어색할 게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콘셉트가 아니지 않는가. 도대체 왜 ‘나 이런 영화/책/TV 프로도 알아요’라고 자랑이라듯 하듯 끊임없이 다른 작품을 인용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거야말로 좋은 편집자의 손길이 간절하게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저자의 머릿속에선 이런 작품들을 언급하는 게 완벽하게 말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너무너무 어색하고 불필요하다. 이 문단을 비롯해 책 후반부의 많은 부분이 ‘글 고쳐쓰기’, 특히 ‘주제와 무관한 부분 삭제하기’를 연습하기 위한 예문으로 쓰는 게 적절하겠다 싶었다.

 

세 번째, 이 책의 후반부는 ‘삼남매를 서울대에 보낸 엄마표 공부법’ 같은 제목을 달고 나오는 시중 학습법 책을 연상시킬 정도로 저자의 학습법이 많이 언급된다. 위에서 설명한 첫 번째 단점(자신이 전문가가 아닌데 자신의 의견을 너무 강력하게 피력함)과 조금 겹치기도 하는데, 교육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참고로 저자의 아이들은 이 책이 출간된 시점에서 아직 고등학생도 안 된 걸로 알고 있다. 뭔가 ‘이런 학습법을 따라 할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주장할 만한 결과가 아직 안 나왔다는 뜻이다) 너무 자연스럽게 자기 철학을 주장하기에 나는 너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단들을 만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한단 말인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가 쓴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은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실을 잘 분석한 책이다. 왜 한국 사람은 영어를 잘하기 어려운지, 왜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며 이중언어 사용자(bilingual)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깬다.

(…)

이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와 맞닿아 있다. 애초에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추구하며 학생 대부분이 학교에서 열등감과 좌절감부터 배운다. 사실 이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자식이 생긴다면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지식과 교양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열등감만 가르치는 학교에 다니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육의 문제는 사회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학교가 사회의 다른 부문들에 비해 특별히 더 썩어 있거나 문제가 더 심한 것도 아니다. 학교에 대해 안 좋은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요즘 학교는 내가 다닐 때보다 엄청나게 좋아졌다. 특히 초등학교는 일종의 복지센터로 변모한 것 같다. 일반학교에 대한 대안도 마땅치 않다.

놀라셨나요? 첫 문단 이후 중략한 두 번째 문단에서 학교 수업 시간만으로는 영어에 능통해지기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더니, 세 번째 문단(위 인용문에서 생략 기호 이후에 등장하는 문단)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문단은 ‘요즘 학교는 내가 다닐 때보다 엄청나게 좋아졌다.’라는 쓸데없는 얘기로 빠진다. 하…

보통 독자들이 ‘비혼이면서 두 아이를 입양한 어머니’에게 기대하는 것은 비혼인데 입양하기가 어려웠는지 어땠는지,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면서 후회는 없었는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기억에 남는 일화는 있는지 하는 것들일 테다. 그런데 자신의 교육법을 늘어놓는 저자를 보고 나는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자기가 키운 아이가 한 세 명쯤 되고 그 모두가 서울대 또는 그 이상으로 저명한 교육 기관에 입학한다 할지언정,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교육법이나 비법이 그 학부모에게 있다고 보기 어려울 텐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저자의 아이들은 아직 고등학생도 안 됐다. 이 교육법이 효과적인지 어떤지를 논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입 아프게 또 말하자면 저자는 교육 전문가도 아니다. 그런데도 지면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어필한다. 전체적으로 비판적 사고를 겸비하고 읽지 않으면, 깜빡하는 사이에 ‘어 그런가?’ 하고 넘어갈 만한 곳이 많다.

 

정리하자면, 글의 소재는 좋으나 글이 많이 정제되지 않았기에 독자로 하여금 강한 비판적 사고를 요한다. 이 주제를 가지고 더 잘 쓴 글이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런 책을 안다면 이 책 대신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다(아시는 분이 있다면 추천해 주시길). 책의 앞부분, 그러니까 내가 위에서 말한 단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 책의 앞부분만 읽는다면 훈훈하다고 느끼고 심지어 감동을 받을 수도 있지만, 뒷부분은 정말 아니다. 이 책은 앞의 절반 정도만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전반적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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