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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김겨울 외, <요즘 사는 맛>

by Jaime Chung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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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겨울 외, <요즘 사는 맛>

 

 

<요즘 사는 맛>은 배달의민족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에 실린 여러 작가들의 ‘음식’ 이야기이다. 제목 그대로 요즘 뭘 먹고 사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에 얽힌 추억이 있는지 하는 이야기. 김겨울, 김현민, 김혼비, 디에디트, 박서련, 박정민, 손현, 요조, 임진아, 천선란, 최민석, 핫펠트, 이렇게 열두 명의 작가들이 열두 가지 취향의 ‘맛있는 이야기’를 요리해 내보인다.

나는 여러 작가들의 글을 모은, 말하자면 ‘컴필레이션 앨범’ 같은 책을 읽을 때는 두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가? 둘째, 그 책을 통해 새로 마음에 들게 된 작가가 있는가? 첫째는 책을 고를 때 중요하고, 둘째는 책을 읽고 평가를 내릴 때 중요하다.

이 책엔 이미 내가 좋아하는 김혼비 작가님이 있으며, 김겨울 작가님은 책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을 읽어 본 적 있어서 괜찮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조 작가님도 여기저기서 글을 읽은 기억이 나서 친근했다. 그 외엔… 정말 한 명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읽다 보니 끌리는 문체가 있어 살펴봤더니, 아하! 박서련 작가님이 내가 재밌게 읽은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를 쓰신 분이구나! 개성적인 문체를 좋아하는 나는 내 마음에 드는 문체를 가진 작가를 발견하면 파고드는 편인데 이분을 어떻게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분이 글 쓰는 스타일이 내 취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이제 이분의 다른 책들을 한 권씩 정주행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오늘 이 책 후기에는 김혼비 작가님과 박서련 작가님 위주로 이야기하겠다(편애가 심하다고요? 사랑은 원래 비이성적인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음식 이야기를 내가 좋았던 에피소드 하나씩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김혼비 작가님은 ‘사리곰탕면’에 얽힌 감동적인 추억이 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서 완전히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는데, J라는 친구가 사골을 직접 우려서 (사골의 핏물을 빼고 깨끗이 씻은 후 20시간 넘게 우리느라 이틀간 거의 잠도 못 잤단다) 만든 육수에 기존의 라면을 합쳐 사리곰탕면을 끓여 주었다고 한다. 맛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가 자신을 위해 그렇게 정성을 담아 요리해 줬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정도였다고.

한 입 두 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 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국물이 흘러들어오면 눈물이 흘러나가며 내 눈에 옮아 있던 날 선 눈빛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쁜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J의 사리곰탕면이 새겨 넣은 메시지는 이랬다. ‘너는 누군가가 이틀을 꼬박 바쳐 요리한 음식을 기꺼이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존재야. 잊지 마.’

박서련 작가님은 어머님과 빙수를 먹었던 일을 특유의 발랄한 문체로 이렇게 표현했다.

“너 있어서 엄마가 이런 것도 먹어본다.” 그건 모친이 그때까지 누리지 못했던 모든 맛에 대한 말이어서 아픈 동시에, 모친에게 생긴 (비교적) 젊고 세련된 친구인 나에 대한 신뢰의 표시여서 기쁘기도 했다. 좋았어, 엄마는 나만 믿어. 내가 어릴 때 약속한 것처럼 수영장 있는 이층집은 못 사줘도 빙수는 평생 사줄 수 있어. 등단 상금이 입금되기 전이어서 통장에 10만 원 남짓밖에 없던 주제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모친과 팔짱을 끼고 집에 돌아왔다.

쓰고 보니 이전에 했던 먹거리 이야기보다 훨씬 더 길어져 버렸는데, 후식의 속성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밥 먹을 때 밥에 집중하느라 미처 다 못 떨었던 수다를, 달고 시원한 것 먹으면서 마저 떠는 게 또 인지상정 아니냐고요.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저도 모르게 말이 많아진 것 같은데, 읽는 여러분도 즐거우셨기를 바랄 뿐…….

참, 모친과 빙수에 대한 이야기에는 후일담도 있다. 이후 연휴를 맞아 모친을 만나러 갔다가 그때 그 카페에서 그 빙수를 또 먹었는데, 모친이 무슨 큰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한테 그랬다. “엄마 이제 혼자서도 빙수 잘 시켜 먹는다.”

그게 무슨 이야깃거리인가 싶기도 하지만 나 또한 혼자 카페에서 뭔가를 주문하는 게 익숙해졌을 때 자랑하고 싶지만 자랑할 데가 없었던 게 떠올라 그냥 웃었다. 잘했어, 엄마, 완전 멋있어.

해외에 있는 나는 그저 엄마가 보고 싶을 뿐… 🥲

 

이걸 다 읽고 나서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 보니 <요즘 사는 맛2>가 올 2023년 3월, 그러니까 지난 달에 나왔다고 한다. 거기엔 또 내가 좋아하는 정지음 작가님이 글을 쓰셨기 때문에 읽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하, 세상은 넓고 맛있는 것은 많다고들 하지만 읽고 싶은 책도 참 너무 많다. 2편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작가님을 만나고 또 멋진 작가님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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