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책] 필사 챌린지 +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내 친애하는 이웃님 HEY님이 최근 ‘필사 챌린지’(HEY님 필사 챌린지 포스트)를 하셨다. 이웃인 까미셰님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것인데 (까미셰님 필사 챌린지 포스트) HEY님은 이웃님들이 다들 바쁘시다며 딱히 다음 주자를 지목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HEY님이 ‘한 단어만 필사해도 필사다’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 덕분에 나도 (지목받진 않았지만) 이 챌린지를 한번 해 보려고 한다. HEY님이 이 챌린지를 하시는 걸 보고 나도 필사하고 싶은 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독서 블로그로서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책이랄까.
내가 필사할 책은 프랑스 소설가 다니엘 페나크의 독서 에세이 <소설처럼>이다. 이 책은 내가 중학생 때인가,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한창 다니엘 페나크의 ‘말로센 시리즈’ 소설을 좋아해서 읽던 때였는데 그래서 같은 작가의 에세이까지 읽어 치운 것이다.
필사할 구절은, 책의 본문이 시작하는 바로 첫 다섯 문단이다. 나는 현재 외국에서 거주 중이라 한국 집에 사 둔 내 책을 펼쳐볼 수 없으므로 원문은 알라딘 미리보기에서 캡처해 왔음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첫 두 페이지에서 파란색 상자로 표시한 부분이 내가 필사할 분량이다.
강렬하면서도 유머가 가득하고 진실하기 짝이 없는 이 부분을 읽고 나서도 이 책과, 또는 저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많은 아동 또는 교육 전문가들이 아이들에게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 주고 싶다면 부모가 먼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 주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하면서 크니까 말이다. 부모가 평소에 책을 안 읽는데 아이가 책을 읽는다? 물론 가능하긴 하다. 우리는 유전자에 새겨진 대로만, 또는 부모님께 양육받은 대로만 자라는 존재는 아니니까. 아이 본인이 그냥 스스로 원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신은 책을 안 읽으면서 자식들은 책을 읽기를 바란다면 그건 어불성설이다. 나 역시 어릴 적에 아빠 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을 올려다보며 책에 호기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내가 여섯 살쯔음 거실에 배를 깔고 누워서 <신데렐라>를 또랑또랑하게 소리 내어 읽는 모습을 보며 우리 모부님뿐 아니라 온 산천 초목이 미소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믿거나 말거나).
살면서 ‘책 좀 읽어라!’라는 소리를 단 한 번이라도 듣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평소에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도 이런 말을 살면서 한 번쯤 들었을 수 있다. 평소에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책 좀 읽어라’ 소리는 오히려 책을 읽을 의지를 상실하게 만든다.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처럼>에서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책을 다시 읽을 권리’ 등,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도 독자의 권리인 것이다! 백 번 양보해 그걸 인정할 수 없다면, 최소한 ‘책 좀 읽어라’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권리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누가 시켜서 책을 읽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원해서, 책이 재밌으니까 읽은 거지만 누가 나에게 책을 읽으라고 한다면 아마 입을 댓발 내밀며 오히려 책을 멀리했을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나는 남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내 주위 누군가가, 또는 인터넷에서 익명의 누군가가 ‘오랫동안 책을 한 자도 안 읽었는데 쉽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늘 이 책을 권한다. 나는 독서란 의무가 아니라 순수한 기쁨이어야 한다고 믿는 데다가,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 책보다 더 좋은 독서 입문서는 본 적이 없다.
아래는 내 필사 인증샷. 내가 가진 것 중 제일 예쁜 종이에 필사를 하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인덱스 카드에 써 보았다. 사진도 멋지게 찍고 싶었는데 그런 재주는 없어서 정말 정직하게 폰 카메라로 찍고 인터넷 이미지 에디터로 180도 회전만 시켰다. 필터링이 1g도 들어가지 않은 정직한 사진!
내 블로그 이웃님들도 바쁘신 것 같아 굳이 다음 주자를 지목하진 않겠다. 챌린지를 하고 싶으시거나, 블로그에 글은 올려야겠는데 글감을 구하기 어렵다 하시는 분들도 무조건 환영이다. 여러분들의 ‘인생 책’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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