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나누기] 돈과 정신과 치료 중 뭐가 더 효과적일까? - ‘백수 월 200 vs. 직장인 월 600’ 밸런스 게임의 정답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밸런스 게임’이라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둘 중에서 뭐가 더 나은지(때로는 덜 고약한지)를 고르는 게임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월 200 받는 백수 또는 월 600 받는 직장인,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이미지 출처 디스패치
나는 고민할 것 없이 전자다. 어떤 이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지게 놀기만 하면 재미도 없고 머리가 둔해진다’며 열심히 일해서 얻는 정당한 소득을 선택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무조건적으로 입금되는 돈이 있다는 게 정신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는 내가 지금부터 설명할 이 실험에 의해서도 증명된 바 있다. 요하네스 하우쇼퍼(Johannes Haushofer), 로버트 무디다(Robert Mudida), 제레미 샤피로(Jeremy Shapiro)가 쓴 논문의 내용은 이렇다. 일단 이들은 케냐의 시골 지역에서 5,756명의 저소득층 참가자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룹을 나눠서 무작위로 고른 한 그룹(총 540 가정 중 60가정)에게는 미화 1,076달러에 상당하는 현금을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지급했다. 참가자들은 이 돈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었다. 어떤 그룹은 분명히 자격이 있는 정신 건강 프로그램을 5주간 받게 되었다. 이것은 세계 건강 기구(WHO)에서 특히 저소득층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과거에 케냐에서 정신 건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과 똑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세 번째 그룹은 현금과 정신 건강 프로그램의 혜택을 동시에 받았다. 나머지 그룹은 결과 비교를 위한 통제 그룹으로,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심리적인 면(pyshological)과 경제적인 면 둘 다에서 현금을 받은 그룹이 가장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달마다 소비 수준이 (통제 그룹에 비해) 20퍼센트 상승했고, 보유 자산도 (실험으로부터 1년 후) 47퍼센트 증가했다. 심리적 안녕은 표준 편차가 0.23 증가했고, 정신 건강 검사지 점수는 0.16 표준 편차만큼 나아졌다. 반면에 정신 건강 프로그램을 받은 그룹은 경제적인 면이나 심리적인 면에서 변화가 없었다. 소비 수준과 보유 자산은 5퍼센트, 수입은 9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쳤고, 이조차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심리적인 건강 지수는 정신 건강 프로그램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표준 편차가 고작 0.01퍼센트 낮아진 게 전부라 무의미했다. 현금과 정신 건강 프로그램 둘 다 받은 그룹은 현금만은 받은 그룹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보유 자산은 41퍼센트 상승했고, 수입은 17퍼센트 늘었으며, 심리학적 건강 지수도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기준으로) 표준 편차가 0.27 증가했다. 소비 수준만이 현금만을 받은 그룹보다 조금 적은 증가세(7퍼센트)를 보였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마다 현금을 나눠서 주는 것이 돈을 한 번에 많이 주는 것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조금 더 효과적이었고, 심리적인 안녕 면에서도 비슷했다.
실험이 끝나고 1년 후를 비교해 보니, 현금을 받은 쪽이 정신 건강 프로그램을 받은 쪽보다 경제적이나 심리적인 면에서 큰 효과를 보였고, 무엇보다 현금을 그냥 주는 게 정신 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보다 (각 가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 보면) 저렴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 건강 프로그램은 돈이 더 들 뿐만 아니라 효과도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데 내 개인적 의견이 들어간 부분은 하나도 없으며, 나는 정말 논문을 보고 요약하며 번역만 했을 뿐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위의 링크(논문이 처음 언급되었을 때 ‘논문’ 부분에 있는 하이퍼링크)를 따라가서 확인해 보시라. 이제는 여러분 모두 아실 것이다. 위의 밸런스 게임의 정답이 무엇인지. 정신 건강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단연코 ‘매월 200만 원을 받는 백수’를 선택하는 게 옳다. 살면서 그런 기회가 주어질 일은 적겠지만… 그래도 꿈은 꿔 볼 수 있는 거니까! 이제는 답을 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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