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나누기]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The”에 상표권을 신청한 사람들이 있다고? (feat.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 마크 제이콥스)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무엇일까? “나(I)”? “그리고(and)”? 위키페디아에 따르면 영어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단어 1위는 정관사 “그(the)”라고 한다.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거나 쉽게 알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 앞에 붙이는 ‘the’를 한 번도 쓰지 않고 영어를 구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에 상표권을 신청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믿으실런지?
그 사람들은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와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다.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의 공식 명칭은 ‘The Ohio State University’로, 앞에 정관사가 붙는다. 그래서 이 학교 출신인 이들은 모교를 가리킬 때 분명히 ‘the’를 붙여 말하는데, 이는 약자가 동일하게 OSU인 다른 학교들, 예컨대 오레곤 주립 대학교(Oregon State University)나 오클라호마 주립 대학교(Oklahoma State University) 등과 구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벅아이(buckeye; 일차적인 뜻은 ‘칠엽수 나무’인데 오하이오 주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라 불리는,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풋볼 팀은 특히 이 ‘the’에 자부심을 가지고 강조하기도 한다. 2019년 8월에 오하이오 주립 대학은 이 ‘the’에 상표권을 신청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으니, 마크 제이콥스였다. 그는 오하이오 주립 대학이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에 상표권을 신청하기 석 달 전, 2019년 5월에 이미 의복과 액세서리 분야에서 ‘the’에 상표권을 신청한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The Backpack Marc Jacobs”나 “The Book Bag Marc Jacobs”, “The Tote Bag Marc Jacobs”처럼 그 제품을 묘사하는 다른 단어들과 같이 쓸 때에 한해서지만. 여러분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독특하지도 않고,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에 상표권 신청이라니 미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그래서 미국 특허청(U.S. Patent and Trademark Office)은 어떻게 했을까? 결론적으로 미국 특허청은 2022년 6월,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와 마크 제이콥스 둘 다 이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줬다. 이 두 신청자가 ‘The’라는 단어의 소유권을 나눠 갖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미국 특허청이 보기에 ‘the’라는 단어의 사용은 순전히 장식적(ornamenntal)이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가 만들어 파는 의류 상품에 쓰이는 ‘the’는 다분히 장식적이고, 딱히 그 단어가 이 의류 제품을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것이냐 다른 회사 것이냐를 구분하는 데 도움을 줄만큼 독특하지도 않다.
그래서 미국 특허청은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와 마크 제이콥스가 의류와 액세서리에 있어서 ‘the’라는 단어에 대한 상표권을 나눠 갖는 것을 허용했다. 물론, 이 말이 우리가 ‘th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사용료를 저 두 단체에 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스포츠 의류에 한해서, 이 ‘the’라는 상표권을 레이블에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와 마크 제이콥스에게 주어졌다는 뜻일 뿐이다.
‘the’라고 쓰인 마크 제이콥스의 의류 중 하나. 사진 출처
영어에서 가장 많이, 가장 흔하게 쓰이는 단어에 상표권을 신청하겠다는 사고를 한 사람들도 웃기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 단어의 사용 자체는 순전히 장식적이라 큰 쓸모도 없는데 그걸 신청했다는 행위도 웃기다. 그걸 ‘너희들끼리 합의했으니 그래, 알아서 써라’ 해 준 미국 특허청은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은 기운도 없었던 걸까… 어쨌든 이 재미있는 해프닝은 여기서 끝이다. 우리는 언어, 특히 ‘the’처럼 가장 흔하게 쓰이는 단어를 그 누구도 독점할 권리는 없다는 사실, 그래서 ‘the’를 평생, 죽을 때까지 공짜로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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