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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J. D. 밴스, <힐빌리의 노래>

by Jaime Chung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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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J. D. 밴스, <힐빌리의 노래>

 

 

내가 얼마 전에 리뷰를 썼던 영화 <Hillbilly Elegy(힐빌리의 노래)>(2020)의 원작이 되는 J. D. 밴스의 회고록. 아무래도 내가 영화를 먼저 봤기에 영화와 비교하면서 읽게 됐다. 영화와의 가장 큰 차이는, 포커스가 (영화에서 그랬듯) 어머니 대신 할머니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영화는 ‘극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다 보니까 실화를 좀 바꿔서 그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저자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부재했다는 건 아니지만, 저자가 어쨌든 ‘바른’ 사람으로, 그나마 ‘잘살’ 기회라도 가질 수 있도록 키우는 데 가장 큰 노력을 한 건, (저자가 ‘할모’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할머니였다.

이 할머니는, J. D.가 나중에 고등학교 졸업 이후 입대했던 해병대의 징모관의 말에 따르면, 훈련 교관들보다 성질이 더러웠다(”훈련 교관들은 성질이 더럽다. 그래도 너희 할머니만큼은 아닐 것이다.”). 영화에도 나왔던 그 일화는 실화였다. 당신 남편(즉, 저자인 J. D.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이 (한 번만 더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오면 죽여 버리겠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고 들어오자 “빈말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할모는 차분히 차고로 가서 휘발유 통을 가져오더니 휘발유를 남편의 온몸에 붓고 불붙은 성냥을 그의 가슴팍에 떨어뜨렸다.” 물론, 열한 살이었던 딸(즉, J. D.의 어머니인 베브)이 재빨리 나서서 불을 꺼 아버지의 목숨을 구한 것도 사실이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가벼운 화상만 입은 채 그날의 위기를 넘겼다고. 이런 집에서 자라다니 정말 살벌하다 😨 그래도 할모가 J. D.만큼은 바르게 키우겠다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저자가 있을 수 있었다.

 

물론 할머니만이 J. D.를 사랑해 준 건 아니다. 린지 누나나 (저자가 위 이모라는 애칭으로 부른) 로리 이모 같은 가족, 그리고 해병대 사람들, 저자의 여자 친구 (후에 아내가 된) 우샤, 예일 로스쿨에서 만난 교수님 (무려 <타이거 마더>를 쓴 에이미 추아 교수!) 등등 많은 이들이 그를 도왔다. 가족들은 그를 아끼고 사랑했고, 해병대에서는 그가 삶을 살면서 필요한 기본적인 상식(더 낮은 이자, 더 좋은 조건으로 돈을 빌릴 수 있게 이곳저곳을 비교해 본다든지 하는 완전 기본!)을 가르쳐 주었다. 우샤를 비롯한 예일 로스쿨 사람들은 J. D.에게 ‘연줄’이 될 만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주었고, 어디 가서 쉽게 들을 수 없는 귀한 조언을 해 주었다. J. D.가 그런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또 계속해서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좋은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난 거겠지만. ‘끼리끼리’는 정말 과학이고 법칙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저자가 훌륭히 성장하는 데 많은 이들이 언급되는데, 영화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막 드라마틱하게 어머니와의 관계를 뒤바꾼 사건 같은 건 회고록에 없어서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그런 걸 기대했다면 말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린지 누나가 전화로 ‘엄마가 이번에 헤로인에 손을 댔다’라고 알려 주는 일도 회고록에 존재한다. J. D.는 영화에서처럼 호텔에 엄마가 묵을 곳을 마련하고 숙박비를 내줬다. 그런데 그 이후에 정확히 엄마와의 관계가 어떻게 됐는지, 엄마가 재활에 성공했는지 하는 언급은 없다. 이 글을 쓸 때에는 아직 그런 걸 ‘에필로그’ 쓰듯 딱 이렇다고 끝맺음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나 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삶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거나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별로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힐빌리’라는 정체성과 그 문화이다. 저자는 자신이 ‘힐빌리’임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인정한다.

나는 백인이긴 하나, 북동부에 거주하는 미국의 주류 지배 계급인 와스프(WASP)는 아니다. 나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을 타고난 데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수백만 백인 노동 계층의 자손이다. 우리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없다. 우리 조상들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 미국인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힐빌리(Hillbillies), 레드넥(Rednecks),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들을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속했던) 집단에 대해 비판이 필요한 부분에선 이를 숨기지 않는다. 힐빌리들은 나름대로 ‘의리’가 있고 무엇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지만, 낮은 교육열(고등학교까지는 졸업시키지만 굳이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실업이나 가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이나 약물 중독 등의 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진실은 냉혹하다. 그중에서도 산골 사람들에게 가장 냉혹한 진실은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잭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상냥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약물 중독자도 널려 있고, 여덟 명의 아이를 만들 시간은 있었지만 부양할 시간은 없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 이상 있다. 잭슨의 경치는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답지만, 환경 폐기물과 마을 곳곳에 널린 쓰레기가 그 아름다움을 가린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이가 푸드스탬프(Food stamp)에 의지한 채 살아가며 땀 흘리는 노동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잭슨은 블랜턴가 남자들만큼이나 모순투성이다.

 

솔직히 내가 속한 집단의 치부를 드러내기 어려웠을 텐데 그걸 기꺼이 드러내고 비판한 저자도 대단하다. 다만 우리나라에선 아무래도 미국의 ‘힐빌리’라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을 수 있어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해를 돕고자 저자가 살았던 주를 표시한 미국 지도와 ‘이 책만의 독특한 표현에 대하여’라는 참고 페이지를 넣은 것은 아주 훌륭하다. 번역가도 저자와 살던 곳과 비슷한 ‘산골’ 동네에 유학 가서 지내 본 경험이 있는 분이다 보니 저자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책 앞에 있는 추천의 글은 도대체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만들고 나서 보니까 몇 페이지가 비워서 뭐라도 채워 넣어야 했나? (편집자들은 책을 만들 때 페이지 수를 최소 8이나 아니면 16의 배수로 만드는 일이 많은데, 종이를 자르고 나눠 찍기 때문에 버려야 하는 페이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 용어로 ‘대수를 맞춘다’라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이분의 포스트를 참고하시라.) 그렇지만 나는 추천사를 별로 안 좋아해서, 책 앞이나 뒤, 띠지에 짧게 들어가는 것 정도는 이해하지만 책 본문에까지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 책을 읽기로 한 상태에서 책 추천사는 불필요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내 지론까지 좀 길게 늘어놓긴 했는데, 어쨌든 좋은 회고록이다. 영화와 비교하는 게 아까울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책이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힐빌리의 노래>는 가난이나 불안정한 가정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하지만 동시에 그게 또 얼마나 극복 가능한지를 잘 보여 주는 감동적인 회고록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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