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재호, <건물주의 기쁨과 슬픔>
내가 만약 ‘소득 중 최고는 불로소득’이라고 말한다면,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나 건물을 한 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직접 노동하지 않아도 매달 수익이 나오니 노동에 지친 현대인, 그것도 한국인으로서는 최고로 좋게 느껴질 것이다. 오늘 소개할 이 책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건물주’가 되었다가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지를 깨달아 손을 털고 나온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권유로 뭣도 모르는 상태에서 원룸 건물 한 채를 구입한다. 사실 저자의 본업은 프로그래머인데, ‘다달이 월세를 220만 원씩 받을 수 있다’라는 말에 혹해서 그간 모아둔 돈으로 건물을 산다. 다행히 저자가 일하는 기업은 스톡옵션이 빵빵했고, 실제로 큰 차익을 얻어서 건물 대출을 갚고 기존에 입주해 있던 전세방들을 월세로 바꾸는 데 재투자할 수 있었다. 그 점은 참 다행이지만, 문제는 저자가 뭘 공부를 하고 건물을 산 게 아니라 그냥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뛰어들었다는 것. 그래서 ‘건물주’가 얼마나 궃은 일을 일일이 다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저자가 직면하게 된 것은, 온갖 진상들… 몰라서 용감하다는 말처럼, 저자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섣불리 건물을 샀을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저자는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 것 같습니다. ‘장래희망은 건물주’라고 말하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이 책은 건물주의 좋은 점에 대해 쓰는 책이 아닙니다. 그런 책은 세상에 널렸습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건물주를 해보면 상상하는 것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가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요?
건물주 노릇은(되기만 한다면)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만은 아닙니다. 건물주만 아니었다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형사소송을 벌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세입자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한밤중에 변기 뚫으러 출동하는 일도 없었겠지요. 월 500만 원을 준다는 데 그깟 일도 못하겠냐고 생각하실 분이 많겠지만, 저는 세입자 차를 긁어대는 미친 이웃을 만난 덕에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 밤낮 없이 CCTV를 초조하게 바라보는 일도, 뭘 집어넣은 건지 알 수 없는 꽉 막힌 변기를 하염없이 ‘뚫어뻥’으로 쑤셔대는 일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돈 버는 일 중에 쉬운 일은 없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제가 겪은 경험을 통해 들려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에게 공감을 얻거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재밌게라도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 보겠습니다.
저자가 경험한 ‘진상’ 중 최악은 아마 살짝 돈 게 아닌가 싶은 옆집 여자 이야기일 듯하다. 엄청나게 긴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한 항공사 대표와 그 어머니가 욕하는” 것과 굉장히 비슷하게 욕을 하며 저자네 건물 한 세입자에게 해코지를 하는 미친 여자가 있었단다. 경찰도 부르고, 고소도 해 봤지만 그래 봤자 약식 기소되어 벌금형 100만 원이 끝. 그 여자는 미친 짓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일로 너무 스트레스가 커서 저자는 회사에 가서도 한숨을 푹푹 쉬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생이 지혜로운 제안을 했다고 한다. 말인즉슨, 뭐라도 사들고 찾아가서 엄청나게 잘해 주면, 그리고 선물을 바치면 먹히지 않겠느냐는 거다. 저자는 ‘이 여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 싶은데 이런 게 먹히겠냐?’ 싶었지만 이거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시도해 보았단다. 그래서 마침 구정인 터라 선물 세트를 사서 친절하게, 정중하게 대화를 했더니 상대는 마음이 풀어졌고, 진상 짓을 멈춘 것은 물론 저자는 나중에 그에게 카디건까지 선물받을 정도로 둘의 사이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북풍과 태양’ 이솝 우화 이야기가 생각날 정도로 일종의 교훈까지 주는 극적인 이야기이다. 역시 진상들은 강하게 맞대응하는 것보다 적당히 기분 맞춰 주는 척하면서 살살 달래야 하는 건가 보다.
사실 이 이야기만 해도 건물주는 참 힘든 일이구나 느끼게 할 법한데, 이 외에도 건물 관리(누수, 변기 뚫기, LED 등 교체하기 등)며 세입자 구하기며, 신경 쓸 일이 참 많아서 저자는 결국 건물을 내놨다고 한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에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 듯(나는 이 말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를 입증할 만한 자금이 없다…). 나는 저자 덕분에 “부동산을 구입할 때는 내 건물만 보지 말고 주위에 있는 건물들까지 유심히 봐야 합니다. 내 건물은 그대로 있어도 주위의 건물들이 부서지고 새로 올라가면서 많은 조건이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꿀팁까지 얻었으나, 역시나 이걸 내가 직접적으로 실천에 옮길 만큼의 자금은 없는 관계로 큰 쓸모가 없다… 그래도 여러분들에는 쓸모가 있을지도? 개인적으로는 이 책 덕분에 ‘아, 건물주도 나름대로 힘들구나(=나만 힘든 게 아니다)’라고 정신 승리, 행복 회로를 돌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면에도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은 이 책을 츄라이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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