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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by Jaime Chung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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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 본 책 리뷰는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의 소설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실하고 꼼꼼한 성격의 간호사 코레드에게는 그 어떤 남자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동생 아율라가 있다. 어느 날, 코레드는 아율라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언니, 내가 그를 죽였어.” 더 충격적인 건, 코레데는 동생에게 그 말을 듣는 게 이번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지리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놀리우드(Nollywood, 나이지리아+할리우드)’ 영화 <아디레>를 보게 됐고, 또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작가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의 이 소설을 읽게 됐다. 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지리아는 엄청 먼, 나와는 무관한 나라처럼 느껴졌는데! 올해는 아프리카와 관련된, 또는 아프리카 출신 작가가 쓴 작품을 읽어 보겠다고 스스로 챌린지를 세웠기에 이렇게 낯선 문학도 접할 수가 있었다.

일단 줄거리가 참 흥미롭다. 성격과 외모가 다른 두 자매가 있는데 미모가 빼어난 동생 아율라는 남자들이 절로 따른다. 그리고 여태까지 데이트한 남자들 중 몇 명을 살해한 전적이 있다. 살인 욕구가 있는 사이코패스라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남자와 싸우다가 자신이 위험해지겠다 싶으면 먼저 공격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언니 코레드는 이런 동생이 저지른 일을 몇 번이고 수습했는데 (시체를 은닉하고, 사건 현장을 표백제로 싹싹 청소하는 등), 진짜 문제는 코레드가 일하는 병원의 ‘일등 신랑감’이자 코레드의 짝사랑 상대이기도 한 의사 타데가 아율라에게 반했다는 것이다. 타데는 아율라에게 관심을 보이고, 코레드는 두 사람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더욱더 큰 문제는, 코레드는 이렇게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한 환자에게 푸념하듯 늘어놓으면서 풀고 있었는데 (어차피 그 사람이 깨어날 가능성도 없을 거고, 깨어났다 하더라도 자신이 해 준 말을 기억할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기적적으로 그 환자가 의식을 되찾았다는 거다! 이제 코레드는 아율라와 자신의 비밀이 들통날까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이 줄거리만 들어도 엄청 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며칠만에 호로록 읽어 버렸는데, 솔직히 진득하니 앉아서 책 읽을 시간만 있으면 하루이틀 내에 끝내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소설치고 엄청 긴 편도 아닌 260쪽밖에 안 되기도 하고. 그런데 편집이 아주 엉망진창이다. 특히 초반에 아주 기초적인 맞춤법조차 교정이 안 되어 있어서 ‘안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맞춤법이 등장한다. 띄어쓰기 한 번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중후반에는 좀 괜찮은데, 초반에는 놀라울 정도로 교정이 개판이다. 두 사람이 분량을 나눴는데 한 사람이 일을 대충 한 걸까? 영문을 모르겠다.

게다가 이 책은 나이지리아 작가가 쓴 거라, 솔직히 나이지리아 문화를 모르는 한국인이 읽기엔 낯선 것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건 괜찮다. 그건 작가 잘못이 아니고, 모르는 거라도 배워가면 되니까. 근데 편집자가 맞춤법도 교정을 안 보더니, 이런 낯선 문화와 관련해 주석도 안 달았다. ‘앙카라 드레스’, ‘아그발루모’, ‘애거바드’, ‘잘라비아 드레스’, ‘마야피 베일’ 등. 이게 뭔지 한번에 이해하시는 분? ‘앙카라 드레스(원문은 ankara outfit)’는 대략 앙카라 스타일이라고 하는, 바틱 염료 기법으로 만든 화려한 무늬에 밝은 색깔의 천으로 만든 옷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고, ‘아그발루모(àgbálùmọ̀)’는 ‘아프리칸 스타 애플(African star apple)’이라고도 불리는, 나이지리아나 우간다 등 아프리카에서 자라는 달고 신맛의 과일이란다(사진을 보면 살구처럼 생겼다). ‘아그바다(agbádá)’는 요루바족이 입는 전통 옷 이름이다. ‘잘라비아(jalabia)’는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입는 헐렁한 전통 의복이다. ‘마야피(mayafi)’는 섬세한 자수가 놓이거나 보석 같은 장식이 달린 스타일의 히잡을 말한다고 한다. 아니, 나이지리아 문화를 정말 코딱지 만큼도 모르는 (더러운 비유 죄송) 내가 잠시 구글 검색을 해서 알아낸 게 이 정도인데, 편집자가 이 정도의 노력도 들여 주석도 달지 않는다고? 정말 얼탱이가 없다. 뭐 엄청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전반적으로 소설 자체는 흥미롭고 흡인력도 있는데 그걸 국내에서 번역해서 출간하는 과정에서 편집을 너무 대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영어 원서로 봤으면 이만큼 편집 과정에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영어 실력이 받침이 된다면 그냥 원서를 읽으시는 게 낫지 않겠나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은 책은 처음인 듯. 어쨌든 이야기 자체는 너무 흥미롭고 스피디하게 진행되니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번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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