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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임소연,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by Jaime Chung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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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임소연,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성형외과와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현장 연구’ 하기 위해 실제로 성형외과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직접 경험한 일들을 쓴 논픽션. 확실히 흥미로운 책이나, 내 감상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렇게 썼다.

나는 성형수술을 연구하기 위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강남의 한 성형외과(가칭 청담 성형외과)에서 참여관찰을 했으며 그곳에서 성형수술을 받았다. 그 3년은 나의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청담 성형외과의 가장 내밀한 일에까지 참여하고자 애썼고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고자 애썼다.

참여관찰은 2010년에 끝났지만 난 그곳을 온전히 떠난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나는 청담 성형외과에서, 그리고 그곳에서 변한 나의 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성형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 삶과 내 연구의 경계는 모호해진 지 오래고, 나는 그 경계를 다시 세울 수도 없고 다시 세우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 책에서 그 모호해진 경계를 그대로 보여줄 생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스라하게 바랜 로맨틱한 모호함이나 언제든지 다시 쓰일 수 있는 포스트모던한 모호함이 아니다. 드문드문 경계의 흔적이 있으되 보기 싫게 덧칠해진 곳도 있고 아예 뜯기기도 한 그런 엉망진창의, 돌이킬 수 없는 모호함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성형수술에 대한 이야기만도, 나에 대한 이야기만도 아닌, 성형수술과 내가 얽혀버린 이야기이다.

저자는 성형외과에서 일하면서 그곳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본인이 직접 양악 수술을 받기도 한다. 그걸로 저자를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건 아니지만, 그거 말고 엄청 흥미로운 점은 없달까…

 

저자가 일한 성형외과에서 양악수술을 하는 최 원장은 그렇게까지 양심이 없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최 원장은 나름대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수술 상담을 했는데, 환자의 맨얼굴을 사진으로 찍고(조명발이나 머리발, 화장발을 받을 수 없게 아주 정직하고 적나라하게 상담실에서 찍은 사진), 그 사진을 보면서 상담을 진행했다.

최 원장의 상담은 마치 짧은 강연 같다. 그는 책상 위의 컴퓨터 화면을 환자 쪽으로 돌려놓고 여러 사진 이미지들을 보여주며 상담을 진행한다. 흔히 예상하듯이 수술 전후 사진들을 늘어놓고 당신도 수술만 하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고 ‘유혹’하지 않는다. 상담 시간의 대부분은 어떤 얼굴이 예쁜 얼굴인지를 설명하는 데에 할애된다. 최 원장의 이론에 따르면, 아름다운 얼굴의 기준은 큰 눈이나 오똑한 코, 달걀 모양의 얼굴형이 아니라 얼굴의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이다. 각 부위의 크기나 형태가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관계, 즉 비율이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눈썹과 코 밑에 수평선을 두 개 그었을 때 나타나는 세 공간의 비율이 중요하다. 이마부터 눈썹까지가 상안면부, 눈썹에서 코 밑까지가 중안면부, 그리고 코 밑부터 턱 끝까지가 하안면부다. 하안면부에서는 입술을 기준으로 인중과 턱 길이의 비율도 중요하다.

사실 [100명 중] ‘50등 안’에 든다는 최 원장의 답은 뜻밖이었다. 내 얼굴이 그렇게 못생긴 것은 아니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최 원장이 막 촬영한 사진 속 나의 얼굴은 아름답지는 않은 ‘정상’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상담 중에 보여준 유명 남녀 배우들의 얼굴은? 최 원장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초정상’이라고 불렀다. 슈퍼노멀. “예쁜 얼굴은 더욱 예쁘게, 평범한 얼굴이라면 탁월하게.” 최 원장이 구호처럼 즐겨 사용하는 또 다른 표현이었다.

최 원장의 상담은 과학적이었다. 그리고 그 과학은 매우 유혹적이었다. 상담실에서 최 원장은 단 한 번도 장사꾼처럼 수술을 권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매력이었다. 그는 과학자처럼 무심하게 열정적이었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본 느낌이었다. 다만 건강검진에서 정상이냐 비정상이냐가 중요하다면, 성형 상담에서는 정상이냐 초정상이냐가 중요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비정상인 항목을 찾아 어떻게 하면 정상이 될지 고민한다면, 성형외과 상담실에서는 정상이지만 초정상이 되는 법을 궁금해한다. 누군가는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고 충격을 받아 운동을 시작하고 다른 누군가는 금세 잊고 살던 대로 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양악수술의 패러다임에 매료됐는데, 최 원장이 코 성형을 비판하는 방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많은 아시아인들이 코가 높아야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최 원장은 얼굴의 조화가 중요하지 현재 얼굴에서 코만 높아진다고 저절로 예뻐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맞는 말이다. 코 하나만 높다고 해서 얼굴의 나머지 부분과 조화를 이룬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얼굴의 나머지 부분도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전반적으로 예쁘다, 또는 호감형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겠는가.

내가 양악수술의 패러다임에 매료된 결정적인 계기는 최 원장이 코성형을 비판하는 방식에 있었다. 그는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이 높은 코에 집착하는 문화가 “낮은 코가 얼굴의 매력을 감소시킨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코가 높아야 미인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일제식민지 시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봤다. 일찍이 서양인들과 교류했던 일본인들이 서양인들을 우상시한 나머지 자신들의 얼굴, 즉 동양인의 얼굴을 열등한 것으로 여겼고 그중에서 작은 눈과 낮은 코에 집착했던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내가 본 성형수술 연구의 대부분은 동양인, 특히 동양 여성들이 서양 백인 여성을 닮고 싶어 성형수술을 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즉 성형수술이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의 도구라는 것이다. 인종주의와 함께 성형수술 비판에서 주로 동원되는 것이 가부장적 미의 이데올로기다. 한마디로 성형수술이 나쁜 이유는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가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들이 인종주의나 가부장제와 같은 이데올로기와 구조적 압력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해왔다. 혹은 외모지상주의라는 사회적 압력이나 그로 인한 실질적인 차별 경험 속에서 성형수술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 즉 개별 여성에게는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둘 다 틀리지 않다. 문제는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선택하지 않게 만들기에는 실효성이 매우 낮은 설명이라는 점이다. 성형수술만 하면 얼굴이 예뻐진다는데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구호가 먹힐까?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혹은 정신승리밖에 할 수 없는 싸움이다. 코성형을 하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던 내가 더 이상 코성형을 아예 고민조차 하지 않게 된 건 전적으로 최 원장 덕분이었다. 내가 코성형을 안 하는 이유는, 동양인의 낮은 코를 열등한 것으로 보거나 오똑한 코의 미인을 찬양하는 이데올로기에 반대하거나 저항하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코가 높다고 무조건 예쁜 얼굴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코에는 죄가 없었다. 아니 최 원장의 말에 따르면, 내 얼굴은 오히려 낮은 코 덕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예뻐지지 않는 성형수술이야말로 가장 선택받지 못할, 반대와 저항을 가장 많이 불러올 성형수술이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성형수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이었다.

 

이런 논의들은 무척 설득력이 있지만 사실 그것 말고 딱히 이 책에서 엄청 재미있다거나 흥미롭다고 느낀 주제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뭐, 이 사람이 글을 쓴다고 성형수술 업계가 확 바뀐다거나, 대중의 인식이 바뀐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한방을 탁 터뜨리는 글을 쓸 수는 있지 않았을까? 수술이 노동에 가깝다는 주장이나(수술을 받는 사람도 물론 힘들지만 그걸 하는 의사나 준비하는 간호사들에게도 노동이라는 뜻이다), ‘코리안 스타일’이라 할 만 한 것의 실체가 없다는 주장 역시 흥미롭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와!’ 하고 내 패러다임이 바뀔 정도로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성형수술을 예술적 퍼포먼스로 차용한 오를랑이라는 프랑스 예술가의 이야기(여기 참고)도 저자는 소개하는데, 분명 참고는 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그건 오를랑이고요, 뭔가 빵 하는 한 방, ‘이것 때문에라도 이 책을 읽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뭔가를 주는 건 저자가 할 일이지요…

한번 읽어 볼 만은 하지만 엄청 ‘와, 대박이다!’ 하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은 책이었다. 솔직히 내가 살면서 성형 수술은 생각도 해 본 적 없는데, 이는 내가 내 얼굴에 100% 만족한다기보다는 쫄보라서 아픈 게 싫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간접 경험을 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느낌. 혹시나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책은 밀리의 서재에서도 서비스 중이므로 한번 살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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