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개인적 추천

[추천 시리즈] Apple Cider Vinegar(애플 사이다 비니거)

by Jaime Chung 2025. 2. 17.
반응형

[추천 시리즈] Apple Cider Vinegar(애플 사이다 비니거)

 

최근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6부작 드라마. 뇌종양을 식이요법으로 극복했다고 주장한 한 호주 여성의 사기극을 기반으로 했다. 이 사건은 당시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경향신문 기사). 너무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도 이걸 직접 보는 재미를 반감시킬까 봐 아주 간단히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벨 깁슨이라는 호주 여성이 자신은 뇌 종양으로 4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았으나, 자신은 이를 식이요법으로 극복했으며 그러한 자신의 경험을 살려 ‘The Whole Pantry’라는 레시피 앱을 만든다. 이 앱은 공개된 후 한 달 만에 2만 번이나 다운로드될 정도로 크게 인기가 있었는데, 깁슨이 뇌종양으로부터 회복하기는커녕 뇌종양을 앓은 적조차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그녀가 출간한 ‘The Whole Pantry’라는 요리책까지 출간 계획이 엎어지고 전량 폐기된다. 깁슨은 또한 자신의 수익의 일부를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말했으나 자선 단체는 깁슨에게 기부금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런 사실이 호주의 일간지 ‘디 에이지(The Age)’에 의해 뉴스를 타자 깁슨은 빠르게 몰락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2Yj_rmCzhE

 

주인공이자 엄청난 사기꾼인 벨 깁슨은 <Booksmart(북스마트)>(2019)로 가장 잘 알려진 케이틀린 덴버가 맡았다. 연기를 어찌나 잘하는지, 이유리 같은 배우들이 악역 연기를 하면 너무 리얼해서 대중에게 욕을 얻어먹는 그런 상황이 이해가 될 정도다. 밉살스러운 사기꾼 캐릭터를 너무 잘 살려 연기해서 정말 꼴보기가 싫을 정도로 과몰입을 퍼먹여 준다. 게다가 호주 액센트도 꽤 잘해서 호주인이 들어도 ‘진짜 호주인 같다’며 감탄할 정도다(레딧 글). 내가 봐도 호주 액센트 연기가 미쳤다 진짜…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호주를 배경으로 해서 호주 배우들도 많이 나오고(밀라 블레이크 역의 얼리샤 데브넘-케리나 샤넬 역의 아이샤 디처럼), 배우들 뒤에 보이는 풍경도 너무 호주다(당연함, 호주에서 찍었음). 어떤 장면에서는 저녁 식사를 하는데 식탁 위에 놓인 소금이 내가 울워스나 콜스(둘 다 호주의 큰 슈퍼마켓 브랜드)에서 보던 그 소금 브랜드라서 조금 웃었다. 리얼리티 쩌네 ㅋㅋㅋㅋㅋ

 

어쨌거나, 이 시리즈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먹는 걸로 암 같은 큰 병을 고칠 수는 없으니, 이런 거에 혹해 넘어가면 안 되겠다. 채식으로, 또는 특정 식이요법으로 암이 고쳐지면 이 세상에 암 환자가 왜 아직도 존재하겠냐며… 둘째, 비슷한 의미에서 내가 왜 암(또는 기타 큰 병)에 걸렸는지 이유를 찾으려 들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깁슨의 라이벌 격인 암 인플루언서 밀라 블레이크(위에서 언급했듯 얼리샤 데브넘-케리분)는 자신이 몸에 나쁜 것(말하는 걸로 봐서는 단순히 패스트푸드나 기름진 음식을 마구 먹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약물을 사용했다고 암시하는 듯하다)을 넣어서 자신이 암에 걸렸다며 심하게 자책한다. 그래서인지 ‘허시 인스티튜트’라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대체요법 단체에 혹하고,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화가 나거나 (암에 걸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이런 부정성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자연스러운 감정도 억압하려 든다. 암의 원인을 찾는 것은 의사들과 전문 연구진에게 맡겨 두고, 환자 본인은 그냥 자기를 위로하고 받아들여 줄 수 없는 걸까. 병에 걸린 것만 해도 너무나 속상하고 슬픈 일일 텐데 그 원인을 끊임없이 자기에게서 찾으려고 함으로써 자신을 두 번 죽이는 셈이 아닌가. 만약 병에 걸린 친구에게 ‘근데 너 왜 그 병에 걸린 거 같아? 식습관이 형편없어서? 잠을 적게 자서? 아침과 밤이 뒤바뀌어서? 왜 그런 거 같아?’라고 한 번만 물어봐도 그 인간관계는 끝이 날 텐데 말이다.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에게 어떻게 그렇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암 같은 큰 병에 걸린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밀라의 캐릭터가 참 너무 안타까웠다.

게다가 밀라 본인도 자기를 진단한 슈 박사의 첫 번째 의학적 제안, 그러니까 육종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 팔을 절단하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나서 대체요법에 빠져서 제대로 된 치료 시기를 놓쳤는데, 허시 인스티튜트에서 주스요법과 관장으로 자신이 ‘나았다’고 믿고 그걸로 인플루언서가 되었다는 게 참… 물론 이제 20대 초반의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니 한쪽 팔을 절단하자는 치료 방법을 받아들이기는 (아무리 그쪽의 생존율이 90% 정도로 높았다고 하더라도) 어려웠겠지. 하지만 그건 자신의 문제고, 그걸 포기하고 근거 없고 효과 없는 대체요법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 특히 자기처럼 큰 병에 걸린 이들에게 그걸 홍보한 건 다른 문제다. 단순히 대체요법 돌팔이의 피해자에서 그걸 남에게 알리고 제안하는 가해자가 되었다는 게… 큰 병을 진단받으면 심적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또 아직까지 모든 암을 완전히 치료할 방법은 없으니(다행히 어떤 암들은 빨리 진단받아 치료를 시작하면 생존율이 높다고 한다) 뭔가 ‘나을 방법’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애초에 간절하고 필사적인 사람들을 등쳐 먹는 놈들이 제일 나빠!

 

셋째, 깁슨의 파트너인 클라이브(애슐리 주커만 분)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왜 깁슨의 곁에 남은 걸까? 자신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은 목표를 설정하면 ‘러브바밍(loveboming, 상대방의 호감을 사기 위해 관심과 애정 공세를 퍼붓는 것)’으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깁슨이 찍은 이 남자는, 자신의 아이도 아닌(아이의 친부는 깁슨의 남자 친구 네이선이다) 아이를 사랑했기에, 그래서 완전히 그 애의 ‘아빠’였기에 깁슨을 떠날 수 없었던 걸까? 기른 정 따로, 키운 정 따로라고들 한다지만. 클라이브는 깁슨이 자신의 병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걸 분명히 알았을 거다. 100% 확신은 아니어도 80% 정도는 느낌이 왔겠지. 그래서 깁슨에게 몇 번이고 확실히 입증해 달라 했던 거고. 하지만 깁슨이 이런저런 수를 써서 빠져나간 후에도, 그래도 여전히 상대를 사랑할 수가 있나? 뭔가 자존감과 자기 이미지에 큰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던 듯… 깁슨과 클라이브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 ‘내가 지금 이 사람을 떠나면, 다시 내가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 이용당하는 것보다는 혼자인 게 낫지! 하이고… 클라이브도 참 안타까운 인물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데이비드 헨리 황의 연극 <M. 나비>(1993년에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무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와 그 연극의 바탕이 된 실화 속 주인공을 연상시킨다(아주 간단히 소개하자면, 1986년 중국 배우이자 스파이였던 여장 남자가 프랑스 외교관을 속여 국가 기밀을 유출했는데, 20년간 관계를 지속하며 정말로 그가 여장을 한 ‘남자’라는 걸 그가 정말 몰랐을까? 더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를 참고하시라.)

 

제목으로 쓰인 ‘애플 사이다 비니거’는 말 그대로 ‘사과식초’를 뜻한다. 주인공이 사과식초를 파는 것도 아닌데 제목이 왜 사과식초냐고? 마지막 6편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그 구체적인 일화는 밝히지 않고 설명한다면, 오늘날 사과식초는 ‘이걸 먹으면 몸이 정화된다!’ 하는 디톡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식이요법으로 뇌종양을 치유했다고 주장하는 깁슨과 주스요법과 관장으로 암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극중) 허시 인스티튜트 같은 ‘대체요법’ 신봉자들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이랄까.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의 연출도 기가 막힌데 특히 6편의 연출을 최고로 꼽고 싶다. 그… 스포일러를 할 수는 없지만 일단 쩐다고요!

너무너무 재밌어서 약 1시간짜리 에피소드들 여섯 개를 사흘 만에 다 봤다. 미드, 영드 같은 시리즈물은 딱히 리뷰거리가 없다고 잘 보지 않는 나에게 이건 그 자체로 재미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완벽한 증거다.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분들이라면 츄라이 츄라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