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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정대건, <GV 빌런 고태경>

by Jaime Chung 2025.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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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정대건, <GV 빌런 고태경>

 

 

 

속았다. 제목은 흥미진진해 보이지만 내용은 완전히 별로다. 이 글은 책 리뷰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박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곧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줄거리부터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GV’는 ‘Guest Visit’의 약자로, 영화 상영 후 감독이나 평론가를 초빙해 그 영화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듣고, 관객이 질문할 수 있는 상영 이벤트를 뜻한다. 이때 종종 한 관객(대체로 남성)이 “일단 영화 잘 봤고요”라는 말로 시작해 마치 자신이 대단한 감독 또는 평론가인 양, 영화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악당’ 같은, 차라리 전설 속 인물이었으면 좋을 것 같은 민폐 관객을 흔히 ‘GV 빌런’이라고 부른다. 이 소설은 그런 GV 빌런인 50대 남성 고태경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30대(정확히는 33세) 여성 영화감독 조혜나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렇다. 그것이 문제다. ‘빌런’이라 불리는 50대 남성과 30대 여성. 애초에 난 왜 이런 조합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아주 정확히 잘 알겠다. 그것은 이 세상이 남자들에게 너무 관대해서, ‘GV 빌런’에게도 ‘사실 알고 보니 영화에 대한 사랑도 엄청나고 지식도 풍부한, 멋진 중년 남성이었다!’라는 서사를 부여해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GV 빌런이 여자였다면? 그냥 개민폐라는 욕만 듣고 그 누구도 그 여자의 내밀한 사정, 어쩌다가 그녀가 빌런이 되었는지 하는 내막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GV 빌런은 50대 남성이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권리를 얻는다.

이 책 맨 끝에 실린 ‘추천의 말’에서 손정수 문학평론가 및 심사위원은 이 소설을 2020년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으로 결정하고 “함께 심사를 했던 권여선 작가와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은 아마 영화 아카데미 출신의 삼십대 초반 여성이 아닐까 얘기를 나누”었다고 썼다. “결과적으로 이 짐작은 절반만 맞았다. 통화를 마친 은 기자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수상자는 서른네 살의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엥?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난 읽으면서 ‘이거 누가 봐도 남자 작가가 썼다는 거 모를 수가 없겠네’라고 생각했는데. 블라인드 심사여서(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작가 이름이 가려져서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누가 썼는지 몰랐다고 하더라도, 글을 읽다 보면 대체로 ‘이 글을 쓴 작가는 어떠한 사람이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지 않나. 나의 스파이디 센스는 이게 100% 남자 작가라고 외쳤고, 결국 나는 옳았다.

내가 그렇게 추측한 근거는 이렇다. 첫째, 일단 여자 작가라면 50대 남성의 내밀한 사연을 알고 싶어 하는 30대 여성 같은 상상은 하지 않는다. 둘을 놓고 보시라.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 그림이 이상하다는 걸 알 것이다. 30대 여성이 50대 남성을 쫓아다니며 뭘 배우고 싶어 한다, 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직 남자뿐이다. 여자들이라면 이 관계가 절대로 성희롱이나 성추행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이 이런 관계를 여자 작가가 썼다고 친다면, 그 ‘멋져’ 보이던 50대 중년남이 다큐를 찍는다고 자기를 따라다니는 30대 여자에게 추잡한 짓을 하는 장면이 분명히 들어가 있을 것이다.

둘째, 아무리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관계가 가까울지언정, 둘의 관계를 연인처럼 묘사하는 짓은 남자 작가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조혜나는 고태경의 고집에 못 이겨, 다큐 가편집본을 보여 준다. 고태경은 “자네는 내가 불행하다는 걸 전제로 이 영화를 편집하고 있지 않아?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고태경은 거의 불행의 아이콘이던데. 난 별로 불행하지 않은데.”라며, 자신을 잘못 이해한 그에게 실망을 내비친다. 자기를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더니 자기를 불행의 아이콘처럼 만들어 놓았다면 인터뷰이로서 당연히 화가 날 수 있다. 그 화와 실망을 표현하는 것도 정당하다. 하지만 누가 그런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나요?

“진심이세요?”

나는 고태경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고태경은 말이 없었다.

“어떤 점이 걱정돼서 그러세요?”

내 스스로가 대답 없는 연인에게 이유가 뭐냐고 따지는 꼴처럼 느껴졌다. 스멀스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진짜 실망이네요.”

다방 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편 그 와중에도 이 과정을 카메라로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선생님에게 초상권이 있고 그럴 권리가 있죠. 그래도 이럴 거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죠.”

“그건 자네가 열심히 설득해서 넘어간 거였지.”

이별하는 상대에게 ‘네가 먼저 꼬셨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몇 개월간 호의를 베풀고 도와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또 입이 비쭉 나오고 턱에 호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게 느껴졌다.

“특별히 제가 잘못한 게 있어요?”

‘왜 식은 거야?’라고 물어봤자 소용없는 연애처럼, 본인이 싫다고 하면 억지로 진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태경은 입을 꾹 다물었다. 고태경 자신도 혼란스러운 듯했다.

“생각할 시간을 좀 갖자.”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그럴 거면 찍지 말자는 소리가 혀뿌리까지 올라왔다. 나는 궁지에 몰린 사람처럼 예민하게 반응했다.

“선생님! 선생님까지 대체 왜 이러세요.”

왜 굳이 둘이 마치 연인인 것처럼, 연인들이 할 법할 말을 두 캐릭터에게 시키는 거지? 50대 남와 30대 여의 연애? 말만 들어도 토가 나온다. 아니, 안 그래도 초반에 조혜나가 고태경에 대한 다큐를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쫓아다니면서 친한 척할 때 조혜나가 굳이 영화를 보는 고태경 옆자리 좌석표를 끊어서 옆자리에 앉는 거나,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나’ 고민하는 거, 이런 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 거지같은 걸 나 혼자 보면 억울하니까 여러분도 한번 보시라. 이게… 정상적인 30대 여성이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단언컨대, 30대 여성이 친하게 지내야 할 50대 남자는 본인의 아버지 말고는 없다.

우선은 고태경과 가까워져야 하는데, 오십대 남자와는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난감했다. 고태경이 좋아하는 건 뭘까? 그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극장과 영화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언제 뵐 수 있겠느냐고 메시지를 보내자 내일 만나자는 답장이 왔다.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상관없다는 답이 왔다. 문자를 받은 나는 영화 제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처럼 두근거렸다.

 

게다가 소설 후반에서는, 비록 재수없는 인물이 하는 대사이긴 하지만, 아예 대놓고 “누가 보면 젊은 애인인 줄 알겠어.” 같은 표현이 나온다. 고태경과 조혜나가 한 감독의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거기에서 본 재수없는 인물이 둘을 보고 하는 대사다. 이건… 말을 말자. 좋은 말은 못 할 테니까. 소설 극후반에, 조혜나가 그렇게 찾아대던 <초록 사과>라는 영화의 여주인공이었던 채화영이라는 여배우가 사실은 고태경과 예전에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솔직히 고태경이 자기 젊을 때 연인 ‘J’ 얘기 할 때 이걸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물론 그것보다 더 먼저 드는 생각은 ‘아저씨 옛날 애인 관심 없거든요?’겠지만. 그러니까, 채화영이 고태경의 애인이었다! 하고 밝히는 게, ‘그러니까 고태경은 조혜나에게 다른 이성적인 마음이 없었어요. 순수하게 인생 선배로서 조혜나를 돕고 가르친 거랍니다’라고 뭔가 쉴드를 치려는 것 같다는 거다. 영화나 소설, 웹툰 등 픽션 작품에서 혹시 모르니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등은 모두 허구이고 창작의 결과물이며, 실존하는 인물과 단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는 우연의 일치입니다’라고 면책 조항을 들이미는 것처럼. 뭔가 그런 것처럼 분위기를 내놓고 ‘아니아니, 사실은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라며 손사레를 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러면 냄새는 왜 피웠는데요? 분명히 나이든 남성과 젊은 여성의 로맨스, 연애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무해한 척하지만 사실은 께름칙한, <나의 아저씨>의 제작 의도와 이 소설이 사실은 비슷한 거 아니냐고요.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이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안 읽으셨다면 이 <나의 아저씨>를 통렬하게 비판한 한 왓챠 유저의 글을 꼭 읽어 주시라. 진짜 명문이다. 내가 이 소설에 대해 느낀 바도 이것과 무척 비슷하다.

 

셋째, 고태경에 대한 묘사를 보면 묘하게 그를 이상화하고 멋진 존재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는다. 젊은 시절 그의 모습을 잘생겼다고 표현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50대인 지금조차 “가까이서 살펴보니 얼핏 잭 니콜슨을 닮았”다고 말하는 게, 남자들 특유의 자뻑, ‘올려치기’를 참 많이 닮았다. 고태경뿐 아니라 다른 노년의 남자 감독에 대해서도 ‘소년처럼 맑은 미소’ 따위의 표현을 하는데, 역시 남자를 사랑하는 건 남자구나, 싶었다.

 

마지막 넷째, 정말 너무 께름칙한 여성 묘사. 소설 중반쯤, 고태경이 노인복지센터에서 60대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영화 만들기를 가르쳐 드리는 수업 장면이 있다. 이때 세 명의 노인이 언급되는데 한 명은 할아버지, 두 명은 할머니다. 이 아흔 살 할아버지는 “허리가 굽지도 않고 엄청난 동안”으로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고태경에게 깍듯하게 인사”한다. “6·25 참전, 사우디아라비아 항만 노동자. 조용우 할아버지의 삶은 한국의 20세기를 고스란히 관통하고 있었다.” 반면에 할머니는 “보석을 주렁주렁 치장하고 도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데, 그가 고태경에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다큐는 “재개발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영상이 아니라, 자기 동네 재개발을 했으면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영상이었다.” 엥, 보통 뭐 해 달라는 건 남자들이던데.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할머니는 무례하지는 않지만 조혜나에게 이것 좀 할 줄 아냐며, 휴대폰 동영상 편집 앱을 사용하는 걸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구부정하게 허리가 굽어 거의 땅바닥에 붙어 다닐 것 같은 오송자 할머니 옆에 앉자 노인 냄새가 났다.” 아, 이분만 특히 노인 냄새가 나던가요? 할아버지는 안 나고요? 보통 여성 노인이 남성 노인보다 자기 몸 관리를 잘하던데.

정말이지, 이런 부분들을 읽고도 작가가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와, 진짜… (말잇못) 더 험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이쯤 해 두겠다. 하지만 50대 남과 30대 여를 굳이, 정말 굳이 이어대는 구린 감성이 어디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시라. 고작 5년 전 소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 소설은 구린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주인공이 영화감독이라서 소설 곳곳에 영화에 대한 레퍼런스가 나오긴 하는데, 그건 시네필이라고 자처하지 않는 내가 봐도, ‘왓챠’ 좀 썼다 하는 사람이라면 다 대충 알 법한 그런 것들이다. 예를 들어서 트뤼포나 히치콕, 오즈 야스지로 같은 거장 감독들은 <영화의 이해> 같은 대학교 사이버 강의만 들었어도 알, 그 정도로 유명한 감독들이다. 영화 <러브 레터>에 나오는 ‘오겡끼데스까~’ 장면 따라 하기? 영화 <컨택트>에 등장하는 ‘헵타포드’ 언급,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드라이버>에 고태경을 비유하는 일 등등(하여간 멋있어 보이는 건 다 하고 싶어 해요).

 

그리고 또 내가 정말 말할 수 없이 구리다,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는,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를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인데, 이 작가는 그걸 참 자주 한다. 예를 들어서, 소설 초반이 조혜나는 단편 <원찬스>를 영화를 만들었는데 딱히 어디에서 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지금은 영화 만드는 걸 가르쳐 주는 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게 초라한 상황인데, 그걸 드러내는 방법이 너무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읽던 나는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영화 〈8마일〉 OST인 〈Lose Yourself〉의 유명한 기타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힙합과도 멀어지고 영화와도 멀어지고,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 고립된 기분이 들었다. 에미넴의 후렴 랩이 귓가에 꽂혔다.

You only get one shot, do not miss your chance to blow

너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와, 절대로 너의 기회를 날리지 말라고

This opportunity comes once in a lifetime, yo

이건 인생에서 단 한 번 오는 기회라고

나는 〈원찬스〉로 단 한 번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날려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진심이신가요? 시대를 역행하는 이 구림은 뭐지? 에미넴의 ‘Lose Yourself’는 물론 명곡인데 그걸 이렇게 직접적으로 가사를 인용하면서 ‘지금 조혜나는 엄청 힘들어하는 상태고, 자신의 삶에서 한 번 오는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괴로워하고 있답니다’라고 아주 대놓고 외치는 데 쓴다고? 심지어 조혜나가 만든 영화 제목도 <원찬스>. 이거 무슨 비틀즈 코드인가요? 노래 가사를 인용하는 것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다. 소설 중후반에는 페기 리의 <I Don’t Want to Play In Your Yard>를 인용한다. 영화제 참석 차 같이 바르샤바에 간 종현(조혜나가 찍은 <원찬스>의 주연 역을 맡았던 동기 배우)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다. 와, 괴롭다. 참고로 이 소설은 2020년 4월에 출간됐다. 5년밖에 안 됐는데 이 글이 이렇게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냥 글을 쓸 때부터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세월이 글을 촌스러워 보이게 만드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몇백 년 전에 쓰인 글들이 ‘클래식’, ‘명작’ 같은 소리를 들으며 현대에도 여전히 읽히겠는가. 이건 그냥 작가의 솜씨가 부족한 거다.

 

게다가 소설 속 여러 장면들이 ‘자, 이제 여기에서는 감동받을 차례야!’ 하고 부추기는 것처럼 너무 작위적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웬만해서는 30대 여자는 50대 남자에게 감동하지 않습니다…

“정말 좋은 기회였죠……. 제가 다 망쳤어요. 그땐 사람들 원망도 많이 했는데 누굴 원망하겠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내 입에서 메마른 소리가 나왔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생각에 잠겨 침울해졌다. 고태경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반반 하자.”

“네?”

고태경은 마치 양념 반, 프라이드 반, 반반 하자는 듯이 툭 말했다.

“자네도 살아야지. 어떻게 다 자네 책임이야. 반반 해. 상황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잖아. 네 탓만 하지 말고 세상 탓도 절반 하자고.”

고태경에게 위로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게 효과가 있을 줄은 더욱 몰랐다.

“비싼 수업료 치른 거로 생각해. 실패도 못 해본 사람들이 수두룩해. 실패에 자부심을 가져.”

그 수모를 겪은 게 잘한 일이라고? 영화를 만들며 겪은 고난을 통해 배운 기술들은, 영화를 만들 때 이외에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다.

“작품 완성하려고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지? 그런 거 아무나 못 해. 난 말이야, 이제 나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무릎 꿇는 거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진짜 부끄러운 건 기회 앞에서 도망치는 거야.”

고태경이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덧붙였다.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말에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콧날이 시큰했다. 고태경이 나의 표정을 흘긋 살피더니 말없이 조수석의 창을 조금 내렸다. 시원한 바람과 소음이 어색한 공기를 채웠다.

 

게다가 이 소설에서 술 먹는 장면만 나왔다 하면 오글거림과 유치함이 치사량을 초과한다.

“안 찍은 게 더 다행일 수도 있다, 너.”

나는 울다가 웃으며 신소리를 했다. 승호가 피식 웃었다.

“어떻게 다 네 탓으로 해. 너하고 세상하고 반반 하자.”

내 말에 승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누구한테 배운 개똥철학인데. 효과 있더라고.”

나는 웃으며 승호의 잔에 소주를 따라줬다. 승호가 소주를 빠르게 들이켰다. 나는 그런 승호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사람이 그 정도의 일을 겪으면 변하긴 변하는구나.”

“나도 변한 내 모습이 재밌어. 늙어버린 것 같아.”

“그래. 이제 너 완전 아저씨야.”

앞에서 고태경에게 들은 말을 자기 동기 승호에게 해 주는 조혜나… 남자들은 이런 데서 ‘내가 이 여자에게 이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멋진 존재구나!’ 하고 스스로 짜릿해하는 걸까? 승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는 표현마저 너무 상투적이어서 진짜 기절할 지경이다.

 

마지막으로 구린 포인트 하나만 더. 소설의 후반부에 조혜나가 (<GV 빌런 고태경> 완성 후에) 한 제작자에게 제안을 받는 새로운 작품은 이렇다.

신 피디는 〈올드 스쿨〉이라는 음악영화 아이템에 대해 들려줬다. 소년원을 들락거리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소년, 소녀들이 왕년에 잘나가던 퇴물 래퍼를 만나 음악을 통해 직접 가사를 쓰고 서서히 변화한다는 시놉시스는 내 취향으로,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문제아와 문제 선생, 어떤 톤으로 가느냐에 따라 유치하지 않게 잘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소년원을 들락거리던 소년, 소녀가 퇴물 래퍼를 만나 변화한다… 이거랑 비슷한 콘셉트의 <싱포유>라는 TV 프로그램이 2016년 말에 있었는데 그게 당시에 ‘이젠 소년원에 갈 정도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애들도 세탁해 주는 거냐’며 욕을 더럽게 많이 먹었던 사실은 기억이 안 나나 보다. 이런 구린 감성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 언제 만들어도 망할 것이다. 그런 아이디어를 소설에 담아 내면 소설도 망할 것이고.

 

길게 이야기했는데, 이 소설은 한마디로 50대 ‘라떼는 말이야~’ ‘꼰대’남의 판타지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이 고태경 역의 캐릭터가 여성이었다면 이 소설은 더 흥미롭고 세련된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중년 여성과 젊은 여성의 듀오, 멘토와 멘티 역의 여성의 조합이었다면 정말 훨씬 더 재미있고 매력적이었을 텐데. 아, 조건이 하나 있다. 여성 작가가 썼다면. 한때 화제였던 ‘맥도날드 할머니’를 기억하시는지. 그런 여성 인물을 발굴하거나 창조해서 그들의 삶을 다른 여성, 또는 최소한 젊은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본다면 그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아무렴 ‘GV 빌런 고태경’ 같은 ‘라떼’ ‘꼰대’남보다는 훨씬 더 흥미롭고 다양한 층위의 인물과 작품이 되겠지… 최근 한국 문학판에 잘나가는 쟁쟁한 여성 작가들이 많은데, 앞으로 여성 작가들이 더더욱 잘되고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이런 작품을 안 읽어도 되게. 전혀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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