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돌리 앨더튼, <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

by Jaime Chung 2025. 3. 28.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돌리 앨더튼, <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돌리 앨더튼의 에세이. 동명의 영드도 있다. 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10대부터 30대까지 연애라는 모험을 하면서 배우게 된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 저자는 열셋, 열네 살부터 남자애들의 눈길을 끌고 연애라는 걸 해 보려고 했는데, 20대에는 술을 진탕 마시고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저자를 단순한 남미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열두 살부터 친구인 팔리를 비롯해 에이제이, 인디아, 벨, 로렌 등 동성 친구들이 (늘!) 많았다. 이따 조금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저자는 “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대부분은 여자들과 오랜 우정을 통해 터득했다. 특히 이리저리 같이 산 친구들에게 배웠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여자들 사이의 우정에 진심이다. 특히 절친인 팔리에게 진지한 남자 친구가 생기자 자신과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어서 크게 아쉬워할 정도로. 팔리와의 우정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앞의 맥락은 대략 학생 시절 선생님께 혼이 났다는 이야기다.

나는 홍당무가 됐다. 왈칵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을 참느라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때 팔리가 책상 밑에서 내 손을 재빨리 두 번 꽉 쥐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묵음의 모스 부호로 ‘내가 여기에 있어, 널 사랑해’란 뜻이었다. 그 순간 모든 게 바뀌는 것 같았다. 우리 사이가 변했다. 우리는 서로를 선택했다. 가족이 됐다. 팔리와 나는 항상 원 플러스 원이었다. 가족 식사 자리에도 매번 참석했고, 휴일마다 파티에 따라다녔다. 밤에 나가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취했을 때를 제외하곤 제대로 싸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서로 거짓말은 아예 하지 않았다. 지난 15년간, 내가 팔리를 생각하지 않고 보낸 시간을 다 더해도 고작 몇 시간이 안 된다. 나는 팔리를 돋보이게 해주고, 팔리는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존재다. 팔리의 사랑이 없다면 나는 그저 초라하고 어설픈 생각을 짊어진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피와 근육과 피부와 뼈가 뭉쳐진 고깃덩어리일 뿐, 허황된 꿈만 꾸고 침대 밑에 감춰둔 10대 시절의 형편없는 시 같은 존재. 우리는 서로의 조부모님 성함까지 꿰고 있고,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뭔지 알고 있으며, 어떤 타이밍에 끼어들어 정확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안다. 서로 웃게 할 수도, 울거나 소리치게 할 수도 있다. 내 인생에 팔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다. 팔리는 내 속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나 역시 그렇다. 간단히 말해 팔리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동성 절친이 있는 여자분들은 이 부분에 100% 공감하실 듯. 나도 ‘원 플러스 원’ 수준으로 늘 같이 다녔던 대학 동기가 지금까지 친구인데, 이 친구를 위해서라면… 전화통화도 할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극도로 내향적이고 내성적인 나에게 용건 없는 전화통화만큼 괴로운 건 없다. 그렇지만 이 친구를 위해서라면 전화통화도 할 수 있다(하지만 늘 카톡해 줘서 고마워…).

 

여자 친구들과의 우정 이야기 사이에 팔리의 동생 플로렌스가 백혈병에 걸린 이야기도 있고,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레시피나 쇼핑 리스트, nn살에 생각한 사랑의 정의 등 다양한 꼭지가 풍부하게 담겼다. nn살에 생각한 사랑의 정의 및 데이트 조언이 시간이 따라 바뀌는 걸 보는 재미도 있다. 어떤 것들은 공감도 가고, 어떤 것들은 ‘빨리 떨쳐 버려야 인생이 쉬워질 텐데‘ 하고 우려되기도 한다.

물론 여자들 우정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다. 내가 앞에서 언급한, “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대부분은 여자들과 오랜 우정을 통해 터득했다.”라는 고백이 나온 꼭지는 특히 감동적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게 뭔지 모른다. 같이 집을 구하러 다니면 어떤 기분인지 모른다. 부동산 업자의 술수에 놀아나지 않으려고 둘이 화장실에서 속닥거리며 작전을 짜는 것도 모른다. 매일 아침, 잠이 채 깨기도 전에 화장실에 있는 누군가를 피해서 익숙한 순서에 따라 돌아가며 양치하고 샤워하는 동선이 뭔지 모른다. 헤어지고 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게 뭔지 모른다. 집에서 매일 밤낮으로 곁에 있는 기분이 뭔지 모른다. 사실, 누군가와 한배를 탄다는 게 뭔지 모른다. 서로 힘이 되어주는 로맨틱한 관계가 뭔지 전혀 배우지 못했고, 그걸 받아들이는 법도 알지 못한다. 나도 사랑을 해봤고 이별도 경험해봤기에 떠난다는 것, 남겨진다는 것이 뭔지는 안다. 언젠가 다른 모든 것을 터득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대부분은 여자들과 오랜 우정을 통해 터득했다. 특히 이리저리 같이 산 친구들에게 배웠다. 사랑이 무슨 연구 주제라도 되는 양 한 사람에 대해 세세한 것까지 파악한 지식을 토대로 즐길 줄 안다. 나와 같이 산 여자들 얘기를 하자면, 나는 어느 식당에 가든 남편이 뭘 시킬지 안 봐도 아는 아내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인디아는 차 마시는 걸 싫어하고, 에이제이가 가장 좋아하는 샌드위치는 치즈와 샐러리가 들어간 것이다. 벨은 빵을 먹으면 속 쓰려 하고, 팔리는 버터가 녹지 않는 식은 토스트를 좋아한다. 다음 날 일을 하려면 에이제이는 여덟 시간은 자야 하고, 팔리는 일곱 시간, 벨은 대충 여섯 시간이면 된다. 인디아는 마거릿 대처처럼 네다섯 시간만 자면 된다. 팔리의 알람은 캐럴 킹의 <So>다. 팔리는 비만 문제와 관련된 서사가 담긴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에이제이는 유튜브로 옛날 드라마를 보는 것과 놀랍게도 침대에서 할 스도쿠 관련 책을 사는 걸 좋아한다. 벨은 출근 전 침실에서 운동 비디오를 보며 따라 하고, 욕실에서 트랜스 음악을 듣는다. 인디아는 침실에서 직소 퍼즐을 맞추고 주말 드라마를 본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절대로 바뀌지 않는 부분까지 받아들인다는 게 뭔지 안다. 로렌은 문법과 철자에 굉장히 깐깐하다. 벨은 지저분하다. 사브리나는 말이 정말 많다. 에이제이는 문자를 보내도 절대로 답장하지 않는다. 팔리는 힘들거나 배가 고프면 늘 우울해한다. 그 대가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내 흠까지 받아준다는 게 얼마나 자유로운지 안다. (나는 지각 대장에 핸드폰은 늘 꺼져 있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강박증이 있다. 게다가 쓰레기통이 넘칠 때까지 그대로 둔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5,000번도 더 들은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고 있고 그들이 그 얘기에 푹 빠진 모습을 보는 게 뭔지 안다. 나는 그 사람이(바로 로렌이다) 매번 어떤 얘기를 할 때마다 훨씬 부풀려 말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안다(‘11시에 그 일이 벌어졌지’에서 ‘새벽 4시에 그렇게 된 거야’가 된다. ‘내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가 ‘유리로 만든 등받이가 젖혀지는 의자에 앉아 있었어’로 바뀐다). 누군가를 많이 사랑해도 전혀 짜증나지 않는다는 게 뭔지 안다. 그 사람이 이미 수없이 했던 얘기를 또 하고, 흥을 돋우려고 북 치고 장구 쳐도 그냥 지켜봐 주는 것이다.

 

저자가 20대 때 술을 진탕 마신 것이나, 데이비드라는 저자와 가진 만남을 모험처럼 묘사하는 건 솔직히 다른 여성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이걸 잘했다거나 낭만적인 일이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요즘 세상이 위험하니까. 어디까지나 저자가 운이 좋아서 밤새 술을 마시고 여기저기 밤에 돌아다녀도 큰일이 없었던 거지, 이걸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밤에 술에 취해서 돌아다니다가는 큰일 나기 십상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피해자를 탓하는 게 아니라 (어떤 범죄든) 가해자가 잘못이지만. 위험한 일을 굳이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쨌거나 여자 친구들만의 추억은 언제나 소중하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 책이 인생 책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 친구를 통해, 우정을 통해 사랑을 배운 모든 분들은 공감하며 읽으실 수 있을 듯.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