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패멀라 폴,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원제는 ‘100 Things We’ve Lost to the Internet(우리가 인터넷 때문에 잃은 100가지 것들)’이다. 저자는 인터넷의 도래로 인해 바뀐 우리 삶에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리워할 것들, 예컨대 ‘지루함, 마침표, 척척박사, 길 잃기, 티켓 분실하기’ 등등을 꼽아 그것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썼다.
저자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하지만 어떤 상실들은 뼈아프다.
기술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나는 러다이트가 아니다”라고 밝혀야 할 시점이다. 인터넷은 인터넷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비판도 발을 질질 끄는 부정이나 순진한 낭만주의, 한심한 향수 또는 낡은 꼰대의 그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잠시라도 망설이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행진의 필연성을 모래 속에 머리를 묻고 외면하는 것이다. 나는 프라이버시나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민간 기업의 동기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편집증이나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시골의 19세기 별장에서 이웃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고, 정원에서 토마토를 덩굴 째로 수확하고 매일 저녁 촛불을 켜고 가죽으로 제본한 일기장에 일주일 동안 지붕을 다시 칠할 계획을 자세히 기록하려는 것은 내 마음의 일부일 뿐이라고 꼭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만의 소중한 것이 있다. 내가 온라인에서 크게 고마워하는 것(대부분 무료 반품과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쉬운 답변이다)은 다른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같지 않을 수 있으며, 내가 예민하게 감각하는 손실도 다른 사람들의 손실과 같지 않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각자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아무도 몰랐던 낚시터, 문 앞에 놓인 〈보그〉 9월호, 온라인 도박에 빠져버린 오랜 포커 친구, 레스토랑에 함께 앉은 이와 무엇을 찾을지 모르는 채 메뉴를 열어보는 즐거움. 내 불만에는 X세대✦✦로서의 경험, 격리된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의 고민, 페이지 사이사이에 책갈피를 끼우는 것이 소중한 의식인 독자의 우선순위, 뉴욕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희망과 불안이 반영되어 있다. 한때 브루클린 거리에서 스틱볼을 즐기던 시절을 그리던 아버지의 애도가 내게는 그저 빛바랜 의식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나는 ‘내 경험’ 또한 뒤에 남겨진 채 젊은이들이 결코 알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이 책은 우리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들, 존재조차 몰랐던 것들,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그 부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책이다. 가까운 과거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먼지가 되어 뭉쳐지는 동안 우리는 이미 상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시 멈춰서 기억을 기록하고 기뻐하며, 감탄하거나 애도하거나 축하하자. 우리의 집단적 추억을 떠올리자. 그 기억 역시 곧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맞서기 위해서.
어린 친구들은 저자가 그리워하는 100가지 일들 중 몇 가지나 알지 모르겠다… 게다가 미국인이 쓴 거라 한국의 문화와는 다른 점이 종종 보이지만, 사람들이 예의범절을 잊어버렸다거나 집중력이 약해졌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꼭지에는 한국인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제일 첫 번째 꼭지인 ‘지루함’ 같은 것.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만의 소중한 것이 있다. 내가 온라인에서 크게 고마워하는 것(대부분 무료 반품과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쉬운 답변이다)은 다른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같지 않을 수 있으며, 내가 예민하게 감각하는 손실도 다른 사람들의 손실과 같지 않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각자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아무도 몰랐던 낚시터, 문 앞에 놓인 〈보그〉 9월호, 온라인 도박에 빠져버린 오랜 포커 친구, 레스토랑에 함께 앉은 이와 무엇을 찾을지 모르는 채 메뉴를 열어보는 즐거움. 내 불만에는 X세대✦✦로서의 경험, 격리된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의 고민, 페이지 사이사이에 책갈피를 끼우는 것이 소중한 의식인 독자의 우선순위, 뉴욕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희망과 불안이 반영되어 있다. 한때 브루클린 거리에서 스틱볼을 즐기던 시절을 그리던 아버지의 애도가 내게는 그저 빛바랜 의식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나는 ‘내 경험’ 또한 뒤에 남겨진 채 젊은이들이 결코 알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이 책은 우리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들, 존재조차 몰랐던 것들,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그 부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책이다. 가까운 과거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먼지가 되어 뭉쳐지는 동안 우리는 이미 상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시 멈춰서 기억을 기록하고 기뻐하며, 감탄하거나 애도하거나 축하하자. 우리의 집단적 추억을 떠올리자. 그 기억 역시 곧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맞서기 위해서.
예전 사람들은 삶의 대부분의 순간이 지루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지루함’이라는 단어는 19세기가 되기 전에는 주목받지도 못했는데, 굳이 언급할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삶은 지루했고, 지루함이 삶이었으며, 지루함은 밀밭에도 물레방아에도 내려앉아 있었다. 21세기가 되기 전에 쓰인 회상록을 보면 아무리 많은 돈을 탕진했더라도 삶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유한계급 사람들은 응접실에서 빈둥거리지 않을 때면 목적 없이 텅 빈 오솔길을 걸으며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차를 몰고 가서 더 많은 나무를 바라보았다.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더했다. 농업, 산업, 사무직 종사자들의 일은 너무나 지루해서, 유급 노동에서 충족감을 느끼거나 소속감을 느끼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이런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서 책장이나 나뭇가지 말고 그들의 정신을 산만하게 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방치되곤 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과소양육이라 부를 수 있던 잃어버린 시대 동안에, 어느 정도의 지루함은 아이들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한 정도를 넘어서 권장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지루함이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게 했으니까. 약간의 지루함은 결국 사람을 덜 지루하게 만들게 되어 있다.
현대 사회는 아이를 충분히 활동하게 하지 않으면 부모의 의무를 심각하게 유기했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과외 활동이나 방과 후 활동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려는 기회와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양육자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기기, 즉 자신의 디지털 기기에 맡겨진다. 자동차나 비행기로 장거리 여행을 준비하는 부모들은 복잡한 상륙 작전을 계획하는 장교들과 같다. 아이패드에 저장해둘 영화는 무엇인가? 가족 친화적인 신규 팟캐스트를 재생해야 할까? 아이들의 머리가 뒷좌석에 녹아내릴 때까지 포트나이트 게임을 하게 놔둬도 괜찮을까?
70년대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뒷좌석에서 지루해할 때 무엇을 했을까? 아무것도 안 했다! 그저 아이들이 매연을 마시게 놔뒀다. 아이들은 서로를 괴롭혔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가지고 놀았다. 만약 어느 시점에서든 집에서 지루하다고 불평한다면, 더한 지루함을 달라고 사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은 “밖으로 나가”라고 호통을 치거나, 더 나쁘게는 “방이나 치워”라고 외쳤다.
엄청 공감ㅋㅋㅋㅋㅋ 예전엔 지루한 게 거의 일상이었는데… 지금만큼 매 순간을 무언가 재미있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더 충만했던 것 같다. 아련한 그 시절…
‘지루함’에 이은 두 번째 꼭지는 ‘마침표’인데, 언어학적으로 보면 인터넷이 우리 언어 생활에 끼친 영향은 크다. 영어권이나 우리 한국에서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짧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대체로 문장 끝에 ‘.’(온점)을 찍지 않는다. 내가 가족, 친구, 지인들과의 채팅창에서 본 메시지들은 다 이 이론(”노인이나 문제 있는 사람만이 모든 메시지의 끝에 마침표를 찍는다”)을 강화했다. 두세 문장쯤으로 말이 이어지면 모를까, 짧은 문장은 전부 마침표가 없었다.
온라인의 마침표는 기껏해야 선택 사항이다. 트위터에서는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일 작정이 아니라면 마침표로 문장을 끝내지 않는다. 문자 메시지 속 마침표는 답답해 보이거나 최악의 경우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고, 의도하지 않은 압박감을 줄 수도 있다. 마침표는 무언가 어려운 것, 나쁜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최근의 한 언어학 연구에 따르면 짧은 비격식 문자 메시지에서는 마침표가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무거운 사안을 이야기할 때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마침표는 말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침표는 상사의 회의 요청에 불려 들어갈 때 쓰는 것이다. 마침표는 화면 반대편의 누군가가 매우 불행하다는 뜻이다. 마침표는 당신의 연배를 드러내고, 모두의 힘을 빼놓는다. 현대 에티켓 가이드 《킬 리플라이 올Kill Reply All》의 저자 빅토리아 터크는 “노인이나 문제 있는 사람만이 모든 메시지의 끝에 마침표를 찍는다”고 적었다.
마침표는 강조하다 못해 비꼬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인터넷 버전의 “제에발” “아니, 됐어” “진지하게 말하면”은 하나의 작은 점으로 합쳐졌는데, 디지털 시대 초기에 나타나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는 경향이다. 2009년, 인터넷 언어 연구자 그레천 매컬러는 “(대개 기분 나쁜) 비아냥거림을 강조하는 새로운 멋진 방법”이라는 한 인터넷 사용자의 마침표 정의를 인용했다. 이 현상은 수동공격성 경향과도 맞닿아 있다고 2013년 매컬러는 지적했다.
마침표와 관련한 문제에는 마침표의 역할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떤 역할을 할 수 없는지도 있다. 느낌표 역할 말이다. 그 쓰임새가 어린이 같은 열정의 폭발이나 특별한 강조 용법에 더는 국한되지 않는 느낌표는 이제 온기와 진심도 전달한다. 느낌표가 없으면 절로 실망하게 된다. 이메일에 “감사합니다” 또는 “멋지네요”라고만 적혀 있으면, ‘내 아이디어가 별로인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식이다.
어디에나 느낌표가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어디든! 지메일Gmail의 자동 응답은 당신에게 느낌표 없는 깔끔한 “감사합니다.”를 결코 제공하지 않는다. AI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직접 느낌표 없이 이메일을 써보면 한때 마침표만으로 충분했던 자리가 의심스러워진다. 당신의 글은 멍청해 보일 것이다. 받는 사람은 메일을 읽으면서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게 된다. 당신의 더 나은 본능과 대학에서 배운 모든 것과 전문가의 의사소통 자세 그 모든 것에 반대됨에도 불구하고, 특히 당신이 여성이라면, 당신은 “감사합니다!”라고 쓰게 된다. 심지어 “감사합니다!!”라고도 쓴다.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선의가 현저히 부족하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
참고로 이렇게 인터넷이 우리 언어 생활에 끼친 영향을 조금 더 본격적으로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그레천 매컬러의 <인터넷 때문에>를 추천한다. 흥미롭기도 하고 저자가 글 자체도 재미있게 써서 아주 유쾌하게 잘 읽은 언어학 책이다.
모든 걸 다 보여 드릴 수는 없으니 한 가지만 더. 요즘은 ‘폰(phone)’, 그러니까 휴대전화로 인터넷, 폰뱅킹, 게임, 메모 등등 모든 걸 하지만 실제로 ‘전화’하는 데 쓰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싫더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대체적으로 업무를 위해)이 있지만, 요즘엔 예전만큼 전화 통화의 중요성이 크지 않다고 할까. 요즘엔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하더라도 동네 음식집에 ‘전화’하는 대신 앱을 이용하고, 무언가에 대해 전화로 문의하는 대신 그냥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봇이나 상담사와) 채팅으로 해결하는 것 같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전에는 실제 통화에 시간을 썼다”.
사람들은 항상 전화에 많은 시간을 썼다. 달라진 점은 이전에는 실제 통화에 시간을 썼다는 것이다.
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쥔 작은 기기를 ‘전화기’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그 물건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다. 그건, 컴퓨터다. 어떤 사람이 최신형 아이폰 프로 맥스 기종을 전화를 거는 용도로만 쓸까? 사람들은 피자집 전화번호를 누르기보다 배달 앱에서 피자를 주문하기 위해 전화기를 더 자주 사용할 것이다. 전화가 오면 우연이 아니고는 잘 받지도 않는다. 윽! 빨간색을 누르려고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당신이 전화를 받기에는 다른 일들 때문에 너무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이 처음으로 레벨 7에 진입한 순간에 계획되지 않은 전화로 게임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이 중요한 글을 어렵사리 쓰고 있거나 시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동안 전화는 걸려오지 않는다. 전화가 온다 해도 안드로이드 음성이 건 전화거나 비상 상황일 때뿐이다. 누구나 훨씬 덜 거슬리는 방식으로 먼저 신호를 보내야 한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하자. 누군가가 죽지 않는 한 예고 없이 전화하지 말 것.” 현대 에티켓 가이드 빅토리아 터크의 말이다. 적절한 처신은 전화를 걸기 전에 우선 문자를 보내 전화해도 될지 묻거나 예의 바른 이메일을 미리 보내는 것이다. 비록 그 전화가 최근 그룹 채팅에서 오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말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국어판 표지에도 정말 그 시대 감성이 잘 담겨 있다. 원서 표지와 비교해 보면 진짜 이건 이렇게 공들인 표지까지가 이 책의 완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서 표지는 영자 신문에서 볼 법한 풍자 만화풍으로 그려서 단순하고 은근하게 표현했는데, 역시 우리가 보기엔… 그다지 와닿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 한국판 표지가 훨씬 더 2000년대 느낌이 나고 좋은걸. 이 책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걸 선호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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