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왜 모두 죽어야 하는가>
심너울 작가의 신작! 교보 샘에 있길래 얼른 열어서 읽었다. 이번 소설의 주제는 불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멸, 죽음을 피하는 것은 많은 이들의 소망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그 열망을 거의 이루게 되는 이들이 등장한다.
놀랍게도 세상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자신을 재생해서 계속해서 살아가는 홍해파리라는 이름의 해파리가 실존한다. 최민은 (홍해파리의 학명 ‘튜리톱시스 도르나이’에서 따온) 생명공학 기업 ‘도르나이 바이오틱스’의 설립자다. 그가 홍해파리에서 개발한 ‘크로노스타신’, 즉 시간(chrono)을 정지(stasis)시키는 신약은 어떤 병이든 치유하고 사용자를 다시 젊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당연히 이 회사의 주가는 폭등한다. 그런데 이 기적의 물질을 파괴하려는 이들이 있으니, 제약사들의 비윤리를 고발하는 행동주의 펀드 ‘블루워터 리서치’의 이청수다. 그는 임상 부정 등 불법적이고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제약사들의 주식을 공매도한 다음, 그 부정을 고발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주가가 폭락하면 큰 이득을 본다. 그렇다고 이청수 그가 없는 부정을 지어내서, 자료를 조작해서 무고한 기업을 망가뜨리냐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다. 그의 보고서는 오직 팩트와 진실에 기반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 ‘도르나이 바이오틱스’를 무너뜨리려 하는데…
소설은 5개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5장은 가장 짧고 에필로그라고 보면 된다. 1장에서 4장까지가 본편인데, 1장은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의 판을 짜는 역할이다. 내가 위에 줄거리에서 최민과 이청수만 언급했는데, 사실 핵심적인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서효원은 식약청 소속 5급 사무관으로, 식약처 장관 성명훈의 부탁 아닌 부탁을 받고 ‘블루워터 리서치’에 언터커버 스파이로 들어가게 된다. ‘블루워터 리서치’가 불법을 저지르거나 편법을 쓰는 게 없나 지켜보라는 것. 그렇게 서효원은 이청수를 감시하게 된다.
이 소설의 제목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왜 인간은 죽어야 하는가’, 즉 인간이라면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죽음에서 벗어나자는, 불멸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왜 ‘모두’ 죽어야 하는가. 그러니까 일부 사람들은 죽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 그렇다면 이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부자? 권력자? 이걸 개발한 천재? 최민은 이 신약을, 아주 당연히도, 제일 부자이고 영향력 있는 이들에게만 팔려고 한다. 반면에 서효원은 코로나-19로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모든 이가 공평하게 건강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조너스 소크(참고 기사)의 이야기를 가장 감명 깊은 이야기로 꼽을 정도로. 그 정도로 대중을 위한 건강이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서효원은 당연히 부유한 극소수에게만 영생을 약속하겠다는 최민을 용납할 수 없다. 크으, 기가 막히네. 벌써 흥미진진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크게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처차피 내가 아래에서 말하는 내용은 1장에 나오는 얘기라서) 내 감상을 짧게 덧붙이자면, 이청수가 자료를 조작하는 등 부정을 저지르는 기업들의 보고서를 공개하면,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망해서 없어지기까지 한다. 이청수는 거기에 죄책감을 갖지 않는 듯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돈이 자신을 지켜 주는 것도 있지만, 일단 그 보고서의 내용에 거짓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서효원은 아무리 보고서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주식에 돈을 투자한 투자자들이나, 그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들 등, 회사가 무너지면 피해를 입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고 그 규모도 커서 일부는 직장을 잃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잃을 정도기에 이청수가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서효원의 태도가 더 신기했는데, 어쨌든 나는 이청수가 자료를 조작한 것도 아니고 보고서는 오직 사실만 써서 진짜로 국민들, 온갖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는데 그게 어떻게 피해가 되는 것이냐, 생각한 거다. 그 기업들에게 투자 정도가 아니라 투기를 위해 주식을 산 사람이라면 돈을 잃어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주식이란 게 원래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건데. 아니, 애초에 자신들이 선전하고 호도한 것만큼 효과가 없는 약물을 가지고 환자들을 속이고 투자자들을 속이려 한 기업이 제일 나쁘잖아! 진실을 밝히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끼리 생각하는 서효원이 생각한 범위가 나보다 크다는 것은 알겠고 인정하지만, 여전히 이청수가 그 보고서들을 발행한 게 나쁜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달까… 서효원이 그런 일은 식약청 등 관계 부처에 넘겨서 좀 천천히, 발 뺄 수 있는 사람들(개미 투자자들 등)은 안전하게 뺄 수 있게 하고 나서 해결하자고 제안하는데, 그 동안 희망 고문 당할 환자들이나 그 가족들은 어떡하고… 나는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진실을 빨리 밝히는 게 옳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게다가 애초에 식약청 같은 정부 부처에 대한 신뢰가 별로 깊지 않기도 하고. 어쨌거나, 소설은 나 같은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가진 수많은 인물들을 보여 준다는 점이 새삼 신기하고 고마웠다.
더 길어지기 전에, 내가 만에 하나 스포일러를 하기 전에, 이쯤에서 멈추도록 하자. 그렇지만 심너울 작가의 신작이니 믿고 보셔도 된다. 엄청 재밌어서 나는 이틀만에 다 읽었다. 역시 심너울 작가라 그런지 여성 캐릭터를 쓰는 데도 어색함이 없고, 독자가 봐도 불편함이 없고, 쓸데없는 로맨스도 없다. 딱 핵심 사건, 갈등에만 집중하는 이성적인 존재들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깔끔하고 좋은지. 심너울표 SF 소설을 사랑하는 이라면 이번 소설도 꼭 읽어야 한다. 딱히 이론적으로 어려울 게 없어서 SF 소설 입문작으로도 괜찮을 듯. 교보 샘에서 이렇게나 좋은 신작을 이렇게나 빨리 서비스하다니 웬일이래… 교보 샘 오랜만에 큰일 했다. 여러분도 이 작품 츄라이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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