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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서귤, 범유진, <천재 본색>

by Jaime Chung 2025.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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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서귤, 범유진, <천재 본색>

 

 

내가 사랑하는 서귤 작가님의 신작! 정확히는 서귤 작가의 <오피스 추노>와 범유진 작가의 <봄버>가 실린 책이지만. 출판사이자 콘텐츠 프로덕션인 안전가옥에서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 즉 ‘자강두천’을 키워드로 해서 기획했다.

아주 간단하게 두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자면, 서귤 작가의 작품은 코미디이고 범유진 작가의 작품은 스릴러에 가깝다. 전자가 큰 스트레스 없이, 유쾌하게 깔깔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면 후자는 좀 더 어두우며, 긴장감이 넘치고, 좀 더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서귤 작가의 <오피스 추노>부터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 TA그룹이라는 작중 대기업에 ‘행복회복팀’이라는 팀이 신설된다. 목적은 “출근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어려움에 빠진 임직원에게 선제적으로 접근하여 건강한 회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풀어서 설명하면 무단 결근한 직원을 찾아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수습한다는 것”. 말은 그럴듯하지만 이미 익명 게시판에서는 ‘추노팀’이라는 별명을 얻고 조롱이 한창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그 행복회복팀의 팀장 및 팀원들이다. 오하나 팀장, 김준영 과장, 이유미 대리. 달랑 세 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어떻게 무단 결근 중인 TA 백화점 신사업 전략 부문 로케이션인텔리전스팀 팀장 표수진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이 소설집의 주제 자체가 ‘천재(들)’이다 보니 <오피스 추노>의 주인공들도 천재라고 할 만한, 각자 뛰어난 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오하나 팀장, 김준영 과장, 이유미 대리 모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활약하는데… (더 보기) 마지막 장(章)이 되었을 때 “아니 벌써 끝이야? 이렇게 끝이 난다고요!?” 싶었다. 오해는 마시라, 마무리가 부족하거나 엉성하다는 게 아니라 너무 재미있는데 빨리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웠다는 뜻이다. 나는 서귤 작가님 책은 몇 권이라도 읽을 수 있는데, 딱 책 반절만 서귤 작가님 거라니… 😥 즐겁게 지낸 시간은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는 상대성 원리를 다시 한 번 체감했다.

 

범유진 작가의 <봄버>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서귤 작가의 <오피스 추노>보다 어둡고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이다. 중학생 때 ‘바둑 천재’로 불렸던 사하라가 어떤 미친놈의 계략에 빠져 폭탄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는 ‘한국의 유나바머로 불린’ 봄버라는 폭파범이 등장하는데, 범행 장소에 “a genius loser”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하고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루저들의 왕, 찐따들의 대표라는 찬사를” 들었다고 한다. 인셀들의 대표 주자, 뭐 그런 건가?

천재는 미치광이라고 불릴 때도 있고, 천재의 ‘천재성’이 삐끗하면 찌질이나 찐따처럼 발현될 수도 있다. 천재와 ‘루저’ 사이에는 어쩌면 아주 가느다란 선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유나바머’로 불린 폭탄 테러범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처럼. 유나바머 본인이 수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게, 어릴 적 학교 성적이 좋아서 천재 소리를 자주 들었다는 게, 그가 죄없는 피해자를 양산한 시점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가해자의 머리가 좋고 나쁘고는, 범죄를 저지른 시점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런 자를 뭐 대단한 영웅이나 되는 것처럼, 멋진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멍청한 거지… 극 중 봄버도 마찬가지다. 이런 찐따를 우상화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랄 노 자다. 뭐,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만큼이나 멍청한 사람들과 더더욱 멍청한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슈퍼맨이라는 선(善)이 있어도 그에 맞서는 렉스 루터라는 악(惡)이 있고, 배트맨이라는 선을 저지하려는 조커가 있는 법이지만, 대체로 그런 (슈퍼히어로에 대항하는, ‘급’이 맞는) 악당을 자처하는 자는 구리고 유치하다… 저자는 그런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솔직히 내가 바둑은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서 이 소설에서 바둑이 언급될 때마다 동태 눈을 하고 읽었다. 그리고 내가 이 소설에 남긴 메모는 전부 이 봄버나 최종 범인에 대한 것들이다. “개찐따”, “결국 폭탄을 만들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범죄자가 됐는데 천재는 무슨 천재. 찐따 맞지.”처럼. 이상하게도, 서귤 작가의 <오피스 추노>를 읽을 때는 오타나 틀린 부분을 딱 한 부분 (”없었다” 다음에 온점이 빠진 것) 봤는데, 이 작품에는 많다. 가장 흔한 게 ‘-든가’와 ‘-던가’를 구분 못 하고 “그러던가”, “주던가요”, “추적하던가” 하고 쓴 것들이다. 그다음이 진짜 어이가 없는데, 주인공 사하라가 게임에서 졌을 때 나오는 “Your Lose” 또는 “You are lose.”라는 문구다. 보통 게임에서 졌을 때는 “You lose”라고 하지… 굳이 명사형으로 쓸 거면 “Your loss”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You are lose.”는 어느 나라를 가도 통하지 않는 이상한 영어다.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드는 인력이 얼마나 많은데 이걸 보고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한 거야? 틀린 걸 몰랐나? 아니면 이 문구가 뜨는 게 불법 도박 사이트라서 일부러 이렇게 잘못 만든 티를 내려고 한 건가? 그러기엔 유독 범유진 작가 작품에만 틀린 부분이 많이 보여서, 이걸 누가 교정교열을 보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교정교열 보던 사람이 후반부 가서 집중력이 떨어졌나? 아니, 이렇게 확실하게 틀린 게 왜 안 보이지? 범유진 작가님 차별하냐? 😡

 

나는 서귤 작가님이 너무 좋아서 즐겁게 읽었는데, 범유진 작가님 작품도 처음 접하게 되어서 의미 있었다. 이분의 <I필터를 설치하시겠습니까?>를 읽어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만나 뵙게 되다니. 어쨌거나 나는 재밌게 잘 읽었다. ‘자강두천’이라는 주제가 흥미롭게 느껴진다면 한번 츄라이해 보시라. 저는 이제 서귤 작가님의 신작 또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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