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오오타 게이코, <앞으로의 남자아이들에게>
책 표지에도 쓰여 있듯이, ‘19년 차 변호사 엄마가 쓴, 달라진 시대에 아들을 키우는 법’에 관한 논픽션이다. 저자 본인이 이혼, 상식 등 가사문제와 성희롱, 성피해, 각종 손해배상 청구 등의 민사사건을 주로 맡고 있는 변호사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는 경험이 풍부하다. 남아와 여아의 기질상 차이에 대해서는 누구나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쉽다 (예컨대 이런 것). 하지만 도대체 이 사회, 그리고 부모가 어떻게 잘못됐길래 남아가 여자를 성적으로 희롱하거나 괴롭히는 남자로 자라게 되는 것일까?(다들 아시다시피, 성희롱이나 성폭행의 가해자는 대다수가 남성이다). 미래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금 남아를 키우는 부모들과 이 사회가 태도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시작하며’에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 맡았던 가정폭력 사건과 성추행 사건 등에서 보아온 남성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의 가해 남성들을 보면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 남자는 왜 저렇게 성차별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긋한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의 행동을 고치지 못하는 성인 남성에게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가해자가 개과천선하기를 바라지만, 그들을 재교육하려면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 어른이 될 남자아이들이 그런 남자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가르치고 양육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어요.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시행착오를 기록함과 동시에 저처럼 남자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책입니다.
‘남자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는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여러 분야의 어른들에게 이 책이 사회에서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남자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앞으로 어른이 될 남자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성차별이나 성폭력과 같은 문제의 당사자로서 문제를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장아이링의 <색, 계>를 리뷰하면서 동아시아 여자들은 자국 남자들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이건 내가 그때 했던 말을 정확하게 뒷받침하는 일본의 사례라 하겠다. ‘성진국’이라 그런지 여성 혐오가 정말 말도 못하게 센 나라… 동아시아 남자들의 꼬라지를 보면 다 비슷비슷한 게 참 놀라울 정도다. 동아시아에서는 어디를 가나 남자의 ‘기’를 살려 주는 여자가 ‘인기가 많다’고들 한다. 잘 웃고,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리액션이 좋은 사람이 인간관계가 스무스하고 좋은 것은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왜 유독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선 정도로, 남자들의 ‘기’를 살려 줘야 한다는 개소리가 많은 것일까? 나는 그 답이 될 만한 힌트를 이 인용문에서 찾았다.
저와 대담을 나누었던 기요타 씨는 “‘남자들은 왜 사시스세소[’역시!’, ‘정말 똑똑하다’, ‘굉장해!’, ‘멋있다!’, ‘네 말이 다 맞아’라는 의미의 일본어 앞 글자를 따온 말]를 좋아할까’야말로 문제의 근본”이라고 말했어요. ‘남자는 칭찬받는 걸 좋아해’가 아니라 ‘칭찬받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다’가 정확한 표현이며, 이 말은 즉 남자들이 스스로는 자존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지적했지요. 내면의 막연한 불안감을 타인의 칭찬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일지 몰라요. 그리고 서로 칭찬을 주고받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른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지요.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는 여자가 남자들 기분을 맞추는 걸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을까요. 이러한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는 연습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당연히 여자가 남자 기분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척하며 훈계하듯 설명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인 ‘맨스플레인Mansplain, man+explain’은 여자를 통해 기분이 좋아지는 남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여자가 남자를 칭찬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말도 있지요. 하지만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항상 여자만의 역할이라면 그 관계는 대등한 관계라고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성차별적 가치관이 뿌리 깊은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의 기분을 맞추는 일이 처세술로 활용되기도 해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여자를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도 현재의 관계가 대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 세대에까지 불합리함을 물려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만약 《멋지고 귀여운 여자가 되기 위한 뷰티 대사전》과 같은 책이 아이들 주위에 있다면 얼른 치워버리세요!
남자는 칭찬받는 걸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칭찬받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다고? 와, 이토록 정확하게 문제를 짚어내다니! 저자가 대담을 나눈 기요타 다카유키는 연애 상담 전문가인데, 젠더 문제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성차별에 공부한 것도 아닌데 “그저 연애 이야기가 재밌어서 수집하다 보니 남성성이 남자들을 속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연애담과 연애 고민을 듣다 보니 대부분의 여자들이 비슷한 불만을 느끼고 비슷한 불평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동시에 자신도 여자 친구 앞에서 기분 나쁜 티를 내며 위압적으로 굴거나 맨스플레이닝을 했던 것도 기억하고 반성했다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연애 상담을 통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구나…
어쨌거나 저자는 그가 본인의 책에서 “남자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해상도가 낮다”라고 표현했다는 점을 짚어내며, 이것이 많은 남자들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부부 사이에 대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부부의 이혼 사건을 맡은 적이 있는데, 남편은 아내와의 대화를 의도적으로 거부했다고 한다. 대화가 차단되니 당연히 아내는 불안해지고 남편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고, 무엇을 하려 해도 남편의 의중을 헤아려야만 했다. 나중에 재판장에서 판사가 ‘왜 대화를 거부했나요?’라고 물어보자 그제야 남편은 ‘말하지 않아도 아내가 알아주길 바랐다’라고 대답했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권력이다. 상대가 알아서 내 기분,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게 만드는 권력. 저자 말마따나 대화는 상대방을 대등한 존재로 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인데 이 남편은 아내를 하인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명령만 내리면 알아서 하는 존재.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어야 하는 존재. 이건 남자가 자기 감정, 자기 생각을 명확히 ‘언어화’하지 못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스스로 표현할 수가 없으니까 남에게 말을 못하고, 그럼 상대방은 또 알아서 눈치껏 이를 해석해야 하는 거다. 그러니까 또 남자가 자기 언어화 능력을 개발할 기회는 적어지고, 악순환이 된다. 애초에 남자애들에게도 언어화하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대화가 안 되니 갈등이 풀릴 리가 있나.
이 언어화 얘기가 나오자 기요타가 기억나는 게 있다며 푸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게 또 남자들의 문제를 잘 짚어내는 일화다. 고등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같이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고백하는 방법을 고민한 적이 있는데, 어째서인지 결론이 ‘자, 그럼 달리자!’로 끝이 났다고. ‘지금부터 운동장 열 바퀴를 쉬지 않고 달리면 그 애랑 사귈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남자라면 한 번쯤 육상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 고백한다든가 하는 생각을 해 봤을 거라고 말하는데, 그 기저에 깔린 생각은 이렇다.
기요타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으면 대화를 통해서 관계를 구축하고 거리를 좁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렇게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해서 시련을 극복하면 연애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연애와는 전혀 상관없는 목표를 자기 멋대로 정해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지요. 그때 저와 친구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오오타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서의 트로피랄까, 일종의 보상인 셈이네요. 고등학생 때는 어려서 괜찮지만, 그 생각 그대로 어른이 되면 연애나 결혼도 무언가의 보상이라고 생각하게 될 우려가 있어요. ‘트로피 와이프’라는 말처럼 배우자나 연인을 자신과 대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성공에 따라오는 일종의 재화처럼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파트너를 자랑하기에만 바쁘고 정작 파트너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기요타 열심히 일하는 것과 가족을 위하는 일을 동일시하는 남자도 많잖아요. 그런 사람은 아내가 집안일이나 육아를 도와주지 않는다며 불평하면 ‘나는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라며 오히려 화를 내지요. 한 가족으로 함께 생활하는 일과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인데 이상하게 그 둘을 연결해서 생각하더라고요. 이혼 사건에도 이런 남자들이 많지 않나요?오오타 무척 많답니다. 그런 남자들은 내가 회사에서 몸과 마음이 부서져라 일했으니 아내와 아이가 당연히 자신을 존경하고 위로해주리라 기대해요.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분노를 느끼지요. 하지만 아내도 아내의 일이 있잖아요? 아내도 똑같이 피곤한데 항상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 이거! 자기 목표를 정해 놓고, 여자를 그에 따른 보상으로 생각하는 거! 정말 이상한 노릇이다. 분명히 같은 나라에서 똑같은 의무 교육, 고등 교육 다 받아 놓고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지? 여자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도, 그 유명한 짤 말마따나, "이 노오력의 보상이 어리고 예쁜 아다 청년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네가 노력한 거랑, 네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그 자체가 보상이지, 거기에 왜 여자가 따라 와야 하는데?
어쨌거나, 이런 남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 부모는 아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저자가 특히 집중하는 것은, 남아가 성희롱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예방하는 방법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저자는 이렇게 정리했다(②, ③은 넓은 의미에서 ①에 포함될 수도 있다).
① …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존중하는 생각을 키워주는 포괄적 성교육
② … 성폭력이 얼마나 사람을 상처 입히는지 알려주기
③ … 성폭력적 발상으로 이어지기 쉬운 표현을 분별하는 능력
포괄적 성교육이란 1990년부터 사용되는 개념으로, “’성(섹슈얼리티)을 섹스나 출산에 한정하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 등을 포함한 인간의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인권 문제로서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09년에 유네스코에서 발표한 ‘국제 성교육 가이드’는 포괄적 성교육을 바탕으로 각 성장단계에서 필요한 교육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이 가이드의 가장 큰 목표는 성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아이들과 청년이 성적,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식과 기술,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이드는 5~18세까지를 4단계로 나누고 주제별로 각 연령대에서의 학습 목표를 제시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5~8세는 생식단계로 학습 목표는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설명한다’이고, 9~12세 단계에서는 성교를 통한 임신 과정과 함께 기본적인 피임 방법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어요.
나도 이것에 대해 좀 찾아봤는데, 대한성학회 자료실에서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번역한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를 다운 받을 수 있다. 이게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관계, 가치/권리/문화/섹슈얼리티, 젠더 이해, 폭력과 안전, 건강과 복지를 위한 기술, 인간의 신체와 발달, 섹슈얼리티와 성적 행동, 성 및 재생산 건강 등의 핵심 개념 8개를 각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이런 핵심 개념과 관련해서 이러이러한 점을 가르쳐야 한다고 제시한다는 거다. 이것만 잘 읽고 따라서 해도 엄청 도움이 될 듯. 아이, 특히 남아를 둔 부모는 필수로 이걸 스스로 배워서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나 싶다. 역시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서 만든 최고의 결정체…!
포괄적 성교육은 유네스코 가이드라인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고, 그렇다면 ②, ③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저자는 여러 가지 포인트를 제시하는데 그중에서 하나를 소개하자면, 저자는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안 돼’라고 가르칠 때 괴롭힘당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려주고 상상해 보게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성폭력도 성폭력 피해가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 아이들 연령에 맞추어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좋은 방법인 듯. 또한 만화 같은 미디어에서 신경 쓰이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저런 장면은 웃어넘기면 안 돼. 저런 장면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어른들이 나쁜 거야. 실제로 저런 일이 있으면 여자아이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으니까 절대 하면 안 돼”라고 말해 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도라에몽>에서 진구가 이슬이가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처럼 명백한 성희롱을 보았을 때 말이다.
이 책과 함께 이 유네스코 가이드라인, 그리고 본인이 양심과 지식을 길라잡이 삼아 아이를 양육하면 아들이 성희롱이나 성폭행 가해자로 자라는 일은 없지 않을까. 마지막 6장 제목처럼, “내 아들이 좋은 남자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생각한다면 꼭 읽어야 할 책. 여남 가리지 않고 추천한다. 크레마 클럽, 밀리의 서재, 그리고 교보 샘에서도 이용 가능하니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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