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매트 프레드, <포르노 판타지>

포르노에 대한 통념 및 낭설을 타파하는 논픽션. 저자의 요지는 한마디로 ‘포르노가 무해한 취미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포르노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 본인에게, 그의 파트너에게, 여성 전반에게 유해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밝히고자 한다.
가장 널리 퍼진 통념 중 하나는 ‘포르노를 반대하는 건 섹스를 반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저자가 이를 얼마나 쉽고 명쾌하게 표현하는지, 이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든다.
성적 억압의 대항마로 포르노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식증의 치료법으로 폭식을 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포르노가 섹스를 찬양하는 것은 폭식증 환자가 음식을 찬양하는 것과 같다. 두 경우 모두 찬양받아 마땅한 것들은 찬양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건강하기는커녕 오히려 위험한 무언가에 빠져들게 한다는 점에서 같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섹스를 포르노의 매개로 삼음으로써 성을 산업화하고 상품화한 뒤 탐욕스럽게 소비한다. 이건 섹스를 찬양하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 값어치를 낮추는 태도다.
핵심은 현대의 포르노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포르노 시장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몸을 상품화한다. 내가 포르노에 반대하는 이유는, 섹스에 찬성하기 때문이다. 여성 혐오적인 포르노가 됐든 여성들만 출연하는 젠틀한 포르노가 됐든, 문제의 핵심은 매체인 포르노에 있다. 포르노는 여성들의 몸을 남성들의 자위 수단으로 제공하는 비즈니스다. 이런 포르노에 반대하는 것은 섹스 자체를 반대하는 일이 아니라 남성을 연인이 아닌 소비자로 만드는, 일방적인 섹스 습관에 반대하는 일이다.
또한 사람들은 ‘포르노는 여성들에게 권력을 쥐여준다’라고 믿기도 한다. 심지어 여성의 권리를 위한다는(또한 그런다고 주장하는) 이들조차 이렇게 말한다. 심지어 ‘성 노동’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서 이들을 옹호하려 든다. 이보다 사실과 멀 수는 없다. 포르노를 보는 파트너를 둔 여성들도 이에 동의할까? 무슨 권력 신장? 포르노에 뇌가 절어서 여자는 다 돈만 주면(또는 안 주고도) 깔아뭉갤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뻔한 것 아닌가.
습관적으로 포르노에 의존하는 남편을 둔 수백만 여성들에게 물어보라. 이 여성들이 포르노 덕분에 권력 신장을 경험했을까? 부부상담사이자 가족상담사인 질 매닝 박사는 북미 여성들이 정신적으로 분열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감히, 관계는 상호 존중과 신뢰, 동등한 힘과 애정 어린 사랑을 근간으로 형성되는 것이라는 현대의 은유를 믿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포르노는 어떤가? 무례함, 위선, 힘의 쏠림, 무심함 등 여성들의 믿음과 정확히 반대되는 개념들을 담고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 남편이 포르노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아내는 대단히 의기소침해질 수 있다. 게다가 포르노에서 배운 것을 침실에서 활용하려는 남성들은, 포르노식의 섹스가 실제로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스트레스를 주는 일인지 알지 못할 때가 많다. 포르노는 남성들의 성욕을 끌어올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공감 능력을 감소시키는 역할까지 한다. 포르노 소비자들이 자신이 소비하는 포르노 속 여성 비하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의 쾌락에만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 있다. 로버트 젠슨은 이렇게 썼다. “여성을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 또는 온전한 인간으로 여기게 되면, 발기하고 사정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이에 대해 포르노 제작의 현실을 짚을 필요가 있다. ‘성 노동자’ 같은 용어를 쓰는 이들은 포르노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 ‘성 노동자들’에게 어떤 ‘권한이 부여(empower)’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 포르노 업계에 종사하는 다른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법학자 캐서린 A. 맥키논이 이 사안에 대해 두려울 정도로 날카로운 통찰력을 공유했다. 모든 종류의 매매춘과 마찬가지로,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들과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선택에 의해 영화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선택의 기회가 박탈된 탓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포르노 업계가 말하는 ‘동의’는, 이들이 모욕당한 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동의’했다는 뜻이다(강간 사건에 등장하는 단어와 같다). 즉 발생한 일을 막지도 못하고, 탈출구도, 현실적인 대안도 찾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상대로 동의를 구한 것이다. 이들 중에는 심지어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한 사람, 약물 중독자, 노숙자, 절망에 빠진 사람도 있다. 이들은 얻어맞거나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또는 절망적인 재정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돈을 위해 자신에게 가해지는 성적 학대를 묵인하고 만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돈은 다른 사람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 정말로 포르노가 성폭력을 예방할까? 혹자는 “포르노에 대한 접근성이 극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강간 범죄가 줄어들었다”라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 주장을 회의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첫째, 강간 범죄율 감소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 것은 강간 및 성폭력 교육 또는 여성들을 위한 보호 수단 증가 등 다른 요소일 수 있다. 앞의 연구 중 그 어느 것도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 둘째, 강간 범죄가 급감하고 있다는 주장은 범죄피해조사National Crime Victimization Survey, NCVS에서 보고한 바와 같이 빈약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국립여성기구의 연구, 국립대 여성 범죄 피해 조사, 국가 여성 대상 범죄 연구, 국가 가정폭력 및 성폭력 설문 조사 모두 NCVS에서 제시한 것보다 높은 강간 범죄율을 내놓았다. 불행하게도, 전체 강간 및 성폭력 범죄 비율은 실제보다 낮게 보고되고 있다.
포르노가 모든 남성들로 하여금 성폭력을 저지르게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포르노를 통해 ‘여성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구나’ 하고 배우게 되는 것은 사실이며, 그게 여성들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사람들, 그러니까 납치와 항문 성교, 잔인한 강간 범죄를 절대 저지르지 않을 대다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일 다인스 교수는 포르노가 대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그녀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남성들이 포르노를 본 뒤, 본 대로 강간을 저지른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포르노가 소비자들에게 그들도 포르노에서처럼 여성들을 대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한다는 건 압니다.” 그녀는 연구를 통해 포르노가 1. 성에 관한 남성 우월주의적인 시각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2.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원치 않는 성활동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고, 3. 사용자가 성적 판타지와 현실을 구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만들고, 4. 성적 학대의 매뉴얼을 제공한다고 믿게 되었다. 남성들이 포르노를 통해 성에 관한 힌트를 얻는다는 사실은 여러 설문 조사 결과를 통해 잘 알려진 바 있다. 한 보고서는, 연구에 참여한 남성들 중 53퍼센트가 포르노가 자신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구는 포르노를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데이트 강간 및 기타 형태의 성폭력을 휘두르는 경향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포르노가 강간 통념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에 놀라야 할까? 안드레아 드워킨이 남긴 말은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포르노에 깔린 전제는 모든 강간 및 강간 범죄 사례를 장악하고 있다.”13 그녀의 주장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드워킨은 모든 강간 범죄의 뒤에 포르노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포르노의 전제가, 포르노를 봤든 보지 않았든, 강간 범죄자가 내재화한 심리적 전제와 동일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르노의 ‘전제’는 무엇일까? 드워킨은 이 점에 대해서도 자신의 관찰 결과를 공유했다.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대사는 맞고 싶다거나, 때려달라거나, 강간을 당하고 싶다거나, 남성이 폭력적으로 굴 때 쾌감이 든다거나 하는 말들뿐이다. 심지어 여성이 오물을 잔뜩 뒤집어쓴 상황에서도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더 많은 오물을 원한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 말을 믿게 되어 있다.
저자는 기독교인이고 심지어 (원서) 출판사는 카톨릭 출판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거슬릴 정도의 종교적 색채는 보이지 않으니 그 점은 안심하시라. 책 뒤에 부록으로 전문가 의견이나 도움 자료, 뇌 연구 자료 등이 붙어 있는데,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도 많고, 온자인 자료 등도 아무래도 영어로 된 것만 있어서 국내 실정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국내에 모 종교 단체들의 등쌀 때문에 성(性)과 관련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 학교에서 피임법을 언급만 해도 길길이 날뛰니 말이다. 그래도 어딘가에 좋은 자료가 있을 텐데, 편집자(들)가 노력해서 국내 실정에 맞는 참고 자료를 첨부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 같다. 그 점이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종교적 색채를 우려할 필요 없이 남자들이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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