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퍼시벌 에버렛, <제임스>

‘고전’ 또는 ‘명작’으로 불리는 책들이 있다. 하지만 그 책들이 언제나 모든 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이 두 남자애들이 너무 개구쟁이라서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속에 담긴 여성 혐오적 함의(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 둘 다 그들을 길들이려 하는 여성들을 싫어한다. 이들이 속한 사회, 어른, 교육, 질서, 기타 등등 그들이 싫어하고 반대하는 모든 것을 여성이 상징한다)를, 나중에 커서 알게 되고 난 후에는 더더욱 싫어졌다. 이 고전들이 문학적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게 아니라, 있긴 하지만 그게 내 취향(여성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싶어 하는 당연한 사실을 취향이라고 불러야 한다면)에는 전혀 안 맞았다는 뜻이다.
퍼시벌 에버렛의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등장하는 흑인 노예 짐의 시각에서 허클베리 핀 이야기를 다시 쓴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백인 소년과 흑인 성인 남자 사이의 우정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하지만, 글쎄, 그걸 정말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이는 둘째치고 노예와 시민이라는 권력 차이가 있는데?
소설 <제임스>를 시작하자마자 작가가 거의 바로 보여 주는 장면 중 하나가 제임스가 자기 딸인 리지에게 ‘노예 말투’를 가르치는 장면이다. 제임스는 글도 읽을 줄 알고 쓸 줄도 알지만, 어디까지나 ‘노예’이기 때문에 영어를 제대로 못한다는,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고정관념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부러 틀린 문법으로 말한다. 그게 살아남는 처세술이기 때문에 자기 딸에게도 가르친다.
“하지만 마님이 빵이 어땠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지?” 내가 물었다.
리지가 목을 가다듬었다. “왓슨 마님, 그 옥수수빵은 정말 첨 먹어보는 맛인 것 가타써여.”
“‘맛인 것 가튼 것 가타써여’라고 해보렴.” 내가 말했다. “그래야 엉망진창 문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거야.”
“그 옥수수빵은 정말 첨 먹어보는 맛인 것 가튼 것 가타써여.” 리지가 말했다.
“아주 잘했어.” 내가 말했다.
제임스가 다른 흑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백인이 지나가면 그들이 엿들을세라 ‘노예 말투’로 전환하는 장면도 있다. 그 백인이 성인도 아니고 그냥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이기만 하면 자신이 흑임임을 증명하듯 연기를 펼쳐야 하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 즉 헉이 제임스를 ‘친구’로 여기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어서, 그 책의 영향이 아직 우리 머리에 남아 있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헉이 제임스에게 이런 비밀을 털어놓은 건, ‘네가 알아서 어쩔 건데?’ 같은 생각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정신 나간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 톰 소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말해줘여, 헉.”
“우리 중 누구라도 비밀을 발설하면 그애의 가족을 몰살할 거라는 피의 서약을 하게 했어. 완전히 정신 나간 소리 같지 않아?”
“피의 서약은 어케 하는 건데여?” 내가 물었다.
“각자 칼로 손을 그어서 상처를 낸 다음에 함께 악수를 해야 한대. 그럼 서로 피가 막 섞여서 뭉개지는 거지. 그렇게 해서 피로 연결된 형제가 되는 거라나.”
나는 헉의 손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침을 뱉는 걸로 대신했어. 톰 소여가 그것도 효과는 똑같다면서, 우리가 전부 손에 상처를 내면 은행을 어떻게 털 수 있겠냐고 하더라. 한 명이 울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다 말할 거라고 했는데, 톰 소여가 오 센트 동전을 주면서 그 녀석의 입을 막았어.”
“지금 저한테 비밀을 말하구 잇는 거 아니에여?” 내가 물었다.
헉이 말을 잠깐 멈췄다. “너는 다르지.”
“제가 노예라서여?”
“아니, 그건 아냐.”
“그럼 머에여?”
“넌 내 친구잖아, 짐.”
“아이구, 고마어여, 헉.”
“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잖아, 그렇지?” 헉이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나가서 은행을 턴다고 해도 말이야. 넌 말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전 비밀을 지킬 수 이써여, 헉. 헉의 비밀두 지킬 수 잇져.”
내가 흥미롭게 보았던 것은 제임스의 종교관이다. 제임스는 이야기 내에서 여러 번 종교에 대한 회의를 보인다. 제임스가 딸 리지와 다른 흑인 아이 여섯 명에게 ‘노예 말투’를 가르칠 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 내가 말했다. “그 부분에서 말을 약간 더듬어도 좋단다. 사실 그렇게 하면 더 좋아. 제가 그… 그… 모… 모래를 쪼… 쪼… 쫌 가져다드리면 댈까여, 홀리데이 마님?”
“그러다가 상대가 이해를 못하면 어떡해요?” 리지가 물었다.
“그건 괜찮아. 네 말을 알아서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단다. 가끔 웅얼거리기도 하렴. 그럼 백인들은 우리에게 웅얼거리지 말라고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거든. 그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고쳐주고, 우리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면서 즐거워하지. 기억하렴. 그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더욱 무시할수록 우리끼리는 더 많이 말할 수 있게 된단다.”
“어째서 하느님은 이런 식으로 상황을 설정하신 거예요?” 레이철이 물었다. “그들은 주인이고 우리는 노예로요?”
“하느님은 없어, 얘들아. 종교는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하느님은 없어. 그들의 종교에서는 마침내 우리가 보상을 받을 거라고 하지만, 보아하니 그들이 받을 처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더구나. 그래도 우리는 그들 주변에 있을 때면 하느님의 존재를 믿어야 해. 아이구, 주님, 우리는 믿구 이쑴니다, 라고. 종교는 그저 그들이 편리할 때만 신봉하며 사용하는 통제 수단일 뿐이야.”
“분명 뭔가가 있을 거예요.” 버질이 말했다.
“미안하다, 버질. 네 생각이 옳을지도 몰라. 신과 같은 존재가 있을지도 모르지. 얘들아, 하지만 그건 그들이 말하는 백인의 하느님 같은 존재는 아닐 거야. 그래도 우리가 하느님과 예수와 천국과 지옥에 대해 더 많이 말할수록 백인들의 기분은 더 좋아질 거란다.”
아이들은 함께 말했다. “그리고 백인들의 기분이 더 좋아질수록 우리는 더 안전해지고요.”
“페브러리, 노예 말투로 바꿔보렴.”
“그들이 더 기분 조아질수록 우리는 더 안전해져여.”
“아주 잘했다.”
종교는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하느님은 없다! 종교는 편리한 통제 수단일 뿐이다. 정말 정확하게 맞는 말 아닌가. 진짜로 신이 있었다면 왜 인종 차별을 더욱 일찍 끝내지 않으셨는가? 왜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노예로 삼고 착취하고 괴롭히도록 놔두셨는가? 종교는 ‘우리는 선량한 피해자이며 내세에서 보상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피해자들을 달래려고 지배자들이 이용한 게 아닌가. 무신론자, 잘봐 줘도 최소한 회의론자인 내게 제임스의 이 지적은 정말정말 유효하게 느껴졌다.
내가 또 좋아했던 건 이 부분이다. 기도란 진짜로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이루어 주십사 신에게 비는 게 아니고, 자기의 기도를 진짜로 ‘들을’ 만한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용으로 하는, 일종의 공연(그가 자신의 흑인다움을 연기해야 하듯)이라는 지적이다.
“그럼 하느님이 그렇게 해준 건지 어떻게 알아?”
“저두 모르져. 하지만 하느님이 모든 걸 하는 게 아니라면여? 달리 누가 비가 오게 할 수 잇나여?”
헉이 돌멩이를 집어들더니 손에 올려놓고 잠시 살펴보았다. 그러고선 느릅나무 가지 높은 곳에 앉아 있는 다람쥐 쪽으로 집어던졌다.
“제 생각을 알구 시퍼여?”
헉이 나를 쳐다보았다.
“저는여, 기도라는 게 헉이 기도하길 바라는 주변 사람들을 위한 거라구 생각해여. 기도를 해서 왓슨 아주머니와 더글러스 부인이 헉의 기도 소리를 듣게 하구, 그분들이 원할 법한 걸 예수님에게 요청하는 거져. 그럼 헉의 삶이 좀더 편해질 테니까여.”
“그럴지도.”
“가끔 새로운 낚싯대를 달라는 말 같은 것두 기도에 끼워너갖구 그분들이 헉에게 잔소리할 수 잇게두 하구여.”
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말이 되네. 짐, 너는 하느님을 믿어?”
“아이구, 당연하져. 하느님이 엄따면 어케 우리가 여기서 일케 멋진 삶을 살 수 잇게써여? 이제 헉은 빨리 가서 놀아여.”
한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쓰는 ‘리라이팅(re-writing)’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좋아하는 나는 이게 작년, 2025년 퓰리처상을 받은 걸 보고 읽어야겠다 생각해 왔다. 그러다가 이게 번역되어 출간되고, 심지어 밀리의 서재에 들어온 걸 발견하고 쾌재를 질렀다. 이렇게 좋은 책을 쉽고 편하게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니! 게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더더욱 편하게?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굳이 읽혀야 한다면, 공평하게 이것도 같이 읽혀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균형 잡힌 시각을 키울 수가 있지. ‘리라이팅’을 좋아한다면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속 버사 메이슨의 시각으로 쓴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나 오뒷세우스 이야기를 페넬로페 입장에서 쓴 마거릿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 트로이 전쟁의 여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나탈리 헤인스의 <천 척의 배> 등도 읽어 보시라. 팬 맥밀란의 이 페이지나 부커상 페이지를 통해서 ‘클래식’을 다시 쓴 소설들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한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다양하고 비판적 사고를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니까. 아니, 근데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재미를 위해서라도 리라이팅 소설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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