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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세라 게일리, <일회용 아내>

by Jaime Chung 2026.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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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세라 게일리, <일회용 아내>

 

 

여성 혐오에 기반한 결혼 생활의 현실을 인간 복제라는 소재를 이용해 잘 풀어낸 소설. 만일 내 전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데 그게 나의 복제 인간이라면 어떨까? 책의 초반, 첫 1/5에 해당하는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에벌린 콜드웰 박사는 인간 ‘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같은 연구를 하던 남자 네이선을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연구에 몰두하느라 아이를 가지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고, 이에 불만을 가진 남편 네이선은 불륜을 시작한다. 결국 둘은 이혼. 네이선이 이혼 전에 이미 불륜을 하던 여자의 이름은 마르틴(흔한 남자 이름 ‘마틴’에 ‘e’를 붙인 여성형 이름)이다. 이혼 이후 오히려 더 일에 매진하고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마르틴에게 전화를 받고 만나러 가 보니 그녀는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 우연히 닮은 게 아니라, 에벌린의 연구를 이용해 에벌린과 외형은 똑같이 생겼지만 성격은 네이선 마음대로 휘두르기 쉽게 온순하게 바꾼, 에벌린의 클론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네이선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한다! 마치 클론은 생식하지 못한다는 자신의 연구를 비웃기라도 하듯. 에벌린은 “당신이 무슨 이유로 만들어진 거라 생각해요? 당신이란 존재가 무엇을 위해 생긴 것 같아요?” 하고 독설을 퍼붓는다. 마르틴은 충격을 받고, 에벌린은 그 자리를 떠난다. 그날 저녁, 에벌린은 마르틴에게 다시 전화를 받는데, 전화 내용은 ‘나한테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요 흑흑’ 같은 비난이 아니다.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 비상사태라며, 집에 꼭 좀 와 달라는 부탁이다. 에벌린이 네이선과 마르틴의 집에 가 보니, 네이선은 죽어서 누워 있다. 마르틴은 낮에 에벌린에게 들었던 말을 네이선에게 하며, ‘내가 정말 아이를 가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냐’ 물어봤다고 설명한다. 자신이 아이를 원하는 것은 맞지만, 그저 자기에게도 선택권이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라며. 그런데 네이선은 칼을 짚더니 마르틴을 죽이려고 했고, 마르틴은 스스로를 방어하려다가 네이선을 죽이게 된 것이다. 자, 이제 에벌린과 마르틴은 어떻게 할까?

 

내 마음을 무너뜨린 건 직업적인 모욕감이나 네이선이 나와 함께 사는 동안 마르틴을 임신시켰다는 사실보다 더 깊은 무언가였다. 네이선이 그저 자신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르틴을 만든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더 다루기 쉬운 아내, 나와는 달리 그를 위해 시간을 내주고 참아주는 아내를 만들려고 이 일을 벌인 게 아니었다.

마르틴이 나를 좀 더 조종하기 쉽게 만든 버전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봤던 몇 달 전, 나는 울고불고 싸우면서 내가 결혼의 끝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받은 쇼크를 수용했다. 하지만 지금, 새로운 양상이 드러났다. 네이선은 나라면 하지 않을 일을 시키기 위해 마르틴을 만들었다. 내가 노골적으로 거부했던 일,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불사했던 일, 오래전 내가 의견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대놓고 말했을 때 네이선 역시 포기했다고 생각했던 일.

네이선은 가족을 갖기 위해 마르틴을 만들었다.

나는 네이선이 아이에 대한 마음을 내려놨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네이선은 그 꿈을 전혀 포기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포기해버렸을 뿐이다.

이 소설의 국내 제목은 ‘일회용 아내’인데 원제는 <The Echo Wife>다. ‘echo’는 ‘메아리’란 뜻이니까 ‘echo wife’라고 하면 남편이 하는 말만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자신의 생각이 없는 순종적인 아내라는 뜻이 되겠다. 자신의 연구 실적으로 상을 받는, 능력 있는 아내가 아이를 원하지 않으니까 그녀의 연구를 훔쳐서(왜냐하면 이런 놈들은 자기 스스로 뭘 할 능력도 없어서 대단한 여자에게 기생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리얼리즘 쩌네) 그녀와 똑 닮은, 하지만 더욱 유순하고 아이를 ‘원하는’ 복제 인간을 만든다는 발상이라니. 최근에 인터넷에서 ‘유튜브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2025)>의 캐릭터들의 임신한 버전을 보여 주는 이유가 뭐냐’라는 한 트윗에 대한 여성들의 답글을 본 적 있는데(이 글. 다소 역겨우니 비위 조심하시길), 표현은 격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에벌린이 상을 받고 연구를 잘하고 어쩌고 하는 사실과 무관하게 이 네이선이라는 작자는 이 여자를 집에 눌러앉히고 싶었고, 그 방법이 임신과 출산이었던 거다. 에벌린이 ‘감히’ 그걸 원하지 않으니까 마르틴을 이용한 건데, 마르틴은 복제 인간이다. 인간은 애초에 ‘복제’할 수도 없고(기술적으로), 그래서도 안 된다(윤리적으로). 물론 이 소설 속 세계관에서는 가능하다. 애초에 에벌린이 인간 복제 기술을 연구해서 정치인이라든지 연예인 등 여러 고객들을 복제한 경험이 있는 연구자이기도 하고.

나는 작가가 이 ‘인간 복제’라는 소재를 이 문제와 결부시킨 게 진짜 기가 막힌 점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인간을 도구로 전락하게 하는 이 ‘인간 복제’ 기술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에벌린 자신도 클론은 도구일 뿐이라고 여러 번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대체로 마르틴이 너무나 ‘인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둘째, 그 ‘도구’인 인간이 나랑 똑같이 생겼다? 그래서 아예 타자의 클론일 때보다 더더욱 감정적 투사가 가능하다? 이야기를 더욱더 흥미롭게 만들지 않는가. 마르틴은 에벌린과 똑같이 생겼지만, 성격은 무척 다르다. 네이선이 다르게 프로그래밍했기 때문이다(’프로그래밍’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겠다). 이게 과연 나의 ‘단점’을 갈고닦아 없앤, 더 나은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게 그냥 누구의 취향 문제였던 건 아닐까? (사실 맞다. 네이선의 취향이 개구렸기 때문이다). 셋째, 근데 이 모든 게 여성 혐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그냥 남자를 복제해서 (예컨대 정치인의) 대체품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여자를 복제해서 ‘내 입맛대로 이런저런 점을 바꾼 다음에’ 임신까지 시킨다는 점이 정확히 그러하다. 거기에 예전에 분명히 있었을, 이런 짓거리를 저지른 남자에 대한 사랑의 문제까지 더하면 이야기의 층위는 더욱더 복잡하고 풍요로워진다. 와, 진짜 기가 막히네.

 

“무슨 일이에요?”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질문을 던졌다. 거기 그렇게 마냥 서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려면 내가 먼저 행동해야 했다. 조치가 시급했다.

“우리가 싸웠어요.” 마르틴이 거칠게 말을 뱉었다.

피가 너무 많았다.

“그는 화가 나 있었어요.” 마르틴이 말했다. “당신하고 같이 차 마신 얘기를 했거든요. 그리고 당신이 한 얘기에 대해 질문했어요. 내가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요.”

나는 무슨 말이든 하려 했다. 사과는 말고, 그건 절대 아니고, 그냥 내가 너무 가혹하게 말한 것 같다고 인정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나는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런데 궁금해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녀는 배를 가리켜 보였다. “아이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네이선한테 물어봤어요. 뭐라고 했냐면…….” 그녀는 힘겹게 침을 삼키며 손을 목에 가져다 댔다. “만약 내가 원하는 게 다른 거라면, 내가 엄마가 되기 싫다면 어쩔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녀는 내게 흘끗 시선을 던졌다. 눈빛이 매서웠다. “엄마가 되고 싶긴 해요. 제가 원하는 건 임신이 맞아요. 저는 그냥 저한테 발언권이 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난 마르틴의 말을 믿었다. 네이선이 그녀가 무엇보다 아이를 원하도록 프로그래밍했을 테니까. 하지만 거기에 더해, ‘만약’이라는 질문을 하지 않도록 프로그래밍했어야 한다. 적어도 나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완벽하고 고분고분한 버전의 나를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면 말이다. 나는 일말의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지, 그런 식으로 대충 하지 않으면 네이선이 아니지. 그는 늘 그렇게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랬더니 뭐래요?”

프로그래밍 이야기를 해 보자. 이 소설에서 클론을 만드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신체를 만든다. 둘째, 정신을 형성한다. 여기에서 이 둘째 ‘정신 형성’ 과정을 조건화라고 하는데 원본이 되는 사람과 성격과 기억을 가장 비슷하게 주입해야 한다. 에벌린과 마르틴은 5년 전 네이선이 찍은 뇌의 CT 이미지와 둘이 아는 네이선에 대한 모든 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의 정신을 형성한다. 이 부분은 내가 복제 인간을 만드는 이야기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인데, 어째서인지 내가 지금까지 접한 미디어에서는 정신적인 면도 신체적인 면과 비슷하게 복사해낼 수 있는 것처럼 그려졌던 탓이다. 이런 점을 짚어내다니 놀라웠다. 아마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책 끝에 작가의 말이 나오는데, 어릴 적에 그루밍 범죄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그루밍 범죄라는 게 어린아이(성인도 안 된 청소년)의 정신을 그야말로 퍼티처럼 주무르는 짓이다 보니, 그것을 이 ‘조건화’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끔찍한 비유이긴 하지만 적절하긴 한… 어쨌든 에벌린과 마르틴은 그를 만들어내야 한다. 왜? 일단 두 여자가 네이선의 시체를 잘 묻어서 처리하긴 했지만, 네이선의 ‘공백’이 길어지니 주변 사람들이 네이선은 어디 갔냐며 질문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냥 어디 여행 갔다는 말로 영원히 둘러댈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네이선의 복제 인간을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때 네이선을 원래보다 괜찮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네이선 2.0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고 경찰이 연루될 수도 있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지, 에벌린이나 마르틴 그 누구도 이 네이선의 복제 인간과 행복하게 잘 살 수는 없다.

 

마르틴과 나는 오랫동안 그를 쳐다봤다. 할 말도, 말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고, 그녀 역시 내 생각을 알았을 거라 확신한다.

이건 네이선이었다.

이 사람을 바꿀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될지는 오로지 내 손에 달려 있었다. 나는 네이선을 좀 다르게, 나와 남은 생을 같이 보낼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좀 더 용기 있는 사람으로, 작은 일에 좀 더 신경을 쓰는 사람으로. 나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으로, 그게 안 되더라도 그걸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는 그를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아니 다시 사랑해줄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보란 듯 집으로 데리고 가 우리의 결혼생활을 재정비하고 재결합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 누구도 우리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테고, 나는 뛰어나고, 순하고, 고마움을 아는 사람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네이선이 될 수 없었다. 누구든 그를 만나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네이선은 언제나 천성적으로 내가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결국 그 모습을 보게 될 터였다. 그는 절대 흡족할 만큼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네이선은 원래 뭘 하든 내게 실망만 안겨주는, 뼛속까지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네이선의 그런 부분을 삭제할 수 없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랬다면 애초에 그와 사랑에 빠질 일도 없었을 테지.

그래서 난 그러지 않았다.

마르틴과 내가 쳐다보고 있는 이 남자, 우리에 의해서 규정돼 깨어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이 남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진짜 네이선에 가깝게 만든 복제인간이었다. 우리가 알았던,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가 미워했던 사람. 그리고 우리가 묻은 그 사람. 우리는 그의 틀을 재건하고, 기억에 남은 모습대로 유령을 만들어 그 둘을 되는대로 이어 붙였다. 우리는 그의 피부에 인생의 상처와 도장을 새겨서 틀과 유령을 고정시켰다. 우리가 이 사람을 만든 것이다. 둘이 함께.

우리가 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준비가 됐다.

그렇게 만든 네이선에게서 마르틴은 잠시나마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모습을 보는 듯한데… 물론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이 될 수는 없다. 뭐, 둘이 행복하게 잘 사는 건 맞는게, 그 ‘둘’이 누구냐 하는 게 문제. 네이선과 마르틴? 아니면 에벌린과 마르틴? 사실 둘이 아닐지도…? 왜냐하면 마르틴이 임신했던 그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기 때문이다. 마르틴은 임신한 와중에 에벌린을 도와 네이선 복제 인간도 만들고 진짜 열심히 사는데 정말 빡치는 게, 이 멍청한 네이선 자식이 마르틴에게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마르틴이 하혈을 할 때도 마르틴 본인은 이게 걱정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에벌린이 마르틴의 엄마 또는 언니인 것처럼 마르틴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데려다 주기도 하고, 임신에 관한 책들을 마르틴에게 주고 배우게 하기도 한다. 하, 진짜… 에벌린과 마르틴 행복해야 해...

 

이보다 더 스포일러를 하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내가 언급한 것들은 진짜 새 발의 피다. 이 소설 내에는 살펴보고 생각해 볼 만한 거리가 넘쳐난다. 에벌린과 마르틴의 관계도 흥미로운데(나를 닮았는데, 아이처럼 순진하다고 생각했는데 반항도 하네? 밉기도 하지만 미워하고 아예 버릴 수는 없네?), 에벌린의 ‘성격’도 많은 부분 에벌린의 엄마와 아빠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점이 있다. 심지어 에벌린의 엄마에게도 비밀이 있다. 이것 또한 에벌린이 계승한다고 볼 수 있는데… (더보기) 이 책을 문학적으로 비유하자면,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창조물이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죽이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아내가 이 창조물의 엄마 겸 언니 겸 보호자가 되어서 같이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라고 할까.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마르틴 입장에서 보면 네이선이겠지만(직접적으로 그녀를 만든 게 그이니까), 애초에 그가 그럴 수 있도록 이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실제로 잘 알고 있는 것은 에벌린이다. 여성이 남성의 도움 없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내고 그것을 가꾸어나간다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는 여성의 도움 없이(그러니까 유성 생식 없이) 새 생명을 만들어냈어도 그걸 잘 키우지 못하고 망치는데, 결국 다른 여성이 이를 돌보는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엥, 이거 그냥 현실에서 흔하게 있는 일 아니냐? 남자가 생명을 만들고도 감당 못해서 버린 게 네이선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거예요. 프랑켄슈타인 박사도 그랬고. 깔깔. 어쨌거나 인간 복제라는 SF적 소재를 여성 혐오라는 현실과 잘 버무려서 진짜 잘 쓴 소설이다.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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