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스티븐 킹, <스티븐 킹 단편집: 옥수수 밭의 아이들 외>

스티븐 킹의 걸작선 중 하나로, 단편소설이 무려 스무 편이나 실린 단편소설집. 아니, 고르고 고른 게 스무 편이나 된다고요? 이만큼 쓰기도 쉽지 않을 텐데 각각 다 다르고 개성 있게 잘 쓴 게 진짜 작가의 능력이구나 싶었다.
한 편 한 편 다 소개했다가는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가장 인상 깊었던 몇 편만 골라 보겠다.
<예루살렘 롯>이 아마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단편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이게 <살렘스 롯>의 말하자면 프리퀄이라고 한다. 찰스 분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하인인 캘빈 매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찰스 분의 일가가 어떻게 기괴한 믿음을 통해 파멸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맹글러>는 좀 더 현실적인 공포로, 헌튼과 잭슨은 사람들의 피에 굶주린 기계(’맹글러’)를 어떻게든 엑소시즘하려 한다.
<부기맨>은 동명의 영화 <The Boogeyman(부기맨)>(2023)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어둠 속 괴물 ‘부기맨’은 영미권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라 할 수 있는데, 솔직히 한국인인 나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굳이 이 소설만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둠 속에서 나를 공격할 수 있는 괴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뜨끈한 아랫목에서 이불 덮고 자서 침대 밑 괴물 따위를 만들어낼 일이 없었고, 그래서 이게 나에겐 참 우습게 들린다. 아이가 독립할 수 있게 일부러 부모가 아이를 혼자 재우는 과정에서, 혼자 남겨진 아이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이해가 가는데도 말이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 이런 ‘어둠 속 존재’가 있겠지만(한국에는 망태 할아버지?), ‘부기맨’이라는 이름이나 이런 설정이 이 특정한 존재를 안 무섭게 느껴지게 한달까…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도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다. 근데 좀 이상한 게, 번역하신 분이 존댓말과 반말 사이에 있는, ‘-하시오’ 체를 잘 못 쓰는 것 같다. 레스터 빌링스라는, 세 아이를 모두 부기맨에게 잃은 아빠의 말투가 아주 오락가락하는 게 정신없다.
<트럭>은 그야말로 트럭의 노예가 된 인간들 이야기이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나도 이 소설을 통해서 이해했다. 아이, 무서워.
<금연 주식회사>는 아주 수상하지만 효과적인 금연 방법을 제시한다. 당신이 담배를 끊지 못한다면,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치자.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든 니코틴의 유혹을 거부하려 하지 않을까? 물론 내가 그 끽연가의 ‘소중한 사람’이라면 부수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될 것 같지만…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로맨스를 가지고 논다. 우리는 애인이 우리가 원하는 걸 전부, 말도 하기 전에 알아차리기를 바라지만, 그게 정말로 건강한 연애일까? 상대가 어떻게 내가 원하는 걸 어떻게 알아차린다는 말인가? 예지력? 아니면 흑마법? ‘상대가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걸 채워 주는’ 게 사랑이고, 그런 사랑을 받는 게 로맨스라는 생각을 뒤짚는 단편소설.
(종이책 기준) 장장 576쪽이나 되는 책을 편집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군데군데 맞춤법 틀린 곳이 눈에 뜨인다. <부기맨>에는 ‘창녀 를’, ‘사랑하는구나 라는’처럼 쓸데없는 띄어쓰기가 들어간 곳이 보인다. <정원사>에서도 ‘지저분해 질’을 이상하게 띄어써 놓았다(’지저분해지다’가 한 단어니까 붙여 써야 한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에서는 ‘놀라지마’라고 쓴 것도 봤다. ‘~하지 마’를 도대체 왜 안 띄어 쓴 거지? 이게 눈에 딱 안 보이나? <꽃을 사랑한 남자>에서는 ‘오늘 따라’라고 잘못 썼고(’오늘따라’라고 붙여 써야 한다), <도로를 위해 한잔(One for the Road)>이라는 소설 제목에서는 ‘one’을 소문자로 시작했다. 제목으로 쓸 거면 각 단어 첫 글자는 대문자로 해야지.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one for the road’는 ‘도로를 위해 한잔’보다는 ‘떠나기 전에 마지막 한잔’으로 번역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좋았을 것 같다. <방 안의 여인>에서는 알 수 없는 줄바꿈이 여러 번 있었다. 종이책으로 보면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이북은 문장 중간에도 줄이 여러 번 바뀌어져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건지 감도 안 온다. 이것들 제발 교정 부탁드립니다.
스티븐 킹 작품들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내가 이 책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이미 다 읽었을 것 같고, 스티븐 킹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 장편소설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그의 장편은 대체로 두 권 분량이다) 분들에게 적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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