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케이트 포크, <Sky Daddy>

기억하시는가? 내가 작년, 2025년에 읽은 케이트 포크의 <심장이 뇌를 찾고 있음>은 단연코 SF-호러 소설 중 최고였고, 그래서 2025년 최고의 장르소설로 꼽기도 했다. <심장이 뇌를 찾고 있음> 리뷰에서 언급했던 저자의 신작을 드디어 끝냈다. 작년에 거의 나오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원서는 읽기 불편한 감이 있어서 중간에 한번 잊혔다가, 올해 들어 이 책을 끝내야겠다 마음먹고 다시 독서를 재개했다.
이 책은 기본 설정이 그야말로 미쳤다. 주인공은 30세 여성 린다인데, 그는 비행기성애자다. 승무원이나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을 정도로 비행을 좋아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진짜로 비행기에 성욕을 느낀다. 그의 꿈은 비행기와 ‘결혼’하는 것인데, 이는 보통 사람들이 ‘비행기 추락 사고’라 부르는 것이다. 13살 때 가족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 난기류 때문에 비행기가 흔들리고 위험했던 일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린다는 이제 보통 남자 인간들에게는 끌림을 느끼지 못하고 오직 비행기에게서만 성욕을 느낀다. 서른이 된 린다는 현재 샌 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어큐이티(Acuity)’라는 숏폼 플랫폼의 본사, ‘콘텐츠 모더레이션’ 부서(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유해한 것은 삭제하는 부서. 이런 업무는 시급은 적지만 근로자의 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에서 일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첫사랑’인 비행기, 즉 린다가 처음 난기류 소동을 겪은 비행기 N92823을 찾아 매일 비행기를 타고 싶지만 린다의 쥐꼬리만 한 시급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린다는 창문도 없는 조그만 창고 같은 셋방에서 살며 돈을 아끼고 아껴 한 달에 한 번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스트레스 및 성욕을 해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언젠가 자신의 첫사랑 N92823과 죽음 속에서 영원히 결합하리라 믿고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혹시 보신 적 있을지 모르겠지만, 차와 결혼한 나타니엘이라는 남자의 이야기가 미국 방송국 TLC에서 (’My Strange Addic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된 적이 있다(유튜브로 보기). 2015년 그는 자기가 ‘체이스’라고 부르는 1998년식 셰비 몬테 카를로와 ‘사랑’에 빠져 섹스도 하고 결혼도 했다고 한다(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이 차는 ‘남성’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2015년 방영 당시 체이스와의 ‘관계’는 5년이나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업데이트(기사)도 있다. 지금은 ‘렉시’라는 이름의 여성형 렉서스와 사귄다나 뭐라나. 이렇게 인간이 아닌 사물에게 성애를 느끼는 걸 사물성애(objectophilia 또는 objectum-sexuality)라고 한다. 자폐와 공감각증과 연관이 있음을 시사하는 논문도 있는 듯하다(링크).
린다의 사물성애를 저자가 어찌나 잘 표현했는지 이 소설은 정말 현기증이 날 정도로 역겹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남긴 메모의 80%가 ‘린다야 제발 정신 차려’라는 내용이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도대체 왜 그는 비행기에게 성애를 느끼게 된 걸까? 처음에는 그냥 얘가 단순히 미쳐서라고, 그냥 타고나기를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케이트 포크는 캐릭터를, 소설을 그냥 막 만드는 작가가 아니다. 읽다 보니까 그나마 심정적으로 조금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앞에도 말했듯이, 린다가 13살 때 가족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위험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그는 온 가족이 다 이렇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분명 무서운 생각이지만 나름대로 위안을 주는 구석도 있다. 만약에 이 자리에서 온 가족이 다 죽는다면, 적어도 그들이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것 아닌가. 그도 그런 게, 이 가족 여행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린다의 부모는 이혼했고, 둘 다 각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린다는 오빠인 앨(Al)과도 사이가 소원해졌다. 어린 린다가 보기에 이 난기류 사건은 그야말로 행복의 절정, 부모의 이혼 전, 오빠와 멀어지기 전, 가장 좋은 시기에서 삶을 끝마칠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거기에서 끝이 난다면 더 이상 나쁜 것들이 일어날 수 없을 거고. 그 난기류 위험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같이 죽으면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남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같이 죽는 것의 이점’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90%쯤 읽은 시점에서야 떠올랐다. 정확히 딱 이 인용문에서. 그 전까지는 그냥 진짜로 린다가 변태라고만 생각했다. 아니, 사실 변태 맞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래도 쪼오끔 심적으로 왜 여기에 매달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는 거다.
그때 나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지 않았다. 아직 우리 가족은 (이혼하거나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였고, 모두 살아 있었다. 나는 오직 행운아들이 그럴 수 있듯이, 그들을 당연히 여겼다. 나는 어깨 뒤로 흘끗 돌아보며, 사적인 불만에 잠긴 채 탑승교를 어기적거리며 내려가는 유령 같은 형태를 상상해 보았다.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는 소원한 사이였지만, 난기류가 우리를 다시 하나로 이어 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꼭 매달렸고, 나는 우리의 결속이 영원하기를 바랐지만, 그건 호텔로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만큼도 버티지 못했다. 그때엔 우리 부모님이 다시 다투기 시작했으니까. Back then, I didn’t appreciate what I had—my family still intact, all its members alive. I’d taken them for granted, as only the lucky could. I glanced over my shoulder now and imagined our spectral forms shambling down the jet bridge, sunk in our private grievances. We’d been estranged when we entered the plane, but turbulence brought us together. We clung to each other, and I’d hoped our union would be permanent, but it hadn’t lasted through the cab ride to the hotel, by which point my parents had resumed their quarreling.
린다에게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딱 한 명 있는데,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카리나라는 여자다. 그는 린다의 표현에 따르면 자기가 고등학교 때 자기를 괴롭혔을 법한, 예쁘고 잘나가는 그런 유형의 여자다. 소설 초반에 이미 린다는 카리나를 거의 우상 숭배하듯 엄청 대단하고 세련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가 ‘비전 보드 브런치(Vision Board Brunch, 줄여서 VBB)’에 초대하자 이에 응한다. 비전 보드가 뭔지 모르실 분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시각화의 한 도구로, 자기가 원하는 꿈 또는 목표의 이미지를 자신이 자주 볼 수 있는 곳에 붙여 두고 이것을 마음속에서 심상화해 현실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다(핀터레스트 이미지들을 참고하시라). 비행기성애자인 린다는 이 비전 보드라는 것을 자신의 궁극적 꿈, 그러니까 비행기와의 결혼(다시 말해 비행기 추락 사고)을 끌어당기기 위해 사용하기로 한다. 독자가 ‘끌어당김의 법칙’(위키페디아 페이지), 그러니까 생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개념을 믿든 안 믿든, 이걸 소설에 사용한 건 진짜 영리한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린다가 만드는 비전 보드들 속 이미지들은(1/4분기에 한 번씩 만나서 VBB를 가지므로 총 네 번의 비전 보드가 만들어졌다) 다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꿈, 비행기와의 결혼(다시 한 번 말하지만 비행기 추락 사고)만 제외하고. 하지만 결말을 생각해 보면(스포일러를 할 수가 없어서 정말 너무너무 아쉽다!) 이것도 이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것은 비전 보드의 힘인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어서 이 점도 흥미로웠다.
린다가 도대체 왜 그렇게 변태인가, 작가 본인이 그런 면이 있는 것인가를 알고 싶어서 케이트 포크의 인터뷰를 읽어 보았는데 다행히 이 비행기성애자인 면은 완전히 허구, 창작물인 듯하다. 근데 책 끝에 있는 ‘작가의 말(Acknowledgments)’에서 이 소설을 위해 비행기 관련 유튜브도 보고 비행기 트래킹 앱도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 자료 조사를 했다면서, 이제 “머리 위로 비행기의 엔진 소리를 들을 때면, 어떤 멋진 신사가 내 위로 날아가고 있는지 확인해 본다(Whenever I hear a plane’s engines overhead, I check to see which fine gentleman is flying above me).’라는 이 글을 끝내는 게 아닌가. 나는 진짜로 거짓말 안 하고 이 부분에서 소리 질렀다. 작가님 이러기예요? 내가 이 소설 읽으면서 린다가 ‘모든 비행기는 남성’이라고 하면서 모든 비행기의 생김새를 묘사하고, 심지어 자기가 만나는 남자들조차 비행기와 비교하는 걸 보고 학을 뗐는데! 약간 독자를 괴롭히시는 악취미가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밝혔듯, 이 소설의 영감이 된 것 중 가장 첫 번째이자 큰 것이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다. 이 소설의 첫 문장도 무려 “나를 린다라고 불러라(Call me Linda).”다(<모비 딕> 첫 문장이 ‘나를 이스마엘이라고 불러라(Call me Ishmael)’인 거 아시죠?). 이스마엘이 자신이 푹 빠져 있는 고래라는 대상에 대해 정말 온갖 잡지식을 늘어놓듯, 린다 또한 비행기에 대해 집착한다. 그리고 이건 인터뷰에서 알게 된 건데, 작가는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이 소설도 미국으로 번역되어 수출됐고, 꽤 눈길을 끌었던 듯싶다)도 영감 중 하나로 꼽았다. 확실히, 같은 인간들에게는 성애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걸 역겹고 끔찍하다고 여기는 여성, 사회적인 기술이 부족한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 영감의 원천이 보여서 납득했다.
또 하나, 인터뷰를 읽으면서 배운 놀라운 점은 이 소설 속 ‘결혼’은 일종의 페티시라는 해석이었다(인터뷰 링크). 린다가 연애라고 하기는 그렇고 성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대상인 데이브라는 남자가 있는데, 말하자면 린다의 상사다. 그는 자신의 전 부인과 그의 새 남자 친구에 집착한다. 린다의 유일한 친구인 카리나는 바람둥이 같아 보이는 남자 친구 앤서니를 어떻게 하면 결혼으로 몰아넣을까 궁리하고, 결국 비전 보드를 이용해(그게 정말로 통하는 거라면) 그를 프로포즈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카리나는 자신이 안정될 수 있는 관계, 자신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상황을 ‘결혼’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조종하려 하는데, 적어도 이런 형태,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에게 결혼하자고 조르거나 보채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는 형태의 집착이다. 린다가 비행기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것은 그렇지 않지만. 하지만 결혼이라는 게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와 평생을 함께하고 또 책임을 지겠다는 진지하게 하는 맹세가 아니라면, 카리나가 하는 결혼도 결혼이라고 할 수 있나? 그건 그냥 집착 아닌가? 페티시라고도 할 수 있고. 이런 해석은 신선해서 감탄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린다라는 인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독자는 아마 없을 테지만(사물성애? 사람들이 이해하기에 아직 백만 년은 이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겨운 인물을 어찌나 생생하게 잘 그려냈는지 감탄하며 읽을 이는 많을 것이다. 역시 케이트 포크다. 일단 위에서도 언급한 작가의 전작, 단편 모음집 <심장이 뇌를 찾고 있음>부터 읽어 보시고, 그의 독특한 글쓰기에 빠졌다면 이 소설도 시도해 보시라. 진짜 이 세상 SF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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