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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엘리, <연애하지 않을 권리>

by Jaime Chung 2019.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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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엘리, <연애하지 않을 권리>

 

 

그렇다, 나도 리디셀렉트에서 이 책을 보고 작년에 읽고 나서 감상을 쓴 그 책인가 했다.

(그 책이란 이 책을 가리킨다. 018/12/2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이진송, <연애하지 않을 자유>)

그런데 아니더라. 작가가 다르다. 뭐, 제목이 비슷하다는 데에서 내용도 비슷할 거라고 추측할 수 있긴 하지만.

 

두 책을 비교해 보자면, 둘 다 '커플'인 상태를 '정상'으로 보고 개인에게 연애를 강권하는 사회를 비판하며, 연애를 기본 세팅으로 두는 데에는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낮게 보는 '가부장'적인 사고가 기저에 존재한다는 주장 한다는 것이 공통 기조이다.

그렇지만 이진송의 <연애하지 않을 자유>가 이 문제에 조금 더 '덕후'스럽고 가벼운, 개인적인 접근을 취한다면(이 책의 마지막 장은 '연애하지 않을 이유' 중 하나로 '취미 생활(덕질)이 재미있어서'라는 이유를 내건다), 이번에 내가 읽은 엘리의 <연애하지 않을 권리>는 조금 더 사회학적이고 여성학적인 접근에 집중한다.

물론, 전자(<연애하지 않을 자유>)에서도 사회학적·여성학적 연구를 인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후자(<연애하지 않을 권리>)는 아예 저자 개인의 '덕후스러운' 사생활이랄지 취향 등을 상당히 배제한 느낌이다.

각 꼭지에서 다루는 주제와 관련된, 저자 지인들의 이런저런 고민이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그 안에 녹여 내는 것은 물론 있으나, 사적으로 '나는 이런 경험이 있었고(그게 덕질이든 뭐든 간에) 이러이러한 생각을 했다, 이런 다짐을 했다' 하는 이야기는 책 앞의 한 장과 책 뒤의 마무리 한 장 정도이다.

그거 말고 가운데 본문은 확실히 사회학적·여성학적인 포인트에 집중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아주 딱딱한 문체인 것은 아니다.

이 책(<연애하지 않을 권리>)도 이진송의 <연애하지 않을 자유>만큼이나 유쾌한 문체로 쓰였다. 인터넷 드립도 적절히 가져다 사용하고.

애초에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 연재되던 내용이었던 덕에 인터넷 매거진을 읽는 20~30대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레퍼런스가 곳곳에 존재한다.

또한 이 책의 특장점을 꼽아 보자면, 다른 책에서는 보기 드문 '성적인 이야기'까지 (간단히나마) 다뤘다는 것이다.

뭐, 어차피 이런 책을 찾아 읽는 독자라면 대개 성인일 테니 남우세스러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비연애'를 다루는 책들에서 왜 성(性)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까 약간 궁금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다룬다!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 보시라.

 

이 책의 저자도 지적하는 '뷰티 산업'의 문제는 나도 심히 공감한다. 아니, 애초에 대중들에게 어떤 불가능한(또는 적어도 성취하기 매우 어려운) '이상'을 제시하고서 대중이 그것을 얻으려고 애쓰는 과정을 통해 돈을 버는 산업이 어떻게 '진정한 아름다움'을 운운할 수 있다는 거지?

진짜로 모든 개인이(성별을 불문하고)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왜 굳이 뷰티 산업을 하나? (특히 너 말이야, 도브(Dove).)

뷰티 산업이 긍정하고 인정할 수 있는 '자기 수용'이란 결국 '꾸밈 노동'을 통해 단점을 개선시키는 것뿐이잖아.

예를 들어서 뚱뚱하다면 세로줄보다 가로줄이 있는 옷을 입고, 피부 톤이 얼룩덜룩하다면 이런저런 메이크업 제품을 이용해 톤을 보완하는 것 말이다.

'개성 있는' 화장이나 머리 또는 옷 스타일링으로 개인의 아름다움을 정의하기보다는(=뷰티 산업에게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기보다는) 그냥 삶을 대하는 태도,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 주변 환경, 또는 자신의 삶에서 성취하는 것 등을 통해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풀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책에서는 로레알에서 'World of Beauty'라는 타이틀의 프로모션 영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로레알이 나라별 수도를 방문하여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주제로 길거리 여성들을 무작위로 인터뷰한 영상이다.

이 영상에서 인터뷰에 응답한 여성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름다움이란 태도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움이란 유능함, 자신감, 자기 발견, 그리고 자유로움이에요."

"아름다움이란 자연스러운 내가 되는 것, 자신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모든 면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거예요."

"아름다움은 에너지예요."

"제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거예요."

"아름다움이란 경험에 가깝죠. 자연스럽고, 선명한 경험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가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모두 맞는 말이고, 정말 긍정적인 개념들이다.

그렇지만 이 영상의 제작자사가 로레알이기 때문에, 뷰티 산업의 큰손이기 때문에 이 영상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차라리 공익 광고였다면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화장품 회사가 이렇게 말하니까 '어, 꿍꿍이가 뭐지?' 싶은 거다. '이번엔 뭘 더 팔아먹으려고?'

(내가 위에서 이야기한, 뷰티 산업의 '다양한 아름다움' 추구와 그 아이러니함에 관해서는 내가 예전에 감상을 쓴 다음의 책들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2018/10/12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앤디 자이슬러, <페미니즘을 팝니다>

2018/08/27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제스 베이커,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또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싶다. 왜 한국 드라마에서 여 2, 남 1의 삼각구도를 이루는 경우 서브 여주 쪽이 더 똑똑하고, 예쁘고, 능력 있게 그려지는 것일까?

그녀들은 왜, 경제적으로 더 부유하고 사회적으로도 더 성공한 모습으로 그려지더라도, '연애'에서는 늘 실패하는 걸까?

그리고 (메인) 여주는 왜 늘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여자인 것일까?

그거야 여자의 삶이 '특별'하고 '유의미'하게 되려면 남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브 여주가 아무리 잘났어도 남자 주인공의 마음을 차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녀의 삶은 행복할 수가 없다.

똑똑하지 않더라도, 잘난 점이 없더라도, 남자 주인공이나 그 가족들에게 살갑게 굴고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인싸력'이 있는 여주인공이 마침내 남자 주인공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나는 여태껏 '특출나게 똑똑하지 않은(사실 이는 너무 좋게 포장한 표현이고, 거칠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멍청한', '지적 수준이 평균 또는 그 이하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성을 TV 드라마나 만화 등의 여자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이유가 그냥 '누구나 쉽게 자신을 넣어 이입할 수 있는', 무특징이 특징인 메리 수(Mary Sue) 유형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인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더라. 아니, 오히려 그렇게 별로 잘난 거 없지만 따뜻한 마음이 있고 성격이 밝고 활달하다는 특성을 가진 거 자체가 엄청난 '부스트'로 여겨지는 것 자체가 여성에게 지성이나 다른 능력 등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타인을 돌보는 '돌봄 노동'만 잘할 수 있으면 된다 말하는 거랑 마찬가지잖아!

도대체 여성의 지성을 얼마나 무시하면 이런 소리를 할 수가 있는 것인지,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다.

(여성의 다른 능력보다 '돌봄 능력'을 최고로 치는 캐릭터에 대한 분석은, 최지은 기자의 <괜찮지 않습니다>라는 책의 <응답하라, 누구의 딸일 수밖에 없는> 꼭지에 아주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저자는 <응답하라 1994>의 성나정,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 <응답하라 1988>의 성덕선이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우리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여성상을 분석한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지 않은 나도 대충 기사나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내용으로 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였고, 무엇보다 내용이 무척 흥미로우니 이 책도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셜록'만 한 천재는 아니어도, 모두가 최소한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 관해서는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지식 몇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걸 다 잘하는 팔방미인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관심 분야에 대해서는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설정도 꽤 일반적(generic)이고 특출나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주인공을 이렇게 설정한다 해도 아주 도드라지지는 않는다는 건데, 이렇게 조금 더 개인(특히 여성)의 지성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설정의 인물이 대중 미디어에서 더 자주 보였으면 좋겠다.

아니면 아예 대놓고 똑똑하다는 설정도 좋고. 대신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설정 따윈 넣어 둬, 넣어 둬.

 

책 리뷰가 생각보다 조금 더 길어지긴 했는데, 그래도 그만큼 책에서 지적하는 포인트가 꽤 유효(valid)하며 공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글에 언급한 책들은 몽땅 다 추천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런 책들이 더 많이 읽히고 대중의 공감대를 얻으면 우리 사회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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