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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스탠바이, 웬디(Please Stand By, 2017) -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소녀, 덕심으로 로스 앤젤레스를 향해 떠나다!

by Jaime Chung 2019.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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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스탠바이, 웬디(Please Stand By, 2017) -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소녀, 덕심으로 로스 앤젤레스를 향해 떠나다!

감독: 벤 르윈(Ben Lewin)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웬디(Wendy, 다코타 패닝 분)는 매일 일정한 루틴을 철저히 지키며 산다. 또한 그녀는 <스타 트렉(Star Trek)> 시리즈의 열혈 팬이기도 하다.

스코티(Scottie, 토니 콜렛 분)는 웬디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의 담당자이다. 그녀는 모든 환자들을 따뜻하게 돌봐 주고,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제지하기도 한다.

어느 날, 웬디는 팬들이 <스타 트렉>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직접 창작해 보내면 그중 최고의 에피소드를 진짜 <스타 트렉>의 한 에피소드로 제작하겠다는 작문 대회의 광고를 보게 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특유의 집중력으로 모든 장면을 세세하게 써 내려간 웬디.

토요일이 되어 그동안 보지 못한 언니 오드리(Audrey, 앨리스 이브 분)가 자신을 보러 오자 이제는 자신이 조카(=언니의 딸) 루비(Ruby)를 돌볼 수 있다고, 자기를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한다.

오드리는 마음이 아프지만 웬디가 어린애를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해 이를 거절하고, 이에 웬디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아 자기 머리를 때리기 시작한다.

황급히 달려온 스코티가 그녀를 진정시키긴 했지만, 이미 웬디는 슬픔에 빠진 상태이다. 평소와 달리 저녁 먹기도 거부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스타 트렉> 작문 대회 접수 기간이 2월 16일, 화요일까지다.

이미 토요일 저녁이 다 되어서 우체국은 닫았다. 일요일에는 우체국이 열지 않고, 게다가 월요일은 공휴일이라 그날도 열지 않을 것이다.

화요일까지 자신이 쓴 각본을 접수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패닉에 빠진 웬디. 그렇지만 <스타 트렉>의 광팬으로서 이 기회는 절대 놓칠 수 없다.

새로운 환경이 너무나 두렵지만 그래도 직접 각본을 제출하기 위해 로스 앤젤레스에 있는 파라마운드 영화사로 가기로 결정한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 남들 몰래 그곳을 빠져나온 웬디. 과연 그녀는 무사히 로스 앤젤레스에 도착해 자신의 각본을 제출할 수 있을까?

 

'시나본(Cinnabon, 시나몬롤도 유명한 디저트 가게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웬디.

 

로스 앤젤레스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가 쫓겨난 웬디.

가방에 들어 있는 조그만 강아지는 피트(Pete)인데 웬디가 길을 떠날 때 하도 쫄쫄 따라와서 내치지 못하고 같이 다니게 됐다.

 

웬디를 찾으러 온 세 사람. 왼쪽부터 웬디의 친언니 오드리, 가운데가 웬디를 담당하는 교사 스코티, 오른쪽에 피트를 안고 있는 남자애는 스코티의 아들 샘.

 

웬디(오른쪽)와 이야기 중인 샘(왼쪽)

 

원제의 'Please Stand By'는 스코티가 웬디를, 그리고 웬디가 자기 자신을 진정시킬 때 하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흔히 '자폐증'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대략 2000년부터)에는 '자폐증'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그 정도가 심한 환자가 있고 덜한 환자가 있어서 '스펙트럼'처럼 그 모습이 다양하다 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더 적절한 용어로 본다.

자폐 스펙트럼의 정의는 이러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서 문제를 나타내며, 유아기에 나타나는 옹알이가 나타나지 않거나 일정 수준까지 발달한 후 퇴행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타인에게 눈을 맞추거나 미소 짓기, 대화 등의 관심을 잘 보이지 않고 가상 놀이를 하는 데 어려움을 나타내며, 정서적 공감이나 교류가 어렵다. 또 다른 특성으로는 행동과 관심사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으며, 특정 물건이나 본인이 정해놓은 행동양식이나 순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진단 시 아스퍼거장애와는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결함이 있으나 인지적, 언어적 장애는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 [autism spectrum disorder] (두산백과)

 

나는 <스타 트렉>을 잘 모르고 심지어 최근에 리부트되어 영화화된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크리스 파인 등이 주연한) <스타 트렉> 시리즈도 안 봤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저런 영화나 미드/영드를 보면서, 또는 그에 관한 글을 읽으며 주워들은 지식만 가지고도 왜 웬디가 <스타 트렉>을 좋아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스팍(Spock)'이란 캐릭터가 아주 철저히 이성적이고 지적이며 (인간의) 감성을 절제하다 못해 감정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이겠지.

사회적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는 웬디가(스코티가 웬디에게 연습시키는 것 중 하나가 3초간 아이 컨택트를 유지하는 것이다) 스팍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에게 이입하며 공감했으리라고, 나처럼 <스타 트렉>을 안 본 사람도 정말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게다가 스팍에게는 '커크(Kirk)'라는 좋은 친구가 있으니, 웬디가 <스타 트렉>에 열광하는 건 그녀가 지금 당장은 사회성이 대단치 않아도 결국엔 그녀를 이해해 주는 좋은 이와 서툴게나마 좋은 관계를 맺게 되리라는 희망이랄까 전조(foreshadow)라고 할까, 그런 것을 보여 주는 장치로도 해석될 수 있겠다.

 

영화는 시놉시스만 읽어도 대략 예상할 수 있듯이, 어딘가 위태위태하고 조심스러운 '자폐 스펙트럼 장애' 소녀의 모험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우리 웬디가 이런 우여곡절을 겪는답니다!' 하고 호들갑을 떨지도, 그렇다고 웬디를 애처럼 취급하며 멜로드라마스럽게 눈물을 짜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냥 웬디가 어떻게 공포를 이겨내고, '뽁뽁이(bubble wrap)'에 싸인 듯한 안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벗어나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스타 트렉> 팬들이라면 이 영화에 진짜 <스타 트렉>의 캐스트 중 하나라도 나와서 웬디에게 말을 걸어 준다든가 하는 '카메오' 장면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스포일러를 할 생각은 없지만, 혹시나 <스타 트렉> 팬들이 시놉시스만 읽고 낚일까 봐 말씀드린다. 그런 카메오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클링온어로 웬디와 다른 인물이 잠시 대화하는 장면은 있다. 클링온어를 배우시는 분들 참고하시길...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주인공 여성이 장애를 지녔지만 그에 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남성이 등장하는 영화는 여럿 있었다. 내가 지금껏 본 것 중 지금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A Brilliant Young Mind(2014)>, <Rain Man(1988)>, <I Am Sam(2001)>, <The Story of Luke(2012)> 네 편이다.

반면에 같은 장애를 가진 여성이 등장하는 건 <Temple Grandin(2010)>뿐이다.

물론 이 장애는 남성 환자가 여성 환자보다 4배 정도 많긴 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남성 CEO가 여성 CEO보다 그 수가 많다 해서 미디어에서도 CEO를 모두 남성으로만 그리면 어떻겠는가?

 '아, 여자는 CEO가 될 수 없는 거구나' 하고 여성들의 기를 죽이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좌절시키는 길밖에 더 되겠나. 내가 '미디어 속 묘사(reperesentation)'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하는 말처럼, "볼 수 없는 것은 될 수도 없다(You can't be what you can't see)".

<스타 트렉> 시리즈에서 흑인 여성인 우후라(Uhura)가 (메이드 따위가 아닌) 우주선의 통신 장교로 등장한 걸 보고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를 비롯한 많은 흑인 여성들이 기뻐하며 영감을 얻었는지를 생각해 보라.

장애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그녀의 이야기를 보여 주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래도 영화라 그런지 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모습을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 주기 어렵겠지만(사실 모든 병은 영화에서는 현실보다 '예쁘게' 그려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도 이렇게 여성형을 보여 준 게 어디인가.

 

영화의 마지막은 웬디가 그 모험 이후 확실히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역시나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만, 이 정도는 다들 예상하실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에게 다소 부담스럽고 어려울 수 있는 연애 면보다는 가족적인 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영화적인 측면에서 봐도 이게 안전한 선택인 듯하다.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의 인디 영화이다. 러닝 타임도 길지 않으니(1시간 33분가량) 가벼운 마음으로 볼 영화를 찾으시는 분에게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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