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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레저 시커(The Leisure Seeker, 2017) - 노년 커플의 죽기 전 마지막 일탈, 마지막 여행

 

 

감독: 파올로 비르지(Paolo Virzi)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조용한 동네. 트럼프가 대권 후보일 시절, 그를 홍보하는 선거 유세 차량의 쩌렁쩌렁한 소리만 울리는 이 주택가에 한 남자의 차가 어느 집 앞에 선다.

그는 이 집에 사는 부부의 중년 아들 윌(Will, 크리스티안 맥케이 분). 그는 부모님을 돌봐 드리러 왔다가 집 안이 텅 비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패닉에 빠진다.

옆집에 사는 친절한 부인인 릴리안(Lillian, 다나 아이비 분)과 이야기해 보니, 아침 일찍 차 엔진이 켜지는 소리가 났단다.

불길한 예감에 차고를 확인해 보니 부모님의 RV가 있어야 할 곳이 텅 비었다!

사실인즉, 윌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부모님인 존(John, 도날드 서덜랜드 분)과 엘라(Ella, 헬렌 미렌 분)는 이미 오늘 아침에 RV를 타고 길을 떠났다.

그들은 죽기 전에 딱 한 번, 마지막으로 존이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살던 집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윌은 누나 제인(Jane, 자넬 몰로니 분)에게도 미친듯이 연락하며 부모님을 걱정하는데, 사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아버지 존은 치매가 있고, 어머니 엘라는 온 몸 이곳저곳에 암이 퍼져 극심한 통증으로 진통제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여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두 사람은 도대체 왜 여행을 시작한 것일까? 과연 존과 엘라는 무사히 여행을 끝마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식들의 성화에 중간에 집에 돌아오게 될까?

 

'레저 시커'라 이름 붙인 RV를 주차해 놓고 그 앞에 앉아 이웃과 수다 중인 엘라(왼쪽)와 책을 읽는 중인 존(오른쪽).

 

참고로 엘라의 머리는 가발이다. 소설에서도 암으로 머리카락이 빠져서 가발을 쓴다는 묘사가 나온다.

 

RV를 타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고급 호텔에 묵기로 하고 스위트룸을 빌린 둘. 샴페인을 마시며 자축 중.

 

영화 후반, 목표하던 곳에 드디어 도착해 우여곡절을 겪고 난 후 존을 꼭 안은 엘라

 

마이클 저두리언(Michael Zadoorian)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우리나라에도 <레저 시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됐다)을 기초로 하여 영화화한 작품.

사실 원작 소설에 '바탕을 두었다'라고 하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일단 주인공 부부의 이름은 존과 엘라로 같지만, 자식 이름이 다르다. 소설에서는 신디와 케빈인데 여기 영화에서는 제인과 윌이다.

솔직히, 다른 설정 고치는 건 뭔가 의미가 있으려니 하고 사람 이름은 왜 굳이 바꾸는지 모르겠다.

딸과 아들이 낳은 자식들(=즉 주인공 커플의 손자손녀들) 이름도 다 바꿨다. 진짜 왜 굳이...?

 

그렇지만 이름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존에게 치매가 있고 엘라는 이런저런 암으로 진통제("파란색 알약") 없이 살기 어려운 상태라는 설정, 또한 그런 두 사람이 죽기 전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는 기본적인 큰 틀은 같으니까.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존이 (아마도) 고등학교 문학 교사였다는 설정, 그리고 둘이 향하는 목적지가 디즈니랜드가 아니라 헤밍웨이의 집이라는 설정이다.

첫 번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소설에서는 존이나 엘라가 과거에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소설 속 화자는 엘라인데 그녀는 지금 자신들이 가는 여행 과정을 묘사하고 그 와중에 기억나는 자녀들과의 추억을 언급할 뿐이다.

엘라가 처녀 시절에 자기 첫 남자 친구에게 어떻게 차이고 존을 만나게 되었는지, 예전에 딸아이를 무슨 별명으로 불렀는지 등은 이야기하는데 과거 직업 얘기는 정말 일언반구도 없다.

물론 만에 하나 내가 깜빡 놓치고 넘어간 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두 번 다시 그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건, 저자가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의지가 없다고 봐도 되는 것 아닌가.

사실 이 주인공 부부 나이쯤 되면 그 전에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먹고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기에 영화에서는 존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부여하고 그것이 아직도 영향을 끼침을 드러내는 장면들(존은 치매임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헤밍웨이에 대한 강의를 늘어놓는다. 또한 여행지에서 과거에 존의 제자였던 여학생을 만나기도 한다)을 삽입한 것이 저자의 의도와는 거리가 좀 있지 않나 싶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두 번째 차이가 조금 더 원작을 '훼손'한 느낌이다. 원작 소설에서 부부는 66번 도로를 따라 디즈니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왜냐? 자녀들이 어렸을 때 가족이 디즈니랜드로 갔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릴 겸, 또한 늘 한 번쯤 달려 보고 싶던 66번 도로를 경험할 겸해서 이곳에 가는 것이다.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참고로 나는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그다음에 봤다) 나는 늙은 부부가 디즈니랜드에 간다는 설정이 다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로 저자의 의도가 아닌가 한다. 디즈니랜드는 보통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고, '꿈과 희망'의 나라다.

그런 곳에 노인이 간다는 게 '어울리지' 않고 어색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소설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 인간은 나이가 들면 다시 애처럼 된다.

어릴 때는 넓고 크게 보였던 곳이 자라면 작고 대단치 않아 보이지만, 다시 나이가 들면 같은 곳이 예전처럼 넓고 커 보인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왜 굳이 존에게 문학 교사라는 설정을 부여하고 헤밍웨이의 집으로 간다는 설정을 넣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헤밍웨이의 집으로 가서 벌어지는 일들은 책에 전혀 나오지 않는 일들이니 신선하고 또 재미도 있지만, 나는 자고로 영화는 원작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라 이런 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작 소설에서 존이 읽는 책의 저자는 헤밍웨이도 아닐뿐더러, 존에게 치매가 있어서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해 엘라는 그 책 페이지가 넘어가는 모습조차 보지 못한다고 묘사할 정도다.

 

또한 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 너무 불평하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독자/관객분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까.

영화 속 존은 약간... 엘라에게 나쁜 남자다. 밑도 끝도 없이 엘라에게 '그 남자(=엘라의 첫 남자 친구)' 생각하느냐고 따져 대고, 뭐만 하면 아직도 그 남자 생각하느냐 타령이다.

다니엘 콜먼과 엘라가 끝난 게 벌써 몇 십 년 전 일인데!

게다가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나 엘라가 존에게 자기가 누군지 알아보겠느냐고 묻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소설에서는 존이 엘라의 질문에 '릴리안'이라는 낯선 여자 이름을 대고 엘라는 '릴리안? 그 년은 어떤 년이야!' 하고 잠깐 속상해하는 정도로 끝이 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엘라를 릴리안으로 착각한 존은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다' 운운하는 얘기를 꺼낸다. 여기에서 둘 사이에 뭔가 있었음을 직감한 엘라는 릴리안인 척하며 '함정 수사'를 벌인다.

그리고 결국 엘라가 임신했던 시기에 둘이 불륜 관계였음을 알게 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엘라가 하는 행동은 나도 공감이 되고 또 이해할 수 있긴 하다만, 아니 정말로 그 장면을 넣었어야 했어요?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존과 엘라가 삶의 끝자락에도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끼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데!

예를 들어서 이런 문단들 덕분에 내가 얼마나 눈물을 흘렸다고!

"존, 나 사랑해?"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본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당연히 사랑하지." 그는 내 쪽으로 몸을 수그려 입을 맞춘다. 그의 냄새가 난다. 아주 좋은 냄새라곤 할 수 없지만 여전히 내 남편의 냄새가 난다.

"알아." 나는 말한다. "그냥 당신 입으로 듣고 싶어서. 이젠 예전처럼 자주 말해주지 않으니까."

"까먹어서 그래, 엘라."

까먹어서 그래, 엘라.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

"알고 있어, 존." 나는 다른 한 손도 그의 얼굴에 갖다 댄다.

또는,

존은 나의 더러워진 사스 의료용 신발 위로 엉성하지만 단단히 리본 매듭을 짓는다.

"고마워, 존." 나는 남편에게 말한다.

그가 미소 짓는다. "무슨 소리야, 여보. 당신이야말로 날 위해 뭐든 다 해주면서."

존은 몸을 숙야 내 입에 키스를 한다. 입술이 갈라지고 건조한 게 느껴지지만 그 못지않게 근사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의 꺼칠꺼칠한 얼굴에 한 손을 갖다 댄다. 이윽고 그가 내 팔꿈치를 잡아 계단에서 자기 쪽으로 잡아당긴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고, 키스하고, 서로 배려해 주는 모습이 얼마나 찡하게 아름답던지.

 

<레저 시커> 원작 소설 국내 번역본 표지

 

전반적으로 나는 원작 소설이 영화보다 낫다고 본다. 번역에 관해 말하자면 이것도 소설이 훨씬 낫다.

DVD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돈을 주고 구입한 N스토어 버전에서는 부부가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는 걸로 옮겨 놨더라. 소설에서는 서로 반말을 하는데 말이다(이 정도 오래 같이 산 부부라면 반말하는 게 더 그럴듯한 거 같다).

뭐, 그래, 반말 또는 존댓말까지는 취향 차이라고 쳐도, N스토어 자막 번역은 길기도 하고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문어체 같다고 해야 하나.

분명히 귀에 '에밀리'라고 잘 들리는 사람 이름도 '에이미'라고 잘못 써 놓질 않나, 맞춤법도 군데군데 틀렸다. 어려운 영어는 안 나오니 그냥 영어 공부 겸 영어 자막으로 보시는 게 더 좋을 듯.

이 영화 자체는 분명히 영화 장르 구분이 나타내듯 모험물이자 코미디이고 드라마이자 로맨스 영화이다.

그것도 노년의 로맨스. 사랑이 영원할 수 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다고 믿으시는 분이라면 이 이야기를 추천한다.

물론 소설이 영화보다 더 로맨틱하니(위에 썼듯이 후자에서는 존이 바람 피운 적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어떤 미디어로 경험하실지 적당히 선택하시면 되겠다.

다행인 점은 어차피 둘 다 똑같이 해피 엔딩이라는 거다. 엔딩만큼은 영화도 그대로 옮겼다. 약간 해석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거기까지 스포일러 하지는 않겠다. 어쨌거나 노년의 로맨스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 소설과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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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다시보기 2020.09.02 14:43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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