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원더 휠(Wonder Wheel, 2017) - 사랑이란 정말 외부의 불가항력적인 힘일까?
감독: 우디 앨런(Woody Allen)
1950년대의 미국 코니 아일랜드(Coney Island). 수상 안전 요원인 믹키(Mickey, 저스틴 팀버레이크 분)는 이 영화의 해설자를 자처하며 이야기를 연다.
그는 이제 막 이 유원지 섬에 도착한 캐롤라이나(Carolina, 주노 템플 분)를 보여 준다.
그녀는 마피아인 남자와 열렬한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가 그와 싸우고 나서 그와 헤어져 다시는 자신을 찾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아버지 험티(Humpty, 제임스 벨루시 분)를 찾아 이곳에 왔다.
캐롤라이나가 험티를 찾아 길을 묻다가 한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지니(Ginny, 케이트 윈슬렛 분)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험티의 현 부인이다.
험티를 찾아온 캐롤라이나를 집에 들어오게 하고 잠시 이야기를 하던 지니. 그런데 험티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자기 딸 캐롤라이나를 보자마자 대뜸 화를 낸다.
그 내용인즉슨, '우리(험티 본인과 캐롤라이나의 생모)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끔찍이 아꼈는데 그런 마피아 놈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해? 네 인생 네가 마친 거지! 나는 다시 너 못 받아 준다', 뭐 그런 말이었다.
하지만 캐롤라이나는 남편의 부하가 자기를 쫓고 있어서 목숨이 위험하며, 돈이 단 한 푼도 없어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다고, 이곳에서 지내게 해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험티는 다시 딸을 사랑하던 마음을 회복하고 자신과 지니, 그리고 지니가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 리치(Richi, 잭 고어 분)와 사는 이 집에서 살게 해 준다.
예민하다 못해 히스테리컬까지 한 지니, 불같은 성격의 험티, 그리고 이 동네 남자들의 눈을 모두 사로잡을 미녀 캐롤라이나, 이 셋 사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또한 믹키는 이들과 무슨 관계가 있길래 이 이야기의 화자를 자처하는 것일까?
영화의 '내레이터' 역을 자처하는, 낭만적 기질의 믹키.
믹키와 바람을 피우는 상대인 유부녀 지니. 한때 배우였으나 지금은 수산물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 신세다.
참고로 뒤쪽에 초점이 흐릿하게 나온 여자가 캐롤라이나다.
캐롤라이나를 쫓아 온 마피아들에게 자기는 지난 5년간 딸을 본 적도, 이야기한 적도 없다고 거짓말 중인 험티(맨 왼쪽).
지니(가운데)가 캐롤라이나(오른쪽)와 길을 가다가 믹키(왼쪽)를 만나 믹키와는 그냥 친구인 척하며 캐롤라이나를 소개해 주는 장면.
이때부터 지니는 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이 아마존 스튜디오(Amazon Studios)와 협력해 만든 영화로, 현재 국내에서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한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국내에 DVD가 정식 발매되어서 난 그걸로 봤다.
케이트 윈슬렛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우디 앨런과 작업했다. 이전에 <매치 포인트(Match Point, 2005)>로 같이 일하게 될 뻔했으나, 케이트 윈슬렛이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바람에 이번에야 처음 만나게 됐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요 인물 모두 나름대로 매력과 사연이 있다. 그중 제일 내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지니와 믹키이다.
지니는 너무나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불안한 인물이다. 늘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날카로워진다.
지니는 험티라는 (두 번째) 남편을 두고 믹키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그 (현재) 애인에게 자기 과거, 그러니까 첫 남편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자기가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고 자신에게 사랑이 뭔지 가르쳐 준 사람은 그 첫 남편인데, '어쩌다 보니' 그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게 됐단다(바람을 피우는 건 길을 가다가 미끄러운 걸 밟고 넘어지는 것 같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첫 남편과 헤어지고 난 후에 마음을 꾹 다잡고 험티에게 마음을 붙이고서 살아 보려 했는데 그것도 또 잘 안 돼서 지금은 믹키랑 바람을 피우는 거다.
변명 없는 무덤은 없다더니. 애초에 그 첫 남편을 정말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면 애초에 그 바람 상대(지니와 같은 공연을 하던 상대역이었다)와 외도를 한 걸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마음속으로는 첫 남편을 깊이 사랑했어도, 자신은 그에게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사보타주(sabotage) 하는 방식으로 자기도 모르게 바람을 피우게 된 게 아닐까, 그렇게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런데 자기가 바람을 피웠다는 말을 왜 지금 자기가 바람을 피우는 상대에게 하는 걸까? 그건 정말 모르겠다. 심지어 지니는 이런 말을 믹키에게 하고 나서 자기와 믹키가 점점 진지한 사이가 되어 간다고 여기고 언젠가는 미래도 함께할 수 있다(=결혼할 것이다)고 믿게 된다.
이 무슨... 믹키는 여름 시즌만 이곳에서 일할 '수상 안전 요원'인데? 여름이 지나면 그 둘의 관계도 끝날 것임을 모르는 걸까? 뭐, 알아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수산물 레스토랑 일은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서 자기는 그냥 '웨이트리스'를 연기하는 거라고 말할 정도니까(지니는 원래 배우였다).
어쨌거나 나는, 지니가 매번 남편을 놔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게 만드는 그녀의 정신 세계가 흥미로웠다.
믹키 역시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인물이다. 그는 지니의 '애인'인데, 캐롤라이나를 만나고서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는가? 자기가 바람 피우는 유부녀의 딸(피는 섞이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양녀지만)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라니!
보통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유부녀의 애인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겠지만, 믹키가 애초에 그런 '보통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아니라서...
사실 믹키도 그녀가 유부녀란 사실을 알고 시작한 건 아니다. 알고 나서도 자기가 그런 거에 놀랄 줄 알았느냐며 둘 관계를 이어간 건 분명히 자기 의지이지만.
그런데 그래도 대개 자기 애인의 양녀라고 하면 뭔가 그래도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기에는 좀 꺼려지는 관계 아닌가?
물론 캐롤라이나를 보고 예쁘다, 미인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성으로 보고 설렘을 느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건 뭔가 죄를 짓는 기분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믹키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처음에는 얼굴을 보고 반하고, 몇 번 만나 보고 나서는 그녀의 스릴 넘치는 인생(마피아 남편을 만나 화려하고 부유하게 살다가 헤어져 지금은 쫓기고 있는 인생) 이야기를 듣고 감동까지 한다.
믹키는 극작가를 꿈꾸는 시인이라 그런지 너무나 낭만적이다. 여기서 낭만적이라는 건 남녀 사이의 이성적인 감정뿐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에 솔직하다는 의미이다. 환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고 할 수도 있고.
그는 사랑이 외부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강력해서 도저히 밀어낼 수 없고, 이성으로 행동할 힘까지 뺴앗아버리는 그런 것이라고.
그러니까 지니에게 반한 것처럼 캐롤라이나, 그러니까 보통 웬만해서는 이성적인 관심을 가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관계의 대상하고도 사랑에 빠지는 거다.
보통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을 조절할 줄 알거나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이라도 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좋아하는 이성에게 나도 관심이 가지만 둘 사이가 잘 진행되거나 이미 사귀니까 나는 마음을 접어야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믹키는 캐롤라이나가 지니의 양녀라는 사실은 전혀 마음에 걸리지 않는 듯하다. 그에게 단 한 가지 문제는, 캐롤라이나가 점점 좋아지는데 이 사실을 어떻게 지니 모르게 하고 캐롤라이나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다.
나도 모르게 사로잡혀 빠져 버리게 되는 사랑이란 개념은 참 낭만적이지만, 100% 늘 진실인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내 말은, 세계 최고 미남 미녀를 보고서 '와, 잘생겼다/아름답다'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자기 애인을 버리고 그 사람에게로 갈아탈 만큼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랑에 쉽게 빠지는 건, 사랑이 내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 따로 존재하는 어떤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사랑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고 순전히 우연에 의한 신비로운 존재가 되어 버리고, 따라서 애인에게 충실하지 못할 수 있다.
원래 처음 사랑에 빠지면 그 황홀함과 고통이 얼마나 강렬한가. 좋은 건 더 좋고 나쁜 건 배로 나쁘게 느껴진다. 거의 마약 같은 그 사랑의 첫 시기가 지나고 나면 그 열정이 안정되면서 서로가 좀 더 편해지고 익숙해지는 시기가 온다.
일명 '콩깍지'가 벗겨지고 점차 현실이 인식되는 시기다. 상대의 단점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때 위기도 찾아온다. 나를 사로잡았던 강력한 열정이 사라지고 나니 뭔가 내게서 빠져나간 거 같다. 왜 예전만큼 행복하지 않지?
사랑이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라 믿으면 이때 '사랑이 식었다'고 믿게 된다. 사랑은 수명을 다했다. 나는 그/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그녀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왜냐, 마음이 더 이상 설레지 않으니까.
하지만 사랑은 우리와 관계없이 따로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걸 느낄 수 있는 거지. 내가 잠시 사랑의 힘에 속박되었던 거라 생각하면 열정과 관심이 시들해지면 상대에게도 소홀해지게 된다.
하지만 오래 알콩달콩 잘 사귀는 연인들을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초기의 열정이 식은 후에도 서로 예의라고 할까, 지킬 것은 지킨다. 이 사람의 성격과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을 알고 있으므로 그런 것들을 이해하고 배려해 준다.
예를 들어 당장 애인과 싸웠어도 이 사람과 헤어질 정도가 아니라면 적당히 자신과 상대의 유형에 맞게 최대한 빨리 그날 이내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열이 식을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이 문제를 생각을 해서 대화로 풀어 나가자,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사랑에 빠지는 건 외부의 어떤 강렬한 힘 덕분이라 쳐도, 사랑하는 관계를 이어나가는 건 나와 상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사랑은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둘이 최대한 대화를 통해 고쳐 나가든가 적어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 후 거기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여기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믹키는 이런 개념이 전혀 머리에 없으니 캐롤라이나라는 새롭고 신선한 힘이 나타나자마자 바로 거기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가 지니의 방해 없이 캐롤라이나와 사귀게 되었다 해도 둘이 정말 행복하고 오래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나갔을까? 글쎄, 내가 보기엔 그럴 가망은 전혀 없다.
사랑을 낭만적으로 신화화하면 이런 덫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디 앨런은 전작 <마이티 아프로디테(Mighty Aphrodite, 1995)>에서 감독은 '고대 희랍 비극'의 모습을 보여 주려 했다.
<원더 휠>에서는 믹키의 입을 빌려 다시 한 번 고전 비극에서 주인공의 몰락을 가져오는 결함(문학 용어로 이를 'tragic flaw'라고 부른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믹키가 자기 기질은 너무 낭만적이라고 이야기할 때 지니도 한 남자에게 충실하지 못한 자신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인데, 이 장면이 아마 이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단적으로 딱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캐롤라이나는 지니의 불안정하고 히스테릭한 성격에 휘말려 피해를 입은 불쌍한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험티 역시 지니라는 여자를 잘못 만나서 딸을 잃고 망연자실하게 됐다.
학부 시절에 한 교수님이 "운명이란 성격 더하기 시간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이 딱 이 상황에 들어맞는 듯하다.
같은 사건이라도 개인의 성격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니 그 결과는 당연히 다를 것이고, 따라서 개인의 운명은 그 사람의 성격으로 어느 정도 점칠 수 있다는 게 교수님의 말씀이셨다.
지니가 그렇게 바람을 피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믹키와 애인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캐롤라이나는 지니의 질투와 분노로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개인의 성격, 기질, 결함,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운명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다. 또한 사랑에 대해서도 숙고하게 한다.
흥미로운 드라마이자 성격 연구인 영화를 찾는 분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