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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텐 아이템 오어 레스(10 Items or Less, 2006) - 너무나 다른 두 세상이 만났을 때 피어나는 우정

by Jaime Chung 2019.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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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텐 아이템 오어 레스(10 Items or Less, 2006) - 너무나 다른 두 세상이 만났을 때 피어나는 우정

 

 

감독: 브래드 실버링(Brad Silberling)

 

4년간 일을 쉬었던 대배우, 모건 프리건(Morgan Freeman, 모건 프리먼 분)은 작은 인디 영화에 참여해 보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일단 어떤 영화인지 대충 둘러보고 캐릭터 연구에 대한 감을 잡을 요량으로 승낙한다.

그는 패키(Packy, 조나 힐 분)라는 청년이 태워다 주는 밴을 타고 한 동네 마트로 가게 된다. 가는 길에 패키는 누가 봐도 모건 프리먼 본인이 아닌, 아마도 '짝퉁' 배우가 한 것 같은 오디오북을 듣고 감탄했다며 본인에게 틀어 준다.

어이가 없어진 모건 프리먼은 자기라면 책을 이렇게 리듬감 없이 읽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보기도 보여 주지만 패키는 아무래도 구분을 못하는 듯.

어쨌거나 이 청년은 두어 시간 후에 데리러 오겠다며 크기만 크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건물 앞에 모건 프리먼을 내려준다.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도 모르는 패키.

과연 정말로 자기를 데리러 돌아오기나 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대배우는 마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10개 이하 소량 계산대(10 Items or Less)에서 혼자 열심히 일하고 있는 스칼렛(Scarlet, 파즈 베가 분)을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그녀는 손님들이 계산대에 장바구니를 내려놓기도 전에 그 안에 든 상품의 가격을 모두 파악하고 번개 같은 속도로 계산해 가격을 말해 준다.

이 광경을 보고 흥미를 느낀 모건 프리먼은 그녀에게 다가가 마트 직원이라는 '캐릭터'를 연구하는 데 도움을 받고 싶다고 말을 꺼내는데...

 

스칼렛(오른쪽)의 후진 차를 타고 다니며 스칼렛을 도와주는 모건 프리먼(왼쪽)

 

이 장면에서 스칼렛이 입고 있는 저 파란색 탑도 무려 모건 프리먼이 골라 준 거임ㅋㅋㅋㅋ 패션 잘 아시네요...

 

모건 프리먼이 '모건 프리먼' 본인으로 나오는 영화다. 러닝 타임은 약 82분으로 짧은데 딱 그 정도가 루즈한 느낌 없이 좋다는 느낌.

간단히 말하자면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속한 사람이 만나서 (하루 만에) 우정을 키우는 이야기인데, 그 양극단의 예로 성공한 '대배우' 모건 프리먼과 스페인계 노동자 스칼렛이 제시되었다.

 

사실 영화 속 '모건 프리먼'의 모습이 배우 모건 프리먼 본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냥 스칼렛과 무척 다른 사람의 예, 대척점으로 그냥 그런 캐릭터를 설정한 것 같다.

예컨대 영화 속 '모건 프리먼'은 자기 외모에 엄청 신경 쓰고, 패션도 잘 알며, 영화 DVD 코너에서 가격이 인하된 자기 영화 타이틀을 슬며시 다른 타이틀들 뒤로 숨기는 그런 사람이다.

또한 낯선 사람과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근하게 말을 잘 주고받으며 타인의 협력을 이끌어낼 줄 아는 '핵인싸'로 묘사된다.

무엇보다도, 이게 제일 비현실적인 건데, 미국의 대형 할인점인 '타겟(Target)' 매장에서 8달러짜리 셔츠를 보고 이런 제품이 어떻게 이것밖에 안 하느냐며 놀라고, 티셔츠의 면 TC(thread count, 우리말로는 '수'라고 하며 숫자가 높을수록 촉감이 부드럽지만 동시에 쉽게 헤진다는 단점이 있다)에 감탄한다. 메이크업도 어쩜 그렇게 잘 아는지.

이걸 보다 보면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 리가 없다' 싶어서 이게 진짜 모건 프리먼 본인은 아니겠구나 싶어진다.

어쩌면 실제로도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배우 개인의 성격이나 사생활까지는 모르므로 패스.

 

어쨌거나 이런 '핵인싸'와 대척점에 있는 스칼렛은 일단 스페인계 여성이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잘한다.

모건 프리먼이 너무 부자라서 '다이너스 클럽(Diner's Club, 미국의 신용 카드 회사에서 발급하는 신용 카드로, 연회비가 비싸고 혜택이 많은 프리미엄 카드로 여겨진다)' 카드를 가지고 다니며 '타겟'을 보고 그 새로움에 신이 났다면, 스칼렛은 '전남편'과 헤어졌지만 정식 이혼할 돈은 없어서 아직도 같이 살 정도다(심지어 '전남편'의 새로운 여자는 같은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다른 여직원이다).

의욕도 없고, 딱히 꿈도 없지만, 슈퍼마켓 일이 끝난 후 한 건설사의 비서의 비서를 구하는 자리에 면접을 보러 가야겠다는 정도의 목표는 있다.

엄청 수줍은 편은 아니지만 모건 프리먼의 인싸함에 비하면 그녀는 단연코 아싸 측에 속한다.

 

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글쎄, 양극단은 통한다고 하지 않나.

모건 프리먼은 스칼렛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인생은 끝났고, 별로 기대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친구도 없는 스칼렛이 꼭 자기를 닮은 것 같다나.

그래서 모건 프리먼은 스칼렛이 면접을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를 먹으면서 그녀가 일하는 '10개 이하 소량 계산대'처럼 '인생에서 지키고 싶은 것 10개'를 대 보라고 하기도 하고.

스칼렛은 처음엔 7개밖에 대지 못하지만 모건 프리먼과 하루를 보내고 헤어질 때쯤엔 하나를 덧붙일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라고.

 

영화는 둘이 서로 너무나 다른 세상에 속하다 보니 다시는 만날 일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그저 서로의 뺨을 쓰다듬으며 쳐다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사실 모건 프리먼이 '너 테니스 쳐? 우리 집에 와. 일주일에 한 번쯤 점심 같이 먹자' 하고 제안하기도 하는데, 그런 말이 공허한 약속일 뿐이며 둘은 결국 각자의 세상으로 돌아가리라는 걸 둘 다 너무 잘 안다.

물론, 처음에 몇 번은 노력해 볼 수 있겠지. 몇 번은 식사를 같이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안부를 물어볼 것이다.

그러다가 서로의 경험이 너무나 달라서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점차 멀어지겠지.

아주 힘들거나 뜻깊은 경험을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도 각자 다른 길로 나아가면 서로 경험이 달라져서 공통분모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그럼 사이도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게 솔직히 현실 아닌가.

자신들도 그렇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저 상대방의 뺨을 만지며 조용히 받아들이는 그 장면이라니... 가슴이 찡했다.

 

아, 역시나 '대배우'인 대비 드비토(Danny DeVito)가 카메오로 잠깐 출연한다.

 

도로에서 대니 드비토를 마주치자 모건 프리먼이 "Hey, Big DS!" 이러는데 그 차에 대니 드비토랑 그의 아내가 타고 있음ㅋㅋㅋㅋ

 

또한 <빅 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의 '셸든' 역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짐 파슨스(Jim Parsons)가 스칼렛이 면접을 보는 건설사의 직원 역으로 출연한다. 정말 잠깐이긴 한데 짐 파슨스의 대사가 너무 웃기다ㅋㅋㅋㅋㅋ

 

대사가 무려 "당신은 내가 여자가 되고 싶게 만들었어요"임ㅋㅋㅋ 모건 프리먼이 대꾸하기를, "제가 사람들에게 그런 영향력을 끼치곤 하죠".ㅋㅋㅋㅋㅋㅋ

 

영화 크레디트 올라갈 때 중간중간에 아웃테이크(Outtake)가 공개된다. 예를 들어 모건 프리먼이 '타겟'에서 물걸레 파는 법을 배우는 장면 같은 것.

 

살면서 만날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도무지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사람들끼리 만나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할 만한, 숨겨진 보석 같은 영화다. 굿!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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