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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테리 이글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by Jaime Chung 2019.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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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테리 이글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영국의 저명한 비평가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이 문학을 읽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다.

나는 학부 시절에 테리 이글턴의<문학 이론 입문(Literary Theory: An Introduction)>을 가지고 씨름을 했는데, 그 책보다 지금 이 책(<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이 훨씬 쉽고 친절하다.

<문학 이론 입문>은 확실히 전공자를 위해 다양한 문학 이론들을 전부 살펴보는 입문서이고, 그래서 바르뜨, 라깡 같은 비평가들의 이름이 계속 나와 어렵고 헷갈릴 수밖에 없다.

반면에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은 비전공자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 심지어 상냥한 존댓말로 번역돼 있다(이런 친절한 대접은 초등학생 이후 처음이다)!

 

테리 이글턴의 말마따나 '섬세한 문학 읽기를 위하여' 문학을 읽을 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을 다섯 개로 나누고, 그것을 각각 챕터로 삼았다. 즉, 도입부, 인물, 서사, 해석, 가치가 큰 뿌리가 된다.

그리고 그 밑에 각각 두 개에서 다섯 개의 포인트가 작은 뿌리로 뻗어 나와 있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바를 구체적인 작품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 주는데, 전공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들(=<오이디푸스>나 <롤리타>, <맥베스>, <모비 딕> 같은, 비전공자들도 한 번쯤 들어 봤을 만한 고전)이 약 60%를 차지한다. 나머지 40%는 잘 쓰지 못한 글의 예로 선택된 시나 작자 미상 동요, 또는 전공자들도 굳이 찾아 읽지 않으면 잘 모를, 비교적 덜 읽히는 작품들이다.

따라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영문학을 좀 공부해 보고 싶다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이 책에 예로 언급된 작품들을 찾아서 보면 좋겠다.

 

테리 이글턴이 짚어 주는 '문학 읽는 방법' 중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 몇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문학 속의 인물은 그 이전의 역사가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희곡이나 소설의 "문학적 성격"을 간과하는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는 작품의 인물들을 실제 사람처럼 다루는 것입니다."

희곡이나 소설 속 인물은 실제 인물에 기반을 했을 수는 있으나 문학 작품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허구이다. 따라서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그런 실제 인물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문학 속 등장인물을 대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참고로 다음 이야기에 나오는 해럴드 핀터는 현대 연극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영국의 극작가이다) 하나. "해럴드 핀터의 희곡을 상연하려고 준비하던 한 연극 감독이 그 극작가에게 그의 인물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넌지시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핀터는 "우라질, 당신 일이나 신경 쓰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둘째,

"캐릭터라는 단어의 의미가 한 개인의 독특한 특징에서 개인 그 자체로 바뀐 것은 온 사회의 역사와 얽혀 있습니다. (...) 우리를 서로 구분해 주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톰 소여를 톰 소여로 만드는 것은 그가 헉 핀과 공유하지 않는 속성입니다. 맥베스 부인을 그녀 본연의 존재로 만드는 것은 그녀의 맹렬한 의지와 공격적 야심입니다. 그녀가 고통받고 웃고 슬퍼하고 재채기를 해서가 아니지요. 이런 것은 그녀가 다른 인간들과 공유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로 그녀 성격의 일부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보면, 다소 기이한 이 인간관은 인간 존재와 행위의 많은 부분, 어쩌면 대부분이 실로 그 사람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암시합니다. 그것은 그의 독특한 점이 아니니까요. 성격이나 개성은 비길 데 없는 것이라고 여겨지므로, 그것은 성격의 일부로 간주될 수 없습니다."

성격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이 말을 듣고 머릿속에 전구가 켜진 듯했다.

 

셋째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때로 이걸 의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 포인트이다.

"그런데 작가는 반드시 진심으로 글을 써야 할까요? 공교롭게도, 거짓 없는 진심이란 비평적 논의에서 큰 의미가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때로는 현실 생활에서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훈족의 왕 아틸라의 행동이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제인 오스틴이 그 밉살스러운 콜린스 씨를 묘사할 때 진심이었다든지 혹은 알렉산더 포프가 "바보들은 천사가 발을 내딛기 두려워하는 곳에 무모하게 달려든다."라고 썼을 때 진심이었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작가는 진심을 표현하려고 애써도 결국에는 가짜처럼 들리는 작품을 만들 수 습니다."

나는 예전부터 '진실성'이란 것으로 상대를 판단하려는 행위가 부질없다고 생각해 왔다. 실제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진심'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진대(예를 들어 나는 상대가 나를 싫어해서 길거리에서 나를 보고도 무시하고 지나간 거고 생각했는데 사실 상대는 그날 컨택트 렌즈를 안 껴서 그냥 나를 못 보고 인사를 못 한 것이었다든지) 비언어적인 신호들도 감지할 수 없는 '글'의 진실성을 어떻게 파악하나?

뭐, 어떤 작가가 자서전을 써서 출판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 관계가 전부 틀렸다든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과장했다든가 하는 식으로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경우가 있으면 모를까. 그것도 사실이 밝혀지게 되기 전까지는 '와, 이 사람 참 놀라운 삶을 살았구나' 하고 감동을 받을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이 '진실성', 또는 '진심'이란 추상적인 개념은 무엇이 되는 것인가?

사람들은 자기가 타인의 '진심'을, '진실'과 '거짓'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순진하게도 믿는다. 나는 그런 걸 오래전에 관뒀지만.

어쨌거나 문학 비평에서 '진심' 운운하는 소리는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저자는 영문학 비평가이고 이 책도 영문학 작품들을 예를 들어 영문학과 관련해 쓰였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언급하는 '문학 읽기 방법' 또는 '문학 비평법'은 모든 문학에 적용 가능하다.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 작품 내에서 더 많은 의미를 건져내고 더 그럴듯한(문학에서는 '옳'거나 '그른' 해석은 없고 다만 어떤 해석이 다른 것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만 할 수 있다) 해석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비슷하게 토마스 포스터 교수의 <교수처럼 문학 읽기>도 문학을 읽는 법을 가르쳐 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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