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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Marjorie Prime(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2017) - 우리를 먼저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

 

감독: 마이클 알메레이다(Michael Almereyda)

 

영화의 배경은 근미래. 여든 살쯤 되어 보이는 여인, 마조리(Majorie, 로이스 스미스 분)이 자신의 집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다. 그녀는 치매를 앓고 있다.

잠시 후, 40대쯤 되어 보이는 젊고 잘생긴 남자가 등장해 그녀에게 말을 건다.

그의 이름은 월터(Walter, 존 햄 분), 그녀의 남편이다. 월터는 마조리에게 자신들이 젊었을 적 청혼하던 날 이야기, 그들이 키우던 개 토니 이야기 등을 해 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하다가 힘든 몸을 일으켜세워 그의 곁으로 가서 앉는 마조리. 그런데 그녀의 발걸음이 그의 발이 놓인 곳은 지나쳤는데도 둘은 부딪히거나 아파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 그가 진짜 인간이 아니라 홀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고인의 모습을 쏙 빼닮은 인공 지능 컴퓨터 프로그램.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워하는 고인의 모습을 닮게 프로그래밍한 인공 지능 홀로그램 '프라임(Prime)'에게 그 고인과 자신이 나누었던 이야기 또는 추억 등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이 인공 지능이 점점 더 실제 고인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말하도록 업데이트할 수 있다.

오늘 이 홀로그램 월터는, 평소 배고프지 않다며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마조리에게 땅콩버터를 한 입 먹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마조리의 딸 테스(Tess, 지나 데이비스 분)와 그녀의 남편 존(Jon, 팀 로빈스 분)은 이 '프라임'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다르다.

테스는 저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자기 아버지의 젊을 적 모습인 게 왠지 소름 끼친다 생각하고, 존은 어쨌거나 그 인공 지능 덕분에 장모님이 오늘은 뭐라도 드셨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마조리가 젊을 적 자신의 남편과 꼭 닮은 인공 지능과 대화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테스와 존은 어머니/장모님께 들은 실제 월터에 대한 이야기, 또는 어머니/장모님이 젊었을 시절 추억 이야기를 때때로 '월터 프라임'에게 입력시키는데...

 

'월터 프라임'(왼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조리(오른쪽)

 

마조리의 딸 테스

테스의 남편이자 마조리의 사위인 존

 

'월터 프라임'(오른쪽)에게 정보를 입력 중인 존(왼쪽)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던 조던 해리슨(Jordan Harrison)의 동명의 연극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마조리 역을 맡은 로이스 스미스는 이미 원작 연극에서 마조리 역을 두 번이나 연기했다.

우리가 사랑했지만 먼저 떠나 보내야 했던 고인의 외형을 꼭 닮았고 고인에 대한 추억까지 직접 업데이트시켜 실제 고인과 아주 비슷하게 말하게 만들 수 있는 인공 지능 '프라임'이 상용화되어 있는 근미래라는 설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아래 리뷰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아래 짤 이후부터 스크롤을 쭉 내려서 다시 잘생긴 존 햄 사진 이후에 나오는 마지막 문단만 읽으시라.

 

 

이 영화는 죽음과 기억(추억, memory)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조리는 나이 차이가 나서 자신보다 일찍 죽은 남편을 그리워했고, 그래서 '월터 프라임'과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마조리가 '월터 프라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지만(=정보를 입력해야 했지만), 테스와 존에게도 이야기를 들은 '월터 프라임'은 이제 간단히 그 이야기를 마조리에게 들려줄 수 있다.

마조리가 죽고 난 후, 마조리의 딸 테스는 어머니를 닮은 '마조리 프라임'을 만들어 그녀와 대화를 나누려 한다.

확실히 '마조리 프라임'은 진짜 마조리와 말투부터 다르다. 하지만 '자신(=마조리)'에 대해 알게 되면 더 마조리와 비슷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테스는 '마조리 프라임'을 통해 모녀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딸 레이나가 자기와 도무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자기와 어머니 사이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해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마조리 프라임'을 만든 건데, 테스는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제 홀로 남은 존은 테스가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테스 프라임'에게 어떻게 테스가 죽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국 그리움에 사무쳐 울음을 터뜨린다.

'테스 프라임'은 눈치 없게도 '괴롭겠지만, 당신이 허락한다면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라며 테스에 대해 더 이야기할 것을 종용한다. 결국 그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지만.

 

마조리, 테스, 존 모두 자신이 사랑한 사람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프라임'을 선택한다.

마조리는 '월터 프라임'에게 자신이 월터에게 청혼받았던 날의 이야기를 듣는다(이것 역시 마조리가 먼저 '월터 프라임'에게 이야기해 줬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다 듣고 나서는 "다음부터는 우리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My Best Friend's Wedding, 1997)>이 아니라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를 고전 영화 극장에서 보고 나온 후에 자기에게 청혼받았다고 해 줘"라고 말한다.

'월터 프라임'이 "이야기를 지어내라는 거야?" 하고 놀라지만 마조리는 그쪽이 훨씬 더 멋있지 않느냐고 한다.

이 '월터 프라임'은 영화 마지막에 '프라임'만이 모인 장소에서 바로 '카사블랑카' 버전으로 '마조리 프라임'(테스가 만들어 낸)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조리 프라임'은 그 이야기가 마치 진짜라는 듯, 자신이 진짜 마조리라는 듯 '월터 프라임'의 말에 감탄하고 동의한다.

'테스 프라임'도 자신이 들었던 개(마조리네 가족이 키웠던 새까만 털을 가진 개 '토니')에 대해 늘어놓는다. 자신이 그 개를 골랐다면서.

'월터 프라임'은 잠깐 생각하다가 아니라고, 유기견 보호소에서 그 개를 고른 건 데미안(테스가 어릴 적 자살한 오빠)이었다고, 마치 방금 기억난 듯 말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존이 술에 취했을 때 '월터 프라임'에게 해 준 이야기이다. 알고는 있되 테스에게 티내지는 말라면서 해 준 비밀 이야기.

'월터 프라임'이 가족 내에서는 금지되었던 거나 마찬가지인 데미안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두 '프라임'들은 "그래, 맞아. 나도 기억나."라며 '월터 프라임'의 이야기에 수긍한다.

그러면서 존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존을 찾는 듯한 '월터 프라임'의 아리송한 표정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랐으며 손녀에게 물을 받아 약을 먹는 늙은 존의 모습을 잠시 보여 주기는 한다).

 

'프라임'들은 혼자서 옛날 일을 추억할 수 없다. 왜냐하면 '프라임'의 외형이 아무리 그 고인을 닮았다한들 그 고인 본인이 아니니까.

추억이라는 것은 그 고인을 기억하는 다른 이들이 입력해 줘야만 '프라임'이 알 수 있는 것이다. 한번 정보가 입력되면, 영화 초반에 테스가 비유하는 것처럼 '프라임'은 그 추억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자신이 겪어 보지도 않은 그 일을 말이다.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일이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충격이 너무 커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억제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아니면 마조리처럼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뇌의 기능이 떨어져서 기억의 일부를 잃는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에게 "예전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잖아요." 하고 이야기해 주는 일은? 그것도 우스운 일일까?

그렇게 본다면 '프라임'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게 그렇게까지 우스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프라임'들을 통한 추억은 진짜 기억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완벽하게 객관적인' 진실이란 없다.

같은 일이라도 개인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각각 다르게 기억한다.

따라서 내가 어떤 '프라임'에게 내가 가진 추억을 주입하는 것은, '내 버전'의 해석만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인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프라임'들이 아무리 다정하게, 지치지 않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 주더라도, 그건 그저 공허한 소리, 녹음기를 플레이한 것에 불과하다.

다양한 관점이 없는, 단 한 가지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가 재생산되는 것일 뿐.

 

테스는 존에게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기억 이론'을 설명해 준다.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실제로 그 일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마지막으로 그 일을 기억했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윌리엄 제임스는 주장했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실제 또는 원본과는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마치 복사기로 복사한 문서를 다시 복사하고 또 복사해서 점점 원본보다 흐릿해지는 것처럼.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프라임'들에게 자기 추억을 이야기해 주고, 그 '프라임'들이 그 이야기를 똑같이 게워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내가 본 (정식 발매된) DVD에서는 '월터 프라임'에게 존이 존대말을 하는 것으로 번역돼 있었는데, 사실 이것도 아주 까다로운 문제이다.

존이 정말 '월터 프라임'을 자기 장인과 동일한 존재로 여기고 그에게 존대말을 할까?

기본적으로 모든 등장인물이 '프라임'을 'you'로 부르고 그 '프라임'의 바탕이 된 고인(예를 들어 테스가 만들어 낸 '마조리 프라임'이라면 테스는 이 '프라임'을 '마조리', 즉 엄마처럼 대한다)의 이름으로 호칭하게 되어 있다. 그게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인 듯하고, '마조리 프라임'은 이 원칙을 지켜 줘서 고맙다는 말도 한 번 한다.

그렇지만 그 '프라임'과 고인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며, 사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가깝지 않을까.

고인을 얼마나 닮았든 간에, 인공 지능 프로그램 따위가 실제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 위에서 이야기한 '추억'의 다양한 면모 때문에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을 달랠 수 있다면야...

이런 기술이 실제로 상용화되더라도 사회적인 문제로 발현할 것 같지는 않지만, 개인이 이런 '차이'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인간의 감정까지 비슷하게 흉내 내며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로봇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그녀(Her, 2013)>나 알렉스 가랜드(Alex Garland)의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4)>도 떠올랐다.

인간이 된다는 것,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진다는 것의 의미를 이 영화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혹시나 이 영화의 원작인 연극이 국내에서 공연된다면 꼭 한번 가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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