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로버트 치알디니, 노아 골드스타인, 스티브 마틴, <웃는 얼굴로 구워삶는 기술>
이야, 제목이 기가 막히다. 이런 제목의 책에 누가 관심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집필진도 빵빵하다. 로버트 치알디니는 설득의 교과서급인 <설득의 심리학>을 쓴 그 사람이다. 노아 골드스타인은 이 책의 확장판이라는 <설득의 심리학 2(Yes!)>를 썼으며, 스티브 마틴은 영국의 세계적 컨설팅 업체의 디렉터라고 한다.
음, 사실 나는 로버트 치알디니밖에 모르지만, 그래도 그 한 명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저자가 참여했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이 175쪽짜리 얇고 짧은 책은 꽤 유용하다. 책 뒷표지에는 '작지만 강력한 호구 해방의 심리학!'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사실 읽고 나면 그다지 '호구들'의 '방어' 위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설득 심리학이지.
어쨌거나 내가 특히 인상 깊었던 꼭지는 이거다. 마침 이제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나 새해처럼 주위에 선물을 할 일도 많을 테니 이게 딱 적절해 보인다. 꼭지 제목은 <기분 좋은 선물의 법칙>.
완벽한 선물을 고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선물을 받을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엥? 너무 쉬운 거 아니냐고? 게다가 선물은 상대가 뭘 좋아할지 생각하며 골라야 하는 게 원칙인데, 본인에게 물어보면 반칙 아니냐고?
선물에 대해 연구한 이들의 말에 따르면 그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 선물을 주는 사람은 받는 사람이 그 선물을 바랐는지 바라지 않았는지 여부가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과 고마움 정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은 자신이 받고 싶다고 말했던 선물을 받았을 때 훨씬 더 행복해하고 고마워한다.
그렇지만 상대가 '뭐야, 나를 위해 선물을 고르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냐고?
이런 염려는 필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원하는 선물을 밝히고 그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받았기 때문에 훨씬 더 고마워한다. 또한 내가 준 선물에 상대방이 얼마나 고마워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상대에게 미래 어느 시점에 그 선물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준다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선물이 상대를 기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고를 때는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확인해서,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기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받은 사람은 원하던 선물을 받아 고맙고 행복하고, 준 사람은 상대가 좋아하니 안심이 되고 행복한 그런 선물 말이다.
만약에 이렇게 해서 상대방이 원하는 선물을 주었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정성이 없다느니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느니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손절하시라. 기껏 원하는 선물을 줬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애초에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이건 물론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아니고 내 개인적 의견이다).
그렇다면 선물에 얼마만큼의 돈을 들여야 할까? 이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 소개된다.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었다. 하나는 코트 치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울 코트였고(약 8만 원) 또 다른 하나는 스카프 치고는 다소 비싼(약 6만 5,000원) 제품이었는데, 선물을 받은 참가자들은 돈으로만 따지자면 울 코트 쪽이 더 비쌌지만 스카프를 준 사람이 더 인심이 후하다고 평가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사려 깊고 배려 있는 선물을 주고 싶다면 (그러면서도 은밀히 돈도 아끼고 싶다면) 가격대가 낮은 제품군 중에서 고가의 선물(6만 5,000원짜리 스카프처럼)을 구매하는 것이 가격대가 높은 제품군에서 저렴한 제품을 사는 것보다 낫다. 이런 선물은 장점이 많다. 일단 선물을 받은 사람이 더 고마워한다. 상대는 나를 인심이 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저렴한' 선물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위험을 없앨 수 있다.
나도 이 점을 참고해야겠다. 정말 유용한 지식이지 않은가!
순서와 합격의 상관관계도 흥미로운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장 마지막에 면접을 본 후보자가 구직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불가피하게 이미 진행된 다른 것들의 맥락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와인 목록을 볼 때 한 잔에 5,000원짜리 와인부터 시작해 8,000원, 그리고 1만 3,000원짜리 와인이 기입되어 있는 메뉴와, 1만 3,000원짜리 와인부터 시작해 8,000원, 그리고 5,000원짜리 와인이 기입되어 있는 메뉴를 볼 때의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와인 가격에는 전혀 변화가 없고 목록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다.
구직 면접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심사관들은 첫 번째 후보자에게는 더 엄격한 경우가 많고(처음에 본 후보자에게 높은 점수를 보면 뒤에 볼 후보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줄 여지가 별로 남지 않으므로), 따라서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맨 마지막으로 면접을 보는 게 유리하다.
깨알 팁 1: 감정은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슬픔은 의사결정 능력을 크게 떨어뜨리니 슬픈 기분일 때는 큰 결정을 내리지 마시라.
깨알 팁 2: 자신의 지식과 전문성을 자기 입으로 광고하기보다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말에 권위를 더욱 실을 수 있다. 예컨대, 의사나 간호사라면 자신의 자격증을 진료실에 전시해 놓을 수 있다.
이 방법은 콘퍼런스나 세미나 등에서 전문가들의 권위를 세워주는 데에도 이용된다. "뫄뫄 분야에서 이름이 자자하신 모모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타인의 입을 빌려 자신을 소개해라.
짧은 책이나 많은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그러면 여러분이 책을 읽으실 필요가 없어지니까!) 타인을 설득하려고 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항에 이야기하는 문단은 한 군데 보여 드릴까 한다.
누군가의 부탁에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특정 지점에 초점을 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부탁을 하는 사람은 부탁받는 사람이 부탁을 '수락'했을 경우 들여야 할 시간 등의 경제적 비용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와 반대로 잠재적으로 부탁을 들어줄 이들은 부탁을 '거절'할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더욱 염두에 두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단순한 진실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예상보다 누군가의 부탁을 수락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탁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생기는 결과는? 사업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잠재 고객과는 계약을 맺지 못할 것이다. 인맥을 쌓을 기회도 사라질 것이다. (...)
그러므로 부탁을 제한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부탁은 편안하게 해야 한다. (...)
자, 그러니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부탁을 해 보도록 하자.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부탁을 받아 주는 거야 상대방 마음이지만, 어쨌든 나는 물어볼 수는 있는 것 아닌가.
상대방이 안 된다고 했을 때 쿨하게 받아들인다면야, 물어보는 것 자체는 민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여러분도 한번 도전해 보시라. 잃을 게 뭔가?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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