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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미즈시마 히로코, <내가 있을 곳이 없다고 느낄 때>

by Jaime Chung 2019.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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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미즈시마 히로코, <내가 있을 곳이 없다고 느낄 때>

 

 

책 겉표지에 "어느 곳에 있어도 편하지 않는 당신을 위한 공간 심리학"이라는 간단한 책 소개가 쓰여 있길래, '구석지고 조금은 어두운 곳이 마음을 진정시킨다' 따위의, 그런 류의 공간-건축학적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읽어 보니 방점은 '심리학'에 있었다.

마음이 편한 안식처를 찾는 방법에 관한 책인데, 일단 핵심부터 말하자면 '자기 수용'이 답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불편하면 이 세상 그 어디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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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밀턴(John Milton)은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이런 심리를 사탄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디로 피하든 그곳이 지옥이다! 나 자신이 지옥이다!
(Which way I fly is Hell; myself am Hell;)

 

일단 "진정한 의미에서 마음 편한 공간이 없는 불편함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라는 사실부터 인정하고 시작하자. 다른 사람이 나를 구해 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일단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쉬운 것 중 하나는, 충격을 받았을 때는 일단 그 충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아주 능력이 출중한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고 치자. 그러면 나도 모르게 '후배에게 밀리는 거 아니야?'라고 걱정을 하고 겁을 먹을 수 있다.

또한 질투를 느끼고, 그 충격이 심해지면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나 선택이 모두 잘못됐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은 결코 진실이 아닙니다. 그저 충격을 받아 감정이 불안정해진 것뿐이며 좋은 일만 가득한 인생은 어디에도 없지요. 그래도 내 나름대로 괜찮은 일상을 살아왔씁니다. 그 '좋지 않았던 일'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저 충격을 받았을 때의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충격을 받았다면 일단 지나가기를 기다립시다. 새끼발까락을 어딘가에 쿵 찧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요? 아픈 동안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시간이 아픔을 해결해 주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겨우 이까짓 거에 발이 아프다니' 하면서 더 세게 부딪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나는 충격을 받은 것뿐이야.'

이렇게 자각하고 아픔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면 평화로운 마음이 점점 돌아옵니다. (...)

또한 충격을 받았을 때는 가능한 한 자신의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된다.

 

그럼 앞에서 잠시 언급한 '자기 수용'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자기 수용은 안식처와 깊게 연관이 되어 있는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 편안한 곳이 없다고 느끼는 상황은 곧 자기 수용에 있어서라고 말할 수 있다.

(...) 자기 수용이 없다면 어디에 있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안식처가 없다는 문제로 쉽사리 연결됩니다.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저 사람이랑 비교하면 나는 부족해.'
'왜 나는 이 자리에 환영받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짓눌리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는 마음 편안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외모를 가꾸고 말투를 다듬고, 마치 편안한 것처럼 꾸밉니다. 그래도 내면 깊숙이에 숨겨 둔 공허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

한마디로 말해서 안식처가 없다는 인식은 자기 수용의 문제이고, 해결책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당장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자기 수용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참고로 자기 수용과 자아 찾기는 완전히 다르다.

"진짜 나를 만나고 싶다"느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고 싶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런 자아 찾기와 안식처가 없다는 문제는 깊은 관련이 있다.

자아 찾기는 자아도취라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자기 부정의 한 형태입니다.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딘가에 진짜 내 삶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물론 그 생각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진짜 자신의 삶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 연속성이 특징이지요. 지금 내 삶의 연장선 밖에 있는 진짜 자신의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안식처 만들기 1단계는 일단 삶의 방식을 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곤란할 때 감정에 휘둘려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마음의 메커니즘을 알기만 해도 충격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상사가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 놓고 나한테 책임을 뒤짚어씌우며 분통을 터뜨리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럴 때 '역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라고 침울해하거나 '자기가 잘못해 놓고 나한테 뭐래?'라며 반발심이 치솟는 것이 아마 흔한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난처한 상사가 나를 비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그 자리를 원만하게 지나갈 수도 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네 잘못이잖아'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하지만 저자는 이때의 '죄송합니다'는 사죄의 의미가 아니라 '위로'라고 말한다. 나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지만, 상대방이 난처한 상황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것이니, 참 안됐다는 의미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해 주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제일 놀라웠던 건, 저자가 "이 책의 대전제는 '인간은 본래 따뜻하다'라는 인식입니다."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화를 내는 사람은 난처해하는 사람'이라고 관점을 전환할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대체 우리는 어떤 경우에 행복을 느낄까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람들이 받아준다, 나를 신뢰한다, 슬플 때는 울어도 좋다고 다독여 준다, 나라는 개인의 존재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이럴 때 우리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따뜻한 느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따뜻함이야말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생의 보물입니다. 그리고 이 보물을 마주하면 우리의 본질이 따뜻하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또 이렇게 믿는 편히 확실히 '살아가기 쉽습니다.' 성선설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쪽이 편하고 유용하기 때문에 인간의 심성이 본래 따뜻하다고 믿고 살아갑시다. (...)

언뜻 보면 매우 부적절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라도, 어쩌면 그것이 그 사람 나름의 '최선'일 수도 있씁니다. 어렸을 때 학대당한 사람은 경계심을 가지고 최대한 상처받지 않으려 하고, '무섭다!'라는 감정이 자극받아 한순간에 공격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또한 최선의 행동입니다.

어떤 때라도 각자가 열심히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동안 불행한 일을 겪어서 이상한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그 누구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에는 별로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삶에서 '주는대로 받는다'는 원칙은 다들 인정할 것이다.

내가 마음을 곱게 써야 타인도 나에게 고운 마음으로 대해 주고, 내가 남에게 해코지를 하면 나도 그만큼 해를 입는다.

따라서 안식처를 원한다면 먼저 주자.

예를 들어,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가르쳐 줄래?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서 말이야."라고 부드럽게 부탁하는 것이다.

아니면 어떤 모임에서 외롭다는 느낌이 든다면, 홀로 있는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붙여 보는 것도 방법이다.

상대방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안전한 안식처를 제공할 때 우리도 그 평안함을 빨아들여 마음 편안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총 158쪽밖에 안 되는 책이라 이 정도만 소개했는데도 책의 한 40%는 벌써 언급한 것 같다. 이 이상은 직접 책으로 확인해 보시라.

나는 방금 한 번 읽었는데 '오... 좋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그런데 한 번은 더 읽어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 번쯤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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