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박진영, <나는 나를 돌봅니다>
책표지에 "십 대를 위한 자기 자비 연습"이라고 쓰여 있는데, 나는 이 책이 내가 좋아하는 박진영 님(<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이 쓴 책이라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십 대를 타깃으로 해서 그런지 예시도 십 대 친화적이고 무엇보다 아주 친절한 말투로 쓰여 있는데, 원래 저자분 말투가 이런 느낌이라 다른 (성인들 대상의 기존) 책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진 않는다.
나는 다시 십 대로 태어났다는 마음으로(응애!)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읽었다. 역시 좋더라.
내가 이 저자분의 첫 책(위에서 언급한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을 읽고 나서 '자기 자비'란 개념을 다룬 책들을 좀 더 접하고 싶어서 검색해 봤는데 아직 국내에서는 이 주제를 온전히 다루는 분은 이분뿐이신 것 같다(만약 다른 분들도 계시다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책이나 저자의 다른 책들을 아직 접해 보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자기 자비'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다.
저자가 첫 책부터 쭉 주장해 온 바는, '자존감'보다 '자기 자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인데,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자존감은 자기를 바라보는 감각이어서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지만, 그리고 자존감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다 행복한 것도 아니지만("나는 이 정도 되는 사람이니까 결과도 이만큼 나와야 해!"라는 생각으로 힘들 수 있다), 자기 자비는 그런 부작용이 없다.
내가 가끔 실수를 했어도 "아이궁,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고 나를 달래 주고 "괜찮아, 네가 노력했다는 거 알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나를 이해해 주는 태도, 즉 자기 자비를 실천하는 게 궁극적으로 정신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
이 책은 그런 자기 자비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는 알려 주는 책이라 읽는 동안 마음이 참 따뜻하고 포근해진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우리는 친구에게 단점과 장점에 점수를 매겨서 1등을 제일 많이 좋아하고 2등은 그다음으로 좋아하며 꼴등을 가장 싫어하는 식으로 대하지 않는다.
오늘 저 친구가 옷에 밥풀을 흘렸으니 친구 점수를 1점 감점해야겠다거나 어떤 친구가 체육 시간에 시합에서 졌으니 5점을 감점해야겠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잘했다거나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매번 점수를 매기는 걸까? 꼭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든가 세상에서 나를 제일 좋아할 것까지는 없지만, 이렇게 점수를 매기는 일은 오직 나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므로 그만두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읽고 있으면, 공감도 되면서 내가 나에게 가혹했구나 하고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제일 위로가 되고 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조금 옮겨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제일 마음에 드는 순서는 아니고, 그냥 책 내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옮겨 적은 것뿐이니 순서는 신경 쓰지 마시라).
그런데 자신감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나 같은 사람에게 좋은 일이 하나라도 생긴 것이 참 대단하지 않나요? 노력하면 다 잘될 거라는 말은 환상에 가깝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게 더 많은 세상에서 잘되는 일보다 잘 안 되는 일이 더 많은 게 당연하지 않나요? 잘되지 않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하나라도 잘되었다면 그게 참 멋진 일이라는 거죠.
또 불행은 자연재해처럼 나의 행동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이상한 양육자를 만났거나, 건강이 좋지 않다든지 집안 형편이 어렵다든지 등등 나를 굳이 '탓'할 이유가 있는 불행은 생각보다 많지 않잖아요. 이런 일들은 내 잘못이 아닌걸요.
좋은 일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나쁜 일은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마치 자연재해처럼,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거나 돌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일이라면 돌을 맞았을 때는 아파해도 떡을 받았을 땐 기뻐하며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부정적 정서를 늘리는 것도, 반대로 긍정적 정서를 줄이는 것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로 해요!
힘들 때 사람들에게 도움받고 위로와 응원을 받는 것을 '사회적 지지'라고 합니다. 이런 사회적 지지가 존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행복과 건강에서 큰 차이를 보여요. 그런데 이런 사회적 지지가 흥미로운 점은, 실제로 누가 옆에 딱 붙어서 도와주고 응원해 주지 않더라도 그냥 내가 '주위에는 나를 사랑해 주고 소중히 여겨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가 어느 정도 나타난다는 거예요.
반대로, 실제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도 '나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걸 거야.'라고 여기는 등 삐딱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도와준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행복해지는 등의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는 것의 효과는 주는 사람의 일방통행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 역시 이를 알아채고 고마워할 때 완성된다는 것이지요.
(...) 혹시 이런 이유로 좋은 친구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다고 해도 '아니. 싫어. 미안.' 정도인 거잖아요. 지구가 멸망하지도 않고 내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죠. 노벨상 수상자로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그 어떤 일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엄살쟁이들이니까요. 누군가 나를 거절한다고 해도 그냥 그 사람이 어떤 이유로 거절했고 미안해했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누군가의 거절이 꼭 내 잘못인 것은 아니니까 자책을 이유도 없답니다.
만약 이런 성격을 고치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며 자기 기준만 내세우는 편협한 사람인 것이니 가까이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잘못된 게 아닌데 고치라고 하는 건 이상하니까요. 긍정적인 사람들이 비행기를 만들 때 부정적인 사람들이 낙하산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해요. 모두가 들떠 있기보다 조금은 차분하고 진지한 사람들도 존재해야 세상이 잘 굴러가지 않겠어요?
또 자기 성격을 빨리 파악하고 잘 받아들여야 '나와 맞는 환경'이나 '나와 맞는 사람들'을 더 빨리 찾아 나설 수 있어요. 물고기로 태어났는데 육지에서 살아가라고 하면 살 수 없잖아요. 내가 물고기임을, 또 물고기인 것이 내 잘못도 아님을 깨닫고 빨리 강이나 호수나 바다를 찾아 나서는 게 현명하겠죠.
아미트 쿠마르라는 심리학자는 한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소중한 사람을 향해 감사의 편지를 쓰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편지를 받는 사람이 얼마나 놀라고 기뻐할지에 대해 물었어요. 이후 실제로 편지를 보냈고, 편지를 받은 사람에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쓴 사람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놀라고 기뻐하는 편이었어요. 어색하다든가 오글거린다는 반응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죠.
이번 장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분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 친구들이 자기를 조금만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실제로 그 사람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보다 더 많이 좋아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발견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걱정이 많은 내가 싫다는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해요. 다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나름의 부족함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제 친구들 중에도 겉으로는 항상 웃고 있지만 사실 걱정도 많고 속도 깊은 사람들이 있어요. 이처럼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 비밀과 고민을 가지고 있답니다. 나 역시 인간이니까 때로 고민하기도 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부족함이 많다는 건 곧 내가 제대로 된 인간이라는 뜻이니까요.
한편 지금 생각해 보면 과거에 완벽을 추구하던 저는 굉장히 오만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완벽해야 할 내가 완벽하지 못하다니! 내게도 단점이 존재하다니! 내가 평범한 인간이라니!' 하고 호들갑 떠는 것 같아서요. 다른 사람들이 때때로 실수하고 실패한다면, 같은 인간인 저도 당연히 얼마든지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이 뭘 좀 잘 못하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는지 모르겠어요. 마치 나는 인간이 아닌 우주인이나 사이보그쯤 되는 것처럼 착각했었나 봐요.
(...) 그 결과,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들의 경우 이미 여러 번 망한 추론 과제는 버리고 창의성 테스트에 도전해 보겠다고 한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여러 번 망한 과제에 계속 매달리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한 번만 실패한 경우에서는 반대의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추론을 한 번만 망한 조건에서는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들이 추론을 다시 한 번 해 보겠다고 재도전한 반면,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재도전하지 않겠다고 기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을 존중할 줄 알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한 번 해서 안 됐을 때 삼세판 정도는 해 보지만, 그래도 안 되면 재빨리 "그만!"을 외치고 잘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한 번 해서 안 되면 바로 그만두거나, 아니면 계속해도 안 되는 무엇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죠.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까요? 연구자들은 한 가지 원인으로 목표를 추구하는 이유가 다르다는 것을 꼽았습니다. 자아가 건강한 사람들은 잘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색하며 나아갑니다. 노래도 해 보고, 운동도 해 보고, 수학도 해 보고, 영어도 해 보는 등등 여러 가지를 시도하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걸 발견하는 게 목표인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엄격하고 스스로의 의사를 잘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목표 달성 자체보다 '실패하지 않는 것', 즉 못하는 것을 막는 데 더 많은 초점을 두는 편입니다. 잘하고 싶다기보다 '못하기 싫다'는 게 주된 마음가짐이라는 것입니다. 잘하는 걸 발견할 때의 기쁨보다 못하는 걸 막지 못했을 때의 괴로움이 더 큰 편이기도 합니다.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약점을 막는 것이 더 주된 목표가 된다는 것이죠.
이런 경우 계속 실패할수록 어떻게든 못하는 것을 '못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잘하지도 않는 애매한 것'으로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쓰게 됩니다. 그럴 시간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굴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그 결과, 못하는 건 많지 않지만 잘하는 것도 별로 없는 '뜨뜻미지근한' 상태가 되곤 합니다.
일에 열정을 가지면 좋을 것 같지만 지나친 열정은 해로울 수 있다는 발견이 있었어요. 학자들에 따르면 열정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조화로운 열정으로, 순수하게 즐거워서 어떤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을 말해요. 다른 하나는 강박정 열정인데요, 처음에는 즐거워서 시작했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잘해야만 한다거나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며 점점 열정에 '먹혀 버리는' 것입니다.
(...) 지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절대로 틀려서는 안 된다거나 모르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기보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매우 많으며 몰라도 괜찮다고, 하나하나 배워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는 거예요.
모든 걸 다 알려고 집착해야 똑똑한 사람이 될 것 같은데, 반대로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지적인 사람이 되는 이유는 뭘까요? 내가 무언가 모를 가능성을 고려하는 사람을 두고 '지적 겸손도'가 높다고 합니다. 반대로, 나는 틀려서는 안 되고, 틀릴 리도 없으며, 내가 항상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켜 지적 겸손도가 낮다고 하고요. (...)
아, 그리고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말들이 그냥 요즘 유행하는 'SNS용 예쁜 글'이 아니라 심리학적 실험과 연구를 통해 뒷받침되는 내용이라는 게 더더욱 마음에 든다. 이게 그냥 에세이와 심리학 서적의 차이지!
청소년뿐 아니라 마음이 여린 '어른이'들에게도 정말 좋은 책이다. 이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책.
이걸 읽어 보고 '자기 자비'라는 주제에 흥미가 생겼다면 저자의 다른 책들도 살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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