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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박재용, <과학이라는 헛소리 2>

by Jaime Chung 2019.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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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박재용, <과학이라는 헛소리 2>

 

 

내가 작년에 리뷰를 쓴 적 있는, 박재용의 <과학이라는 헛소리>의 후속작이 나왔다!

2018/09/03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박재용, <과학이라는 헛소리>

 

[책 감상/책 추천] 박재용, <과학이라는 헛소리>

[책 감상/책 추천] 박재용, <과학이라는 헛소리> 얼마 전, 우연히 다음 웹툰 <유사과학 탐구영역>(사실 이 제목조차 두 글자씩 띄어쓰기하고 싶어서 좀이 쑤시지만 원작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붙여 썼다)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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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신이 났던지. 바로 빌려서 집에 와 읽어 보았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전작 <과학이라는 헛소리>보다 조금 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주제를 다뤘다.

시작은 가볍게도 (전작에서 다룬 '유사 과학' 퇴출과 같은 맥락의) 다이어트 이야기지만, 그다음부터는 다소 진지해진다.

두 번째 장은 GMO와 환경, 세 번째, 네 번째 장은 정상과 비정상, 다섯 번째 장은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로서의 과학(예컨대 '우생학' 같은)이 주제다.

나는 특히, "자격을 잃은 과학자"라는 소제목이 붙은 마지막 여섯 번째 장이 제일 흥미로웠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전작보다 이 책(후속작)이 내 취향을 조금 비껴갔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나는 솔직히 환경 같은 주제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주제 자체는 흥미롭지만, 왼손잡이와 동성애 등에 대한 접근은 너무 흔한 것이어서 신선함이 없었다. 다섯 번째 장의 주제도 내겐 흥미의 범위가 아니었다.

물론, 인종(race)의 차이는 없고 오직 인류(human race)만 있다는 사실은 다시 봐도 참 놀랍고 감동적이긴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애초에 <과학이라는 헛소리>라는 책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유사 과학의 미몽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접했고, 이제 그 후속작이 나오면서 전작과 궤가 좀 달라졌음에 충분히 놀라고 아쉬워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떤 독자분들은 오히려 이런 변신을 더 반기고 좋아할 수도 있고 말이다. 이건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니 더 이상 가타부타하지 않겠다.

 

전작에서 저자는 "유사과학은 우리가 과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고의로 퍼트리는 것이다"라는 점을 밝혔다.

아무렴, (여섯 번째 장의 첫 번째 꼭지 제목처럼) "과학도 사람의 일인지라" 연구 결과를 조작하거나 도용하는 일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황우석 박사나 오보카타 하루코 이야기겠지만, 그보다는 좀 덜 알려져 있어도 경악스럽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야기를 한번 살펴보자.

'현대 로켓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르터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은 원래 독일의 나치 친위대 SS 출신의 전범이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에게 충격을 준 V2 로켓의 개발자인데, 1945년 독일이 패망하자 미국은 로켓 개발 책임자에 폰 브라운을 앉힌다.

패망 당시 독일의 로켓 기술이 적어도 25년은 앞서 있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전범을? 

결국 그는 로켓 개발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나치에 가입했고, 심지어 친위대에도 가입합니다. 이후 친위대 경력과 나치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 변명으로만 일관하고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로켓 연구를 평생 동안 실컷 했지만, 그 과정에서 로켓을 개발하다 죽은 포로와 죄수들, 그리고 V2 로켓에 사망한 영국의 민간인에게는 어떤한 사죄도 하지 않았지요.

정말 로켓 연구라는 자신의 목표와 과학의 발전이라는 사회적 목적이 있다면, 이러한 경우도 용인되어야 하는 걸까?

재능만 있으면, 그 사람의 인성이나 그 재능을 활용하는 대상은 아무래도 괜찮은 것인가?

그럴 리가 있냐ㅗ 다른 것도 아니고 나치 전범을 데려다가 저 하고 싶은 연구를 실컷 시키다니 산천초목이 웃을 일이다.

이런 놈들을 잡아다가 평생 괴롭게 자기 죗값을 치르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천추의 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은 이제 이런저런 심리학 서적에서도 잘못된 것으로 판명 났다고 땅땅 인증해 주니 여기에서는 길게 설명 안 하겠다. 다만 실험 설계가 중요한 이유를 잘 보여 주는 실험이라고만 해 두겠다.

왜냐하면 마시멜로 실험보다 더 충격적인 진실이 있어서 난 이걸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브라이언 완싱크(Brian Wansink)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으신지? 이런저런 실험으로 여러 군데에 논문이 인용되고 심리학 서적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인물인데, 난 심지어 EBS 영어 교재 지문에서도 이 사람 이름을 들어 본 기억이 난다.

이 사람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연구가 있다.

대략 '음식을 작은 그릇에 담으면 적게 먹고, 군것질거리를 꺼내기 어려운 곳에 두면 덜 먹는다'는 내용인데, 레스토랑에 가서 창가에 앉으면 샐러드를 주문할 확률이 80% 더 높아지고, 구석에 앉으면 디저트를 먹을 확률이 80% 더 높아진다 웅앵웅, 뭐 그런 거다.

그의 주장은 미국의 언론을 통해 퍼져나가고 대단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가 실험 결과에 대한 통계 분석과 결과 보고 과정에서 일종의 사기극을 벌였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접시 크기 연구는 미식축구 관람을 위한 파티에 참석한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큰 접시와 작은 접시를 무작위로 제공하고 담긴 간식의 무게를 측정했습니다. 완싱크의 이야기처럼 작은 접시를 받은 학생들이 간식을 적게 담았다고 데이터는 말합니다. 하지만 남학생에게는 이런 경향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즉 여학생의 경우에만 그러했던 것이죠. 그러나 완싱크는 논문에 이런 점을 쓰지 않았고,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실험 설계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파티 현장이다 보니 당연히 술이 함께였겠지요. 그러나 음주 유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습니다.

(...)

완싱크의 이런 문제가 드러난 것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학생들을 격려하면서 '데이터를 뒤지다 보면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다', '멋진 데이터는 멋진 결과를 수반하기 마련'이라는 글을 남겼지요. 과학적 연구 방법론을 잘 모르는 분들은 이 내용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통계 사냥' 혹은 'P값 사냥(P-Hacking)'이라고 불리는 행위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혹은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 듯 보이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데이터를 재분석하는 것으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금기시되는 행위입니다.

이런 자의 논문을 인용해 실었을 다른 논문이나 책의 저자들은(이 책에서는 "그의 논문 결과들이 무려 3,700번이나 인용되었다"고 썼다) 정말 갑자기 날벼락 맞은 거나 다름 없는 기분일 텐데, 그렇다고 그때까지 출판된 모든 자신의 저작을 다 회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그냥 그걸 놔두자니 조금 잘 아는 독자라면 "이게 사기로 판명 난 게 언젠데 이걸 논문/책에 실어?" 하며 오히려 그 (완싱크를 인용한) 저자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는 일이 생길 게 아닌가

정말 사기꾼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피해를 봐야 하나 싶다. 이런 과학계 사기꾼들은 어떻게 사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을까?

 

이 외에도 남의 논문을 자기가 쓴 것처럼 행세하는 '논문 도둑질'이나, 논문의 저자가 자신과 가깝거나 신세를 진 다른 사람의 이름을 공저자로 올려 주는 '논문 품앗이'의 관행도 과학계의 비리이다. 

논문 실적을 쌓기 위한 '허접한 논문'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논문을 다른 곳에 또 게재하는 '중복 게재'와 한 가지 연구 과정을 이 논문, 저 논문에 나눠서 쓰는 '논문 쪼개기(salami slicing)'도 문제다.

저자는 이것들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윤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유사 과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과학자는 자신의 논문에 대해 '과학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기존 논문을 표절하고, 데이터를 훔치고, 조작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이 직접 만든 데이터에 대한 엄밀한 고민 없이 대충 여러 편의 논문으로 쪼개 출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모든 행위는 질의 높낮이를 떠나 단편적인 결론만을 제기하는, 즉 유사 과학을 양산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따라서 과학계의 윤리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과학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과학계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따지는 것이 오히려 문제 해결의 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물론 연구 윤리를 위반한 연구자에 대한 엄격한 제재가 필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요.

 

전반적으로 이 책을 요약하자면, 과학의 사회적인 함의를 찾아보려는 저자의 노력이 두드러진다.

개개의 '유사 과학'과 그것이 왜 사실이 아닌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전작 <과학이라는 헛소리>를, 그보다는 좀 더 넓고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의 '유사 과학'을 접하고 싶다면 이번 후속작 <과학이라는 헛소리 2>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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