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트룹 제로(Troop Zero, 2019) - <미스 리틀 선샤인>을 떠올리게 하는, 괴짜들의 스카우트 도전기
감독: 버트 앤 버티(Bert & Bertie)
1977년, 미국 조지아 주. 크리스마스 플린트(Christmas Flint, 맥케나 그레이스 분)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야기해 준,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우주까지 전달된다'는 말을 굳게 믿고 매일 밤 하늘을 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소녀다.
친구라고는, 어린 나이에도 게이의 싹이 보여 '계집애 같다'고 놀림받는 소년 조셉(Joseph, 찰리 샷웰 분)뿐이다.
크리스마스의 아버지 램지 플린트(Ramsey Flint, 짐 개피건 분)는 변호사인데, 소득이 없어서 비서인 미스 레일린(Miss Rayleen, 비올라 데이비스 분)에게도 월급을 못 주고 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네 가족(이래 봤자 단 둘이지만)은 화목하고 서로 사랑한다.
어느 날, 크리스마스와 조셉은 동네 아이들의 삥을 뜯고 다니는 헬-노 프라이스(Hell-No Price, 밀란 레이 분)를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스카우트 담당인 미스 매시(Miss Massey, 앨리슨 제니 분)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카우트 잼버리(Jamboree)에서 우승하게 되면 우승한 스카우트들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우주에 쏘아올릴 무인 탐사선 보이저(Voyager) 호의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에 실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 세계 아이들의 대표로!
우주에는 돌아가신 엄마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우주에 자신의 목소리를 쏘아올릴 수 있다면 엄마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크리스마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나무에서 내려와 스카우트에 들어가려고 매시 선생님의 스카우트 멤버들에게 자기도 끼워 달라고 하지만, 이미 '오줌싸개'라고 놀림받는 괴짜 크리스마스를 끼워 줄 리가 없다.
오히려 크리스마스의 양 갈래 머리 중 한 쪽을 자르고, 크리스마스를 라커에 가둬 둔 채 자기네들끼리 떠나 버린다.
매시 선생님이 크리스마스를 발견해 라커에서 꺼내 주긴 하지만, 선생님도 크리스마스 같은 괴짜가 스카우트에 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크리스마스는 생각한다. 스카우트에 낄 수 없다면, 자신이 새로운 스카우트를 만들어서 잼버리에 참여하겠다고, 그리고 잼버리에서 우승해서 자신의 목소리가 우주에 울려 퍼질 수 있게 하겠다고!
영화 리뷰 부제에도 썼지만, 이 영화를 보고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 2006)>을 떠올렸다.
전반적으로 어린 여자아이가 주인공이고(<미스 리틀 선샤인>에는 어른들도 많이 나오지만, 어쨌든), 그 아이가 일종의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혹시 거기에서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와중에 어른에게 위안을 받는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두 작품이 완전히 똑같다거나 뭐가 뭐의 표절이라는 건 절대 아니고, 그냥 그 따뜻한 느낌이 비슷해서 좋다는 거다.
이 영화의 주축이 되는 다섯 어린아이는(여자애 넷, 남자애 하나)은 모두 이상한 애들이다.
크리스마스는 '오줌싸개'라는 놀림을 받고, 조셉은 누가 봐도 게이이며, 헬노 프라이스는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동네 아이들 삥을 뜯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야생에서 자란 것 같은 아이이다.
헬노 프라이스를 따라다니는 스매시(Smash, 조한나 콜론 분)는 하는 행동이 딱 헐크다. 말도 안 한다.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앤-클레어(Anne-Claire, 벨라 히긴보섬 분)는 열렬한 기독교 신자에다가, 한쪽 눈이 안 보여 안경 한 쪽을 색지로 가리고 다닌다.
어떻게 이런 애들이 잼버리에 참여하겠다는 건지, 참 '노답'이지만 미스 레일린의 도움과 아이들 본인의 노력으로 어찌어찌 해 내는 모습이 참 흐뭇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미스 레일린도 처음엔 아이들에게 희망이 없었다.
애초에 크리스마스가 미스 레일린에게 '트룹 마마(Troop Mama, 스카우트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했을 때, 자기는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딱 잘라 거절했고, 어쩌다가 애들을 맡게 됐어도 담배를 뻑뻑 피우며 아이들의 실패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겨우겨우 배지 하나씩(잼버리에 참여하려면 스카우트의 모든 멤버들이 최소 1개 이상의 배지를 따야 한다)을 쟁취하는 걸 보고 아이들에게 믿음이 생긴다.
아, 미스 매시 선생님과 미스 레일린은 서로의 옆집에서 컸는데, 둘이 벌이는 묘한 신경전도 영화에 웃음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미스 매시 역을 맡은 앨리슨 제니(Allison Janney) 배우를 참 좋아해서 그녀의 연기 범위에도 감탄하며 봤다. 아주 재수 없고 약간 위선적인 선생님 역할을 아주 잘해냈다.
미스 레일린 역의 비올라 데이비스도 마찬가지로 연기가 좋았고(오스카 수상자니 말해 뭐해!).
괴짜들이 만들어 내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화였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고 허구다.
루시 앨리바(Lucy Alibar)라는 미국 각본가/극작가가 2010년에 <크리스마스와 주빌리가 유성우를 보다(Christmas and Jubilee Behold The Meteor Shower)>라는 연극을 발표했는데, 이 영화는 이것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다.
뭐, 어차피 실화냐 허구냐가 이 영화의 감동과 재미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왠지 '괴짜들의 이야기라면 지어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이게 실화이기를 바랐다(조금 더 설명하자면, 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면 멋지고 아름답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어내지, 약자들, 실패자들의 이야기를 지어낼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가족 전체가 볼 수 있으면서 유쾌하고 감동적인 '애들(=아이들이 주연인)' 영화를 찾는다면, 이 영화를 한번 찾아보시는 건 어떨지.
아마존 오리지널이라 아마존 프라임에서만 볼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아마존 사용하시는 분들은 고려해 보시라.
참고로 IMDB에는 감독 이름이 '버트 앤 버티'라고 나와 있는데, 네이버 영화 정보에는 '케이티 엘우드, 엠버 템플모어-핀레이슨'이라고 나와 있다.
아마 이 감독들의 본명인 거 같은데,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오는 이 본명을 어떻게 찾았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래도 감독들이 예명을 쓴 데는 이유가 있겠지 싶어 나는 IMDB에 나온대로 감독명을 '버트 앤 버티'로 기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