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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차밍 스쿨 & 볼룸 댄스 (Marilyn Hotchkiss' Ballroom Dancing & Charm School, 2005) - 과거와 현재의 사랑이 추는 춤

by Jaime Chung 2020.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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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차밍 스쿨 & 볼룸 댄스 (Marilyn Hotchkiss' Ballroom Dancing & Charm School, 2005) - 과거와 현재의 사랑이 추는 춤

 

 

감독: 랜덜 밀러(Randall Miller)

 

빵을 배달하러 가던 제빵사 프랭크 킨(Frank Keane, 로버트 칼라일 분). 그는 아내가 죽은 후 그저 삶에 별다른 재미도 못 느끼고 그저 일만 하며 살아가는 남자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그는 한 차가 자신의 트럭 옆을 지나가는 광경을 흘끗 보게 된다. 그 차를 모는 남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신이 나고 행복한 듯 씨익 웃고 있었다.

프랭크의 트럭을 앞질러 간 그 차는 곧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랭크는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어쩐 일인지 도로 한복판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그는 트럭에서 내려 아까 자신을 지나쳤던 그 남자가 의식이 있음을 확인한 뒤, 911에 신고한다.

911 측은 곧 구급차를 보낼 테니 그동안 부상자에게 계속 말을 걸어서 의식을 잃지 않게 하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다가가는 프랭크. 피를 흘리고 있는 부상자는 자신을 스티브 밀스(Steve Mills, 존 굿맨 분)라고 소개한다.

그는 40년 전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는 길을 가는 중이었는데 사고가 났다며,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 장소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911 교환원의 당부도 지킬 겸, 프랭크는 스티브에게 계속 말을 건다. 어떤 약속이고, 누구와 한 약속이냐고.

스티브가 설명하길, 약 40년 전, 1962년 자신이 12살이던 시절에 리사 고바(Lisa Gobar, 켈리 파커 분(아역) / 캠린 맨하임 분(성인))라는 소녀와 새 천년(=2000년)의 다섯 번째 해, 다섯 번째 달, 다섯 번째 날(=2005년 5월 5일)에 '마릴린 호치키스의 볼룸 댄싱 & 참 스쿨'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스티브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며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프랭크에게 계속 자신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데...

 

영화 초반, 고속도로 사고 현장
사랑스러운 마리사 토메이 스틸 한 컷.
영화가 너무 오래되서 공식 포스터 사진도 큰 게 없길래 이거로라도 대체하려고 조금 큰 사진을 구해 왔다.

 

세상에, 얼마나 오래되고 마이너한 영화인지 네이버 영화에는 정보도 없고 다음 영화에 가야만 있다. 다행히 옛날 씨네21 리뷰는 웹상에 아직 존재한다.

왜 국내 제목은 원제와 달리 '차밍 스쿨'과 '볼룸 댄스'의 순서가 뒤바뀐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왓챠' 앱을 보면 이 영화를 봤다고 기록한 이들이 무려 565명(내가 처음 확인했을 때 기준)이나 된다.

이런 영화를 어떻게 약 560명이나 봤지...? 최근 영화도 국내에 안 들어오면 해외에서만 알음알음 봐서 이것보다 왓챠 관객 수가 적은 경우도 많은데. 참 신기하다.

내 생각엔, 첫째, 씨네21의 리뷰도 이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됐을 것 같고, 또한 둘째,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리사 토메이도 국내 이 영화의 인지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왓챠에 마리사 토메이를 보고 싶어서 이 영화를 봤다는 리뷰가 간간히 있다).

마리사 토메이가 연기 잘하고 매력 있는 건 많은 영화 팬들이 알았지만, 아마 새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메이 숙모'로 낙점된 후에 그걸 보고 새로운 팬들이 유입된 듯하다.

 

어쨌거나,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이 영화는 나도 정말 큰 기대 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다.

아마존 프라임을 둘러보다가 제목이 흥미로워서 IMDB에서 이 영화를 검색해 봤고, 시놉시스를 간단히 읽고 별점을 보니 괜찮을 것 같아 틀었다.

처음엔 집에 우환이 있는 듯 시종일관 우울한 얼굴을 하고 말도 많지 않은 남자 주인공을 보고 '저 아저씨는 왜 저럴까?' 싶었지만, 조금 더 영화가 진행이 되니 그 점은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솔직히 이 영화가 감정선을 아주 공감이 되게 잘 그려냈다고 평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야기가 참 흥미로워서 이야기의 힘만으로도 영화를 계속 보게 된다.

 

과거 스티브의 첫사랑 회상과 현재 프랭크의 새 사랑 이야기가 조금씩 번갈아가며 영화가 진행된다.

또한 둘은 마치 평행선상에 놓인 듯한데, 스티브가 처음으로 마릴린 호치키스의 볼룸 댄싱 & 참 스쿨에 간 기억을 프랭크에게 들려주고 나면, 프랭크가 스티브의 소원(나 대신 리사를 꼭 만나서 내가 이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음을 전해 달라)을 들어주러 같은 수업을 받으러 가는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다.

다만 이미 그 참 스쿨을 운영했던 마릴린 호치키스 여사는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오래라 없고, 그녀의 딸인 마리엔 호치키스(Marienne Hotchkiss, 메리 스틴버겐 분)가 수업을 대신 진행하고 있었다.

마리엔은 어머니 마릴린 여사와 똑같이 우아하고 고상한 말투로 말하고, 어머니와 똑같은 방식으로 춤과 예의범절을 가르친다.

본격적으로 짝을 지어 춤을 연습하라는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 남자들은 파란색 선, 여자들은 분홍색 선에 서 있어야 한다든지, 폭력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용납되지 않는다든지.

아, 마리엔도 마릴린 여사처럼 캐스터네츠를 이용해 박자를 맞추거나 학생들의 주의를 끈다.

그리고 과거에 마릴린 여사의 학생들이 ― 스티브와 리사가 풋풋한 첫사랑에 빠졌던 것처럼, 마리엔이 수업에서도 학생들이 ― 프랭크와 메레디스(Meredith Morrison, 마리사 토메이 분)가 ―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과거와 현재가 비슷하게, 그러면서도 다르게 이어지는 게 재미있고 흥미롭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전적으로 이야기의 힘으로 영화를 끌고 나가기 때문에 이야기만 따라가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춤을 좋아하시는 분, 또는 춤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춤을 추는 장면도 자주 등장하니 그걸 보는 맛도 즐기실 수 있을 듯.

프랭크는 연애하기 바빠서 잠시 자신의 본분(리사를 찾아 스티브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는 것)을 잊은 듯하나, 영화 마지막에 다시 기억하니까 걱정 마시라. 그리고 영화 맨 마지막에 진짜 반전이 있다. 꼭 끝까지 보시라!

과거의 현재의 사랑 이야기가 교차하는 형식도 좋고, 볼룸 댄스와 참 스쿨이라는 소재도 과거와 현재가 얼마나 다른지(요즘은 예의범절을 따로 가르치는 교실도 별로 없고 아이들을 그런 데에 보내야 한다는 인식도 대중적이지 않으니까) 보여 주기에 무척 적절해서 인상 깊었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으니 이 영화를 요즘 리메이크해도 좋을 것 같은데, 누가 시도 안 해 주려나?

어쨌거나, 이 영화를 구해 볼 수만 있으시다면 한 번 보시는 걸 추천한다!!

 

+이건 사족인데, 영어를 조금 하시는 분이라면 1960년대 2020년 지금 영어의 큰 간극을 느끼실 수도 있겠다.

스티브의 회상 중에 스티브와 스티브의 친구가 학교의 (남자) 선생님을 보고 "What a boner."라고 속삭이는 장면이 있는데, 당황하지 마시라.

1980년대까지만 해도 'boner'는 청소년기나 그보다 어린 소년들 사이에서 '바보(idiot)', '얼간이(jerk)'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출처: https://english.stackexchange.com/questions/8014/origin-of-the-word-boner)

그러니 스티브와 친구는 선생님을 '바보'라고 놀린 것이지, 절대로 섹드립을 한 게 아니다!!

요즘은 'boner'라고 하면 '발기한 음경'이라는 뜻으로 쓰이니 만에 하나 이 영화로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분은 없기를 바란다. 

이런 웃지 못할 간극은 둘째치고서라도, 마릴린 여사나 마리엔의 말투가 너무 고상한 나머지 문어체처럼 들려서, 이들이 하는 영어를 배워서 따라 했다간 다소 재수 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 마릴린 여사 또는 마리엔의 성인 '호치키스'를 보고 우리가 흔히 쓰는 '스테이플러'를 연상한 분이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스테이플러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 조지 호치키스와 그 아들인 일라이 허벨 호치키스가 'E.H.Hotchkis'라는 회사를 세우고 스테이플러를 만들어 팔았는데, 이것의 일본식 표기가 '홋치키스'였다.

일본인들은 '홋치키스' 회사에서 만든 스테이플러를 '호치키스'라고 불렀고, 일제의 잔재로 우리도 아직까지 종종 호치키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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