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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나탈리 크납,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by Jaime Chung 2020.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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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나탈리 크납,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책 표지에 쓰여 있는, '과도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아름다운 지적 여정'이라는 책 설명이 이 책을 잘 요약해 준다.

무언가의 번데기 같은 과도기,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그 불안한 시기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그 시기를 견디게 해 주는 사유가 담겼다.

 

되돌아보니 나는 정말 힘이 드는 시절에 철학 도서를 읽으며 견딜 수 있었다.

첫 직장을 다닐 때 정말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는 소로우(Thoreau)의 <월든(Walden)>을 읽으며 힘을 냈고, 그다음 직장에서 혹사당할 때는 니체(Nietzsche)의 철학을 설명한 입문서를 읽고 멘탈을 보듬었다.

그리고 지금, 도대체 내가 여기에서 잘하고 있긴 한 건지, 돌아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

 

저자인 나탈리 크납은 독일의 저명한 임상 철학자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이 책으로 처음 이름을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게 뭐가 중요하랴. 중요한 건 책 내용이지. 내가 이러쿵저러쿵 떠드느니 그냥 내게 힘이 되었던 구절을 몇 부분 발췌해서 보여 드리는 걸로 리뷰를 대신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 해의 첫 과도기인 새봄은 우리에게 또 다른 것을 알려 준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유용썽과는 별개로 우리를 감동시킨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벚꽃 봉오리는 앞으로의 운명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매력을 발산한다. 버찌가 열릴지 열리지 않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벚꽃은 버찌로 변신한 다음에야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수정되기 전 밤 써리를 맞아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여도, 벚꽃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며, 그의 일을 다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인생의 과도기를 보낼 때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럴 때 우리는 이런 벚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며, 훗날 우리가 스스로 또는 주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수확물을 낼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연약하기 짝이 없다. 첫아이를 낳은 뒤 부모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견뎌낼 수 있을까? 중병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실질한 뒤 새로운 직업을 구할 수 있을까? 은퇴한 뒤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불확실한 상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우리는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고, 잘못된 결정을 할까 봐 두려워한다. 너무 무리수를 두는 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 소극적으로 임하는 건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두려움은 우리의 주의력이 고양되었다는 표지다. 유명한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도 두려움은 살아남는 데 아주 중요한 감정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문제는 두려움이 아니다. 교육학자 라인하르트 카를의 말처럼 문제는 우리가 두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다 보니 두려움이 우리를 마비시킨다는 사실이다. (...)

 

우리 역시 적절한 도움이 있었더라면 두려움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랬더라면 두려움이 우리를 깨어 있게 하며 예리한 감각을 지니게 하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가 지금 잘못을 저지르고 있거나 잘못을 저지르기 직전임을 보여 주는 표지가 아니라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사람은 과도기에는 결코 잘못을 저지를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종종 반복되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수학 문제에서는 정답과 오답을 가릴 수 있다. 그러나 유일무이한 인간의 유일무이한 상황과 관련해서는 결코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과 다르게 살았더라면 더 나았을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른 선택으로 말미암아 지금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빚어졌을지도 모른다. 삶에는 늘 우연과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돌발 사건도 없고 일이 복잡하게 얽히지도 않는 단순하고 이상적인 상태를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다른 치료를 택했더라면 더 건강해졌을 거라고 누가 그러던가? 다른 배우자를 만났더라면, 다른 직업을 구했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더 행복해졌을 거라고 누가 그러던가?

 

(...) 그로부터 2500년 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든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새로운 존재라면서, 우리와 같은 삶의 상황에 놓인 사람은 오직 우리밖에 없으며, 인생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만난다 해도 그것이 꼭 우리의 잘못 때문에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런 결과들은 그 자체로 지금 주어진 삶과 새롭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오히려 스스로 계산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어우러짐으로써 매 순간 우리에게 행동의 여지를 마련해 준다고 했다. "인간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그가 모든 계산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연성이 없어 보였던 일이 어느 정도 개연성을 띠게 된다는 뜻이며, '이성적으로는', 즉 계산 가능하다는 의미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을 희망해도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주어진 수단으로 진정 노력하고 있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늘 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의 현재 상황과 화해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 불가피한 것을 받아들일 때만이 우리는 열린 사람이 되며, 아직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서도 손을 내밀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 불행으로 여겨지는 것이 며칠 뒤 또는 몇 년 뒤에는 행복한 섭리로,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짠, 놀랍게도 이 인용문들이 모두 1부, '1 봄의 메시지 - 희망은 어떻게 다시 오는가'에서만 뽑은 것들이다. 

그 말인즉, 이것 말고도 불확실한 날들에 희망을 주는 철학이 많다는 것이다. 2부는 '시련-인생의 과도기'인데 삶의 시기(청년기, 노년기 같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3부는 개인적인 관점뿐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인 관점도 살펴본다.

불안할 때는 시야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시야를 시도해 보는 것도 불안한 마음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원래 나는 리디셀렉트를 써서 굳이 가욋돈을 들여 책을 사는 사람이 아닌데, 이 책은 대여가 아니라 아예 구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정말 내용이 풍부하고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됐다. 

빌려 읽어도 좋고 사서 읽어도 좋은 책이라 하겠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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