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감상/책 추천]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 먹고, 자고, 읽고 [책 감상/책 추천]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 먹고, 자고, 읽고

[책 감상/책 추천]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혁명적으로 놀라운 책이다. 책 띠지에서 광고하듯 저자인 토드 로즈는 ADHD 장애를 가진 자퇴생에서 하버드대 교수로 탈바꿈한 인물이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 답은 '개개인성'에 있다.

 

개개인성이란 간단히 말해 타인과 다른 개인의 특성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에이, 그게 뭐야. 너무 당연하잖아. 당연히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르지."라고 대꾸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개개인성'을 믿는가? 대체적으로 우리는 개인을 평가할 때 평균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나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가.

예컨대 자신의 아이가 또래 평균과 비교해 얼마나 성장이 느린지를 걱정하고, 우리도 동년배들이 흔히 따르는 코스(대학 졸업-취업-결혼-출산 등) 또는 동년배들 평균(적인 스펙 또는 연봉)을 따라가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이 '평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최고점과 최저점을 포함해 머릿수대로 나눈, 우리의 개념속에서만 존재하는 한 점일 뿐이지 실존하는 무엇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평균'에 맞는 사람이라는 건 없으니까.

조종석 설계를 위해 조종사들 신체 사이즈의 '평균치'를 구했으나 실제로 그 평균치에 들어가는 조종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을 깨달은 미국 공군의 사례가 그를 잘 보여 준다. 아래 인용문을 보시라.

대니얼스가 결과값을 산출해내기 전에 공군 내 동료 연구가들 사이에는 조종사들 대다수가 대부분의 치수에서 평균치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하긴 측정 대상으로 선발된 조종사들은 이미 외관상 평균 체격에 해당하는 이들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이를테면 키가 6피트 7인치(약 2미터)인 사람은 애초에 대상으로 뽑히지도 못했다는 얘기다]. 공군 내 연구가들은 상당수 조종사들이 10개 항목 전체에서 평균 범위에 들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값을 일람표로 작성해 보니 대니얼스조차도 깜짝 놀랄 만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0명이었던 것이다.

조종사 4,063명 가운데 10개 전 항목에서 평균치에 해당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떤 조종사는 팔 길이가 평균치보다 길지만 다리 길이는 평균치보다 짧은가 하면 또 어떤 조종사는 가슴둘레가 평균치보다 넓은 편이지만 엉덩이 둘레는 좁은 편으로 나타나는 식이었다. 대니얼스가 더 놀라워했던 의외의 결과는 따로 있었다. 10개 항목 가운데 임의로 3개 항목만을 골라서

심지어 이렇게 치수화하기 쉽고 평균을 내기 쉬운 신체, 즉 물리적인 면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진대, 두뇌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다른 모든 활동은 어떻겠는가?

어떤 이는 성적이라는 확실한 지표가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성적이라는 게 개인의 교육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가? 글쎄.

 

꼭 교사가 아니더라도, 학교를 다닌 경험을 통해 세상에는 다양한 공부 스타일이 있다는 걸 안다.

어떤 사람은 암기에 능하고, 어떤 사람은 토론형 수업을 선호한다. 어떤 사람은 깜지(=빽빽이)를 쓰고, 어떤 사람은 소리 내어 말해 보면서 어떤 개념을 이해하고 외운다.

그런데 현재 많은 국가의 교과 과정은 그런 다양성을 포용하기가 어렵다. 일정한 분량을 정해진 시간 내에 가르쳐야 하다 보니 몇몇 학생들이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더라도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거나 하는 식으로 맞추어 주기가 힘들다는 거다.

이건 애초에 교육의 목표가 '평범하고, 경제 활동(즉 노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보통 인간'을 길러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왜? 윗사람들 보기에 어차피 교수든 과학자든 예술가든, 어떤 방향으로든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는 소수이고 절대 다수는 그냥 그렇고 그런, 평범한 '직장인', '노동자'가 될 운명이니까.

이들 교육적 테일러주의자들이 내세운 교육의 새로운 임무는 많은 학생들이 테일러화된 새로운 경제에 나가 활동할 만한 적성을 갖춰 주는 일이었다 이들은 평균적 근로자들로 이뤄진 시스템이 천재들로 이뤄진 시스템보다 효율적이라는 테일러식 원칙에 따르면서, 학교는 특출한 재능을 길러 주려 애쓸 것이 아니라 평균적 학생을 위한 표준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한 예가 존. D. 록펠러가 기금을 대주어 설립된 이른바 일반 교육 위원회(General Education Board)로서 다음은 이 위원회가 1912년에 테일러주의식의 자체적 학교 비전을 담아 발표한 논평의 일부 내용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나 이들의 자녀들은 학자와 과학자로 만들 생각이 없다. 우리는 작가, 연설자, 시인, 문인을 키우려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예술가, 화가, 음악가가 될 만한 인재를 발굴하려는 것도 아니다. (중략) 이미 차고도 넘치는 변호사, 의사, 목사, 정치인을 키우려는 것도 아니다. (중략) 우리가 내세우는 과업은 아주 단순 명료할 뿐 아니라 아주 훌륭하기도 하다. (중략)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모아 작은 공동체를 꾸려서 그 아이들에게 부모 세대가 불완전하게 수행 중인 일들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도록 가르치려 한다."

미국에만 해당하는 내용으로 보이는가? 한국 공교육을 12년 이상 받으신 분이라면 우리나라 교육 제도가 개인의 특성을 찾고 이를 북돋워 주자는 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이미 느끼셨을 터다.

1920년에 이르렀을 무렵 미국의 대다수 학교들은 테일러주의의 교육 비전에 따라 조직돼 있었다. 각각의 학생을 평균적 학생으로 다루며 학생들 저마다의 배경, 자질, 관심사는 무시한 채로 모든 학생들에게 표준화된 동일 교육을 시킨다는 방향으로 목표를 잡았다. 1924년에 미국의 언론인 헨리 루이스 멩켄은 당시의 교육 시스템을 이렇게 요약했다. "공교육의 목표는 계몽화가 아니다. 현재의 공교육은 가능한 한 많은 개개인들을 똑같은 안전 수준으로 강등시키고 표준화된 시민을 길러내고 훈련시키면서 반대 의견과 독창성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중략) 세계 전역에서의 공교육이 내세우고 있는 목표다."

 

즉, 이 책 내용을 다시 한 문단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가 평균이라는 이런 측정 방식이 거의 언제나 틀리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개개인을 이해하는 문제에 관한 한 평균은 결과적으로 부정확하고 현혹적일 가능성이 높다면? 조종석 설계와 '노르마' 조각상처럼 이런 평균의 이상이 잘못된 허상일 뿐이라면?

이 책의 주요 전제는 언뜻 보기엔 단순하다. 즉, 평균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ㅅ다는 것이다. 당신은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아이도, 동료도, 학생도, 배우자도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은 기분을 띄워 주려고 꺼낸 빈말도 아니요, 겉멋만 부린 빈 구호도 아니다.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실질적 귀결들이 뒷받침하고 있는 그런 과학적 사실이다. 혹시 몰라 밝혀 두자면, 이 책에는 개리슨 케일러(Garrison Keilor) 진행의 <프레리 홈 컴패니언(Prairie Home Companion, '워비곤 호수'라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이 말의 소식을 전하는 식으로 진행된 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 이 마을은 '여자들은 모두 강인하고,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으며, 아이들은 모두 평균 이상인' 허구의 세계다 - 옮긴이)처럼 '모든 아이들이 평균 이상'인 워비곤 호수 같은 의심쩍은 이야기로 세상 사람들을 홀리려는 의도는 없다. 단순한 통계학적 이치를 내세워 평균적인 사람들도 일부 있지 않겠느냐고 주장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자명해 보이는 가정마저도 필히 폐기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결함이 있는 이유를 납득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자, 이제 그러면 어떡할 것인가? 책의 중반 이후부터는 그렇다면 각 개인의 특성(저자는 '들쭉날쭉성'이라고 부른다)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글 앞머리에서 언급했듯이 저자는 ADHD 장애를 가진 중퇴생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대학 수업을 듣고 성적을 받고 대학원까지 진학했을까?

방법은 자신에게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대학 수업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교수 한 명이 모든 걸 설명하고 학생들은 이를 듣는 강의형, 또는 교수는 거의 진행자의 역할 정도만 하고 학생들이 토론을 하며 이끌어나가는 수업 등.

저자는 전자 같은 형태의 수업은 지루해했지만, 자신이 관심을 갖는 대상에는 초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후자의 수업을 골라 들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성향상 길고 지루한 수학 수업을 낙제하리라는 걸 알았고, 대신 대학에서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학 보충 강의를 대체할 수 있는 수학 시험을 스스로 공부해 치른다.

자신의 학습 속도에 맞춰 자신의 방식으로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기에 저자는 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모든 수학 강의를 건너뛸 수 있었다.

 

요지는, 모든 개인은 다르므로 자신의 특성,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부족한 점을 어떻게 다른 것으로 보완할 수 있을지는 자신만이 알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파악하고 더 많이 알아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평균'의 환상에서 빠져나와 자신에게 최고로 어울리는 길 또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이들이 '평균'이라는 환상에 가려진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자신을 이해하고 더욱 채워 가며 온전하고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 보면 좋겠다. 학생이나 교사라면 더더욱. 강력 추천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