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알무트 슈말레-리델, <우울한 게 아니라 화가 났을 뿐>

[책 감상/책 추천] 알무트 슈말레-리델, <우울한 게 아니라 화가 났을 뿐>

 

 

눈이 확 뜨이는 책이다.

보통 화를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기고 피하려고 하는데, 특히 여성들은 화를 내는 게 너무 남성적이고 공격적이라 생각해서 화를 더욱더 피한다.

그래서 그들은 화라는 감정을 포기하고 자신의 감정을 우울함, 슬픔으로 표현한다.

많은 사람, 그중에서도 여성은 화내기보다는 슬퍼하는 쪽을 택한다. 화가 날 만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불현듯 그런 감정이 스치기도 할 테지만 그때마다 실망과 고통, 슬픔 등을 재빨리 앞세우고 분노는 애써 떨쳐버린다.

 

왜냐하면 여성성과 화, 분노가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이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 두 요소가 조화될 수 없다는 관념 뒤에는 어떤 여성상이 숨어 있을까? 우선 여기에는 분노하는 여성을 강하게 비하하려는 저의가 깔려 있다. 양육자가 항상 의식하고 그러는 건 아니라 해도 여자아이를 양육할 때는 앞서 말한 것 같은 언어적 표현이 교묘하게 활용된다. (...) 화를 잘 재는 여자아이보다는 다루기 쉬운 얌전한 여자아이가 '건강한 아이'로 여겨진다. 화를 잘 내는 여자아이는 흔히 '까다로운 아이'로 불린다. 이렇듯 구시대적인 사회화의 잔재는 여전히 건재하다.

남자아이는 분노를 표현해도 어느 정도 받아 주는데, 여자아이에게는 그런 것을 남자아이만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아이라고 해서 "평화주의적인 유전자를 타고나지는 않는다."

대개 여성들은 화를 남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여성은 결코 남성에 비해 화를 덜 내고 분노하지 않는 게 아니다.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화를 내고 표출할 뿐이다. 적잖은 수의 여성은 소란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불평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런 '들볶기'는 특히 불만을 터뜨릴 때 사용된다. 하지만 이 같은 소심한 부담 덜기 전략은 여성에게 별다른 소득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불평과 논쟁은 다르기 때문이다. 갈등을 해결하고자 할 때는 화를 건설적으로 사용하는 논쟁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녀를 불문하고 화라는 감정을 인지하고 잘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화, 분노는 분명히 우리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감정이다.

분노뿐 아니라 '작은 분노'라고 할 수 있는 화도 타인에게 선을 긋고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우리를 돕는다. 화나 분노는 특히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거나 중요한 욕구가 외면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순간에 이를 일깨워주는 신호 역할을 한다.

'중요한 욕구가 외면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순간'에 화를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고도 '아 괜찮아'라고 멋쩍게 웃고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 즉 피해를 당하고서도 사과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점을 잘 표현한 게 바로 다음 문단인데, 내게 제일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말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타인 때문에 마음의 상처와 실망을 경험했으면서도 분노를 느끼지 못하고(혹은 느끼고자 하지 않고), 심지어 상처 준 사람을 변호하려 들기도 한다. 이는 명백히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동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상처와 욕구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한다 해서 분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화를 영구적으로 외면하거나 떨쳐 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화는 감정 기복, 업무, 성생활, 꿈, 신체적 증상 등 다른 출구를 통해 언젠가 어떻게든 분출되기 마련이다.

아, 분노를 잘 쓰지 못하는 것도 내가 나의 가치를 낮추고 나를 깎아내리는 것과 같구나! 이걸 읽는 순간 정말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적절한 순간에 분노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를 옹호하지 못하고 나를 잘 돌봐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구나!

 

네이트 판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상황이 이러이러한데 내가 화를 내는 게 맞는지' 물어보는 글들이 허다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라는 감정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다. 

스스로에게든 타인에게는 감정의 강도가 천차만별로 평가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대목이다. 화와 분노의 강도는 항상 주관적으로 체험된다. 감정에는 객관적인 척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내가 화를 내도 될까? 이게 타당한 감정인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분노는 매우 중요한 감정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느낄 자격이 있다.

그러니까 화가 난다면 그걸 인정하라.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되니까.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다시피, 많은 여성들이 화내기보다는 슬퍼하기를 택한다. 이는 "슬픔은 애착 대상에게 받아들여지지만 분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는 화가 나서 날뛰는 여자아이보다 슬퍼하는 여자아이를 달래는 게 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이는 분석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대체 감정(Ersatzgefühle)' 또는 '은폐용 감정'을 학습한다. 화를 내는 대신 슬퍼하고, 분노하는 대신 두려워하는 식으로 감정에 가면을 씌우는 것이다. 자라면서 다양한 감정을 인지하고 분류하는 법을 올바로 배우지 못하면 아이들은 이처럼 본래의 적절한 감정이 아닌 가짜 감정을 품는 법을 배운다.

(...)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는 삶의 일부분이자 우리 감정의 중요한 부분인 화와 분노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훈련할 수 있다.

책에서 소개되는, 베아테라는 이름의 여성도 심리 치료를 통해 이를 배웠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역시 새로 쌓아야 했다. 어떤 감정을 품고 있든 자신은 있는 그대로 괜찮은 사람이며 환영받는 존재라는 믿음, 슬픔과 두려움, 무력감 같은 '나약한' 감정도 중요하며 그런 감정을 품어도 괜찮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각 챕터 끝부분이 '나-그리고-화'라는 코너에서 독자가 스스로 화에 대한 접근법, 태도를 살펴볼 수 있는 질문을 제공해 주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 내 감정을 향한 접근로는 전반적으로 어떠한가?
• 어떤 감정을 특히 자주 느끼는가?
• 내게 낯선 감정은 무엇인가?
• 어떤 일이 어긋나거나 내게 방해될 때 대체로 슬픔을 느끼는가?
• 분노 때문에 울 수 있는가?
• 슬플 때보다 화날 때가 많은가?
• 무력감과 불안감이 드는 상황에 처했을 때 자주 화를 내는가?
• 특정한 상황에서 분노하는 게 적절한지 성찰하고 가늠하는 데 능숙한가?

안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자신의 화를 받아들이고 화를 잘 낼 수 있을 때까지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과 괴로움을 견디고 정말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도달할 때까지, "화라는 감정에 접근할 통로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자기 자신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기보다는 스스로를 애정 어린 마음가짐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슬픔이라는 대체 감정으로 숨어 버리며 결국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저자의 이 말로 이 책 리뷰를 마무리하고 싶다.

누가 뭐래도 당신의 분노는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