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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매기 앤드루스, 재니스 로마스,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by Jaime Chung 2020.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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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매기 앤드루스, 재니스 로마스,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책 제목이 내용을 너무 잘 요약해 줘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니 개중에 내가 제일 인상 깊었던 물건만 몇 가지 소개하겠다.

 

07 | 위생용품 - 생리대

생리대의 발명은 수백만 여성들에게 있어 월경에서 비롯되는 어려움과 잠재적인 곤란함을 완전히 해결해 놓았다. 최초의 생리대는 1988년에 영국의 사우스올(Southall's)사가 생산했다. 미국에서는 1896년에 리스터(Lister's)사가 처음으로 일회용 생리대를 생산했다. 그러나 이 두 제품 모두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너무 비쌌다. 유럽과 미국의 여성들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릴 터였다.

(...)

생리대와 탐폰의 역사는 여성의 삶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상징한다. 생리대 발명 이전에 여성들은 생리 기간 동안에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일쑤였다. 생리는 뭔가 부끄러워해야만 하는 것처럼 여겨졌으며 입에 담는 법이 없었다. 종종 '저주'라는 단어로 표현되기도 했다. 지금은 많은 나라에서 생리대와 탐폰을 공공연하게 광고하고 있으며 여성들은 생리현상을 일회용품으로 위생적이고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이 삶의 모든 면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데 크나큰 장애물이었던 것은 이제 사소한 불편함 정도로 바뀌어 버렸다. 여성은 더 자유로워졌다. 단순히 신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어색함, 수치심, 편견으로부터의 자유였다.

생리대 또는 탐폰이 편한 거야 만인이 인정하는 사실이니 (실제로 천 생리대나 문컵을 사용하는 사람일지라도 이 점은 인정할 거다) 여성 세계사를 바꾼 물건으로 생리대가 꼽히는 거야 놀랍지 않다.

다만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삶을 편하게 하는 이런 물건이 내 생각보다 늦게 발명된 게 놀랍다. 세상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이게 연구나 발명이 필요한 문제라는 문제 의식이 부족했던 듯하다. 세상에... 그 전까지는 도대체 천 생리대 같은 걸로 어떻게 견뎠던 걸까.

 

29 | 출산에서의 의료적 개입 - 산과겸자

1588년경 이발사인 피터 챔벌린(Peter Chamberlen)은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모두 구하는 혁신적인 장치인 겸자를 발명했다. 구멍 난 커다란 숟가락같이 생긴 이 겸자로 태아의 머리를 감싸고 고정시키면 두개골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 혁신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챔벌린과 그의 형제는 영국 궁정의 여성들의 분만에 참여했고 유럽 전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 엄청난 대가를 받았다. 이윤에 이끌린 그들은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며 삼대째 겸자의 비밀을 지켰다. 그들은 산모에게 눈가리개를 하고 수행원을 내쫓은 뒤 금속 장치 소리를 가리기 위해 막대기를 두드리고 종을 울렸다.

겸자의 발명은 의사들이 출산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을 닦은 중요한 요소였다. 1721년 벨기에의 이발사인 장 팔핀(Jean Palfyne)은 직접 개발한 겸자를 파리의 과학학술원에 제시하면서 산도에 맞는 곡선을 추가하여 개량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영국의 외과의사 윌리엄 스멜리(William Smellie)와 프랑스의 앙드레 르베(Andre Levet)를 포함한 의사들이 이 디자인을 다듬었다. 부유한 가정이 이발사나 의사를 고용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고 결국 남자가 출산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18세기 동안 유럽에 겸자가 널리 보급되었을 때에는 남성들만이 합법적으로 이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수술은 높은 수수료를 요구했고, 의사들은 산파들이 더럽고 무능하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남성 우월적 분위기 속에서 분만실의 여성이 자신의 주된 역할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다.

겸자가 출산 과정에서 그렇게 큰 도움이 되는 도구인 줄 몰랐다. 그리고 16세기 당시에 이발사면 지금의 의사가 하는 일을 했던 사람들인데 의료 윤리라든가, 산모들이나 산모의 가족에 대한 배려 같은 건 전혀 없이 산모에게 눈가리개를 시켰다고?

18세기의 이발사나 의사들도 환멸 난다. 자신의 성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거기에 끼어들려고 하는 거지? 아니 물론 남성도 산부인과 의사가 될 수 있고 출산을 도울 수 있지만,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산파들을 비난하고 남성 우월적 분위기를 조장할 것까지는 또 뭐란 말인가...

 

30 | 고단함의 해방 - 재봉틀

최초의 재봉틀은 1790년 영국의 토머스 세인트(Thomas Saint)가 발명한 이래 50년 동안 개량되고 개선되었다. 상업용으로 처음 고안된 재봉틀은 의류제조업에 혁명을 일으키며 기성복을 탄생시켰다. 1850년대에 미국과 서유럽에서 가정용 재봉틀이 도입되자 여성의 가내 바느질 형태 역시 변화를 맞이했다.

미국의 발명가 헬렌 블랜차드(Helen Blanchard)는 1870년대와 1880년대에 재봉틀을 여러모로 개량하며 특허를 얻었다. 지그재그형으로 바느질을 하고 단춧구멍을 만들 수 있는 최초의 재봉틀과 편직물을 바느질하는 동시에 다듬을 수 있는 오버시밍(over-seaming) 재봉틀이 그것이다. 최초의 전기 재봉틀은 1889년에 싱어(Singer)사가 만들었다. 가정용 재봉틀의 효율성이 향상되면서 영국의 한 잡지는 '세계 역사에서 재봉틀은 지금까지 어떤 발명품보다 여성을 육체노동의 고단함에서 가장 많이 해방시켜 주었다'고 단언했다. 간단한 드레스 한 벌 만드는 데 10시간이 걸렸다면 이제 한 시간 만에 만들 수 있었고, 남성용 셔츠를 만드는 시간은 14시간에서 1시간 15분으로 줄어들었다.

(...)

재봉틀을 가지면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이 의류 배급을 시작하고 '수선해서 오래 입기'에 관심이 집중되며 그 필요성은 한층 높아졌다. 제한된 쿠폰 수당에서 재료를 사서 직접 옷을 만들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 재봉사를 고용함으로써 더 나은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많은 여성들은 전쟁 때문에 바느질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어떤 주부는 자신의 일감이 이전에는 단추, 어깨 끈, 그리고 다른 일상적인 수리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재봉틀 공장이 전쟁물자를 생산하게 되면서 중고 제품에는 웃돈이 붙어 거래되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재봉틀을 구해준 후 그녀는 수선에 대한 책을 샀는데 그것은 그녀의 바느질 기술에 있어서 완전한 혁명을 의미했다. "정말 보물이었어요. 그걸로 커튼, 아이들 코트, 심지어 탑코트와 내 드레스까지 만들었죠."

재봉틀이 여성을 육체노동의 고단함에서 가장 많이 해방시켜 주었다고? 놀랍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아무래도 나는 '재봉틀'이라고 하면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는 공순이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세대라 그런 것 같다.

요즘에는 취미로 옷 만들기나 옷 리폼 등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이지 여성들이 기본적으로 하는 가사노동에 속하지 않으니까.

기껏해야 단추 달기나 구멍 메우기, 간단한 옷 수선 정도가 전부지, 그 이상은 세탁소에 맡기거나 아예 새옷을 사지 않나.

하지만 기성복이 대량 생산 되기 전에는 분명 온 가족 옷을 다 여성이 만들어 입혔겠지. 그 점을 고려한다면 재봉틀은 획기적인 발명품이 맞다.

 

32 | 진화론의 기초 - 플레시오사우루스 화석]

플레시오사우루스(Plesiosaurus)는 메리 애닝(Mary Anning)이 화석 발굴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발견한 수백 개의 화석 중 하나에 불과하다. 1799년에 라임 레지스(Lyme Regis)에서 태어난 메리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리처드(Richard)의 지도를 받으며 주변 절벽에서 화석을 찾는 안목을 개발했다.

메리는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지질학, 고생물학, 해부학을 독학했다. 유명한 과학자들이 메리의 작은 오두막을 방문하거나 그와 서신을 주고받았고, 그에게서 화석을 사서 그의 발견물을 기록했다. 메리의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엔 화석 판매로 생계를 꾸렸지만 그의 예상치 못한 죽음 이후에 메리의 어머니와 오빠는 무일푼이었고 살아남기 위해 교구 구제에 의존했다. 메리는 본격적으로 화석 발굴을 시작했다. 그의 오빠 조셉도 화석을 수집했고 1810년에 메리가 처음으로 발견한 중대한 화석 이크티오사우루스(Ichtyosaurus)의 발굴에 동참했다. 절벽 면에서 화석을 발굴한 메리는 고작 열두 살이었다. 그 후 조셉은 화석 발굴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대신 훨씬 더 안정적인 가구 덮개 교체 일을 했다.

(...)

메리의 화석 발견은 지구 과거의 과학적 재건에 중요한 발전이었으며, 1859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진화론의 기초를 제공했다. 메리는 결코 부유하지 않았고 여성이었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과학자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보통 공룡에 대한 지식이 가장 많을 때가 5살 때, 또는 그 나이의 아이가 있을 때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5살 아이'는 내게 언제나 놀이터에서 더러워지기를 두려워 않는 말썽꾸러기 남자아이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그 공룡 화석의 권위자이자 고생물학의 개척자 중 한 명이 여성이라고? 아니, 어째서 내가 여태껏 이런 얘기를 못 들어 봤던 거지? 사기 당한 기분이다.

공룡이라 함은 '당연히' 남성적인 느낌, 남자애들이나 좋아하는 것이라는 이미지였는데. 에잇, 공룡 따위에게 성별이 어디 있다고! 

내 편협한 사고도 유감이지만 '공룡을 좋아하는 건 대개 남자애들'이라는 이미지를 은근히 주입한 사회도 잘못했네!(책임 전가...)

정말 세상 만사는 배우고 볼 일이다. 알게 되니 세상을 보는 시선이 이전과는 같지 않구나.

 

냉장고나 라디오처럼 이젠 너무나 익숙해서 '이거 없이 도대체 어떻게 살았지?' 싶은 물건도 자주 언급된다.

나도 라디오에 관한 부분을 인용하려고 했는데 그럼 너무 길어질 거 같아 간단히만 요약하자면, 라디오는 전 세계를 집 안 거실로 들여온 도구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도 도왔고.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정말 흥미롭게 잘 읽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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