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최광현, <사랑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

by Jaime Chung 2021. 4. 21.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최광현, <사랑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을 바탕으로 한 책인데, 나는 같은 내용이라도 영상보다는 글으로 접하는 게 좋아서 책으로 보길 잘했다 싶다.

강의를 바탕으로 한 거라 구어체로 쉽고 편하게 설명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내가 제일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 몇 군데만 소개하겠다.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 심리학자인 토니 험프리스(Tony Humphreys)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30년 동안 정말 많은 가족들을 상담했지만, 놀랍게도 일부러 자녀와 배우자에게 해코지를 하려고 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언론을 통해서 심각한 문제를 가진 가족들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저러고도 사람이야?'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가족들도 알고 보면 고의로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그리고 그의 부모 세대에서 발생했던 불행의 패턴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상담을 하다 보면 분명 갈등의 가해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가해자가 이 가족들에게 가장 고통받는 피해자, 즉 희생양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정말 소름끼칠 때가 많습니다. 독일의 가족상담사인 프란츠 루퍼트(Franz Rupert)는 "인간의 정신은 여러 세대에 걸친 현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문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얽히고설킨 애착 관계의 결과일 때가 아주 많습니다. 이런 문제가 불행한 결혼 생활과 고통스러운 가족 갈등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을 만들고는 하는데,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투사'라고 합니다. (앞에서도 몇 번 이야기했었죠?) 자신도 모르게 그 모든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부부의 침대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 여섯 명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부부가 침대에 누워 있지만 그 침대에는 부부만 누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그 여섯 명은 누구일까요? 부부, 그리고 부부 각자의 부모입니다. 이 부부엑데 삶의 방식과 친밀감의 방식, 정서적 소통 방식을 전수하고 같이 공유했던 부모가 그 침대에 함께 누워 있습니다.

우리의 꿈, 욕구, 정체성, 고통, 갈등에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조상의 출신, 이분들이 걸었던 인생의 여정, 갈망, 신념, 그리고 부모님이 우리의 어깨 위에 올려놓은 모든 꿈과 절망들까지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냥 신기한 이야기.

트라우마는 가족이 아닌 다른 조직에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부자의 방〗을 쓴 건축사 야노 케이조는 영국의 생화학자 루퍼트 셸드레이크(Rupert Sheldrake)의 '형태장(morphic field)' 이론을 통해 공간의 기억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이 이론은 특정한 장소에서 그전에 없던 일이 한 번 발생하면 앞으로도 그곳에서 같은 일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건데, 이러한 공간의 기억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케이조는 분명 유동 인구가 많은 거리 한복판에 있는 상가인데도 그곳에 들어오는 모든 가게가 망해서 나가는 경우 이러한 '형태 공명(morphic resonance*)'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보았습니다. 이상하게 회의를 하면 이상하게 싸움이 자주 발생하는 특정 회의실도 한 예로 들었습니다.

*반복해서 발생하는 사레로, 영국 텃새인 푸른박새가 있습니다. 푸른박새가 우유병의 뚜껑을 부리로 쪼아 우유를 먹는 방법을 알게 되자 이것이 금세 다른 지역의 박새들에게 전파되어 모든 박새들이 우유병을 쪼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새의 활동 범위는 15킬로미터를 넘지 않는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보이지 않게 서로 연결해 주는 '형태 공명'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셸드레이크는 설명합니다.

 

이 책의 부제는 '사랑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인데 연인간의 사랑보다는 가족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은 유의하시라. 살짝 헷갈리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린다.

전반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이걸 읽는다고 가족간의 갈등이 뿅 하고 사라질 리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니까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다 하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