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미깡, <해장 음식: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내가 며칠 전에 시도한 <띵>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첫 번째 책 이야기는 여기에:
2021.05.10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이다혜, <조식: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웹툰 <술꾼도시처녀들>과 <하면 좋습니까?>의 저자 미깡이 술꾼 경험을 살려 이 에세이를 썼다.
역시 술꾼이라 그런지 술에 관해 할 이야기가 많더라.
문제는 내가 저자와 별로 유머 감각이 안 맞는다고 할까, <술꾼도시처녀들>은 안 봤고 <하면 좋습니까?>는 그냥 저럭저럭 봤던 나다.
왜 이 책은 내 취향에 더 맞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보기엔 책 맨 앞에 나오는 편집자의 글이 더 재미있고 내 취향이다.
<띵> 시리즈는 과연 나랑 안 맞나 보다. <아무튼> 시리즈도 비슷하게 짧은 에세이 시리즈인데 주제가 훨씬 더 다양하고(음식에 국한되지 않으니), 저자진이 훨씬 더 내 취향이다.
<아무튼> 시리즈가 먼저 나와서 신선하고 재능 있는 작가들을 독점해서 아무래도 후발 주자인 <띵>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뒤처졌나 보다.
애초에 나는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인데 술 얘기를 찾아서 본다는 게 좀 우습기도 하지만, 나는 원체 술 잘 마시는 친구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그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그랬다.
심지어 비슷한 주제인 <아무튼, 술>은 정말 배꼽을 잡으며 읽을 정도로 재밌고 유쾌했다.
(이 책 리뷰는 아래에!)
2020.02.19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김혼비, <아무튼, 술>
그래서 이 <해장 음식>도 기대를 잔뜩 하며 봤는데, 맨 앞 편집자의 글이 제일 내 취향에 맞고 재밌었다. 나머지는 그다지...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겠다. 나는 이 책이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나랑 저자와의 코드가 안 맞는다고 말하는 거다.
이런 스타일의 글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도 있고, 그건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나는 내 취향에 맞는, 저자와 코드가 맞는 책을 찾아서 읽어야겠지.
아, 근데 문체가 본인의 취향에 맞는지는 읽어 봐야 아실 테니 이 책에서 제일 유용했던 한 문단을 보여 드리는 것으로 이 글의 마무리를 갈음할까 한다.
동네 술친구가 말하기를, 게토레이 두 병을 사서 자기 전에 한 병 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 한 병을 마시면 살 만하다는 거다. 정말 이온음료는 숙취 해소에 효과가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약간은 된다."는 다소 김빠지는 대답을 내놓았다. 수분 보충이 되니까 도움은 되지만 그 효과는 물과 비슷한 수준ㅇ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을 마시지 왜 굳이 돈 주고 사 마시나 싶겠지만, 이온음료를 사서 마시는 행위 자체를 일종의 의식으로 간주하면 말이 안 될 건 없다. 평소에는 마시지 않는 짭짤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① 내가 지금 술을 많이 마시긴 마셨구나 하는 통렬한 자각, ② 약소하지만 이거라도 넣어드릴 테니 위장님과 간장님, 화를 풀어 주세요 하는 간절한 반성, ③ 이걸 마시니 한결 좋아졌다는 플라세보 효과까지 단계적으로 느껴 볼 수 있는 것이다. 게토레이 두 병이 숙취에 좋다던 친구 임유청은 슬쩍 말꼬리를 흐리며 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자기 전에 게토레이 한 병을 마실 정신이 있다는 건 덜 취했다는 거..."
빙고! 자기 전에 이온음료를 마실 정신이 있다면 애초에 덜 취한 거다. 실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온음료를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지만 '세계 맥주 4캔 만 원' 코너로 홀린 듯 걸어가는 자만이 실험 대상자로서 정당한 자격을 갖춘 것이다. 파워에이드 비법? 아니, 어떻게 술에 취했는데 두 시간 자고 일어날 수 있단 말이냐! 세간에 떠도는 수많은 숙취 해소 비법들은 딱 절반쯤 걸러서 듣는 게 좋다. 게토레이 마시고 멀쩡해졌다 주장하는 자는 충분히 취하지 않았기에, 충분하고 충만하게 취한 오늘의 내가 똑같은 걸 마셔본들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딱 하나다. 많이 마셔야 한다는 것. 물이든 음료수든 동치미 국물이든 뭐든 무조건 많이 마셔서 알코올을 소변과 함께 몸 밖으로 내보낼 것. 나중에 속이 쓰리더라도 당장 오렌지 주스밖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거라도 마시자. 알고 보면 소금물에 불과하지만 플라세보 효과라도 있다면 이온음료, 벌컥벌컥 마셔 주자. 액체로 된 건 뭐든 다 좋다. 딱 하나, 술만 빼고!
이 책이 여러분 취향에는 맞기를. 아니라면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을 도전해 보세요. 이건 진짜 재미있다고 보장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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