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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이다혜, <조식: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by Jaime Chung 2021.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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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다혜, <조식: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뭐 재밌는 거 없을까 하고 리디북스를 돌아다니다 '띵 시리즈'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이다혜의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맨 앞, 편집자의 글에 이 시리즈의 의도가 잘 설명돼 있다.

잘 먹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 이상으로 삶의 커다란 행복이 되었습니다. 살다가 때때로 마주하는 '띵' 하는 순간! 머리가 띵 하고, 배 속이 띵하고, 그 무엇보다 마음이 띵 하는, 바로 그때! 그렇게 온몸을 찌르르르 통과하는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거운 삶의 장면마다 우리는 음식과 함께해왔습니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 쨍하게 시원한 냉면 국물을 쭉 들이켜 가슴에 맺힌 화를 식히고, 입안이 얼얼하도록 매콤한 음식 한 젓가락에 지옥의 문턱을 밟았다가, 다디단 디저트를 베어 물고 금세 천국을 경험하기도 하는 우리들이니까요. 늘 곁에 있는 음식과 함께 쌓여가는 영롱한 이야기들을 수집해두고자 이 기획은 출발했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각 권마다 주제가 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키워드 선정 규칙이랄까, 조건은 다음 네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면 됩니다. 하나, 구체적인 음식 한 가지. (예를 들면, 짜장면.) 둘, 평소에 자주 쓰는 식재료. (에를 들면, 양파.) 셋, 상징성을 가질 만한 음식의 범주. (예를 들면, 해장 음식.) 넷, 음식과 관련된 특정 주제. (예를 들면, 조식.)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책마다 메인 테마로 삼을 수 있는 '한 가지'입니다. 때로는 음식이 아니도 되지만 음식과 필연적인 관련성은 있어야 하며,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아우르는 데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장르 불문 이유 불문 여러 음식들을 분식집 메뉴판처럼 늘어놓는 방식은 의식적으로 지양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고 싶은 조건은, 각자 선정한 주제에 기본적으로 애정이 바탕이 깔려 있을 것!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더욱 할 말이 많아지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싶은 마음으로 벌써 분주해지니까요.

호오, 흥미로운데? 그런 생각으로 책은 구입해서 읽어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자와 내가 코드가 잘 맞지 않는 듯해, 비슷한 시리즈인 <아무튼> 시리즈보다 재미가 덜했다.

<아무튼> 시리즈도 무조건 다 재미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자진들이 꽤 나랑 코드가 맞아서, 주제 자체는 내가 흥미가 없거나 잘 모르는 것이더라도 글을 재미있게 잘 써서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았다.

그에 비해, <띵 시리즈>는 음식이라는, 정말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제각기 할 이야기가 있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 진짜 웃기다!' 하는 감상을 나에게 전해 주기엔 부족했다.

물론 글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취향을 타기에 내가 이 작가와 코드가 안 맞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재미없게 봤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전혀 없지만.

 

물론 그래도 몇 군데 흥미로운 부분, 예리한 지적, 공감할 수 있는 데가 있었다.

예컨대 이런 곳. 다음은 <배고픈 자가 차려 먹어라>라는 꼭지의 한 부분이다.

곧 결혼하는 남자 사람 친구, 혹은 나에게 결혼을 청했던 남자들을 떠올리면 '아침밥'이라는 단어가 놀라울 정도로 많이 거론된 기억이 난다. 결혼하고 싶은 이유를 물으면 아내가 앞치마를 하고 아침상을 차려놓고 자신을 깨우러 오는 광경을 말한다. 평소에 아침을 잘 먹지도 않고, 집 분위기가 그런 것도 아니라는데, TV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신혼 풍경이라는 게 미치는 영향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결혼을 해야 인간답게 살 거라고 독신 남성에게 말할 때, 사람들은 동등한 인간 한 사람을 떠올리는 대신 우렁각시를 생각하는 것 같다. 남자가 보지 않는 동안 남자가 필요한 줄도 몰랐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일하는 존재.

결혼하는 여자는 "아침마다 남편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싶어!"라고 하지 않는데, 결혼하는 남자는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상"을 말한다. 아침 안 먹는다고 분명 들었는데도, 결혼을 하면 그게 상징적인 이벤트가 된다. 아침상을 차려주는 사람이 생긴다는 게 좋은 건지, 아침을 먹고 싶다는 건지 구분하기 어렵다. 아침 먹는 게 좋아? 그럼 지금부터 직접 차려 먹어.
전날 아내와의 섹스가 좋았다는 말을 결혼한 남자들은 "아침상이 달랐다."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너무 웃기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가 느껴질 정도라면, 얼마나 그 빈도가 낮았다는 말이야? 평소에는 뭘 하고 있어? 어쩌다 한번 아침밥이 잘 나온 일을 자랑하고 싶어?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중년 여성들의 농담 중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하는 짓을 보면 "그 입에 밥 들어가는 꼴도 보기 싫다."고. 누구 입일지는 알아서 생각해보시라.

 

<모닝 곱창전골을 먹은 사연>에서는 이게 웃기고 짠하고 공감됐다.

안녕하세요. 저는 1인 가구의 세대주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밥'이라는 소재로 책을 쓰는 중인 제가 아침으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메뉴는? 바로 '전날 밤에 먹고 남은 것'입니다. 이럴 줄은 몰랐어요.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독한 미식가가 됩니다. 아니, 미식은 전날 밤 했고, 이튿날 아침은 그냥 고독한 음식처리반이 되지요. 남은 곱창전골에 우동사리를 넣어 끓이고, 전날 밤 먹은 교촌치킨은 밥반찬으로 먹고, 누가 사준 단팥빵이니 초콜릿이니 하는 것은 커피와 함께 우걱우걱 먹습니다. 쓰레기통에 넣지 않기 위해 내 입으로 버리는 음식들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의 흔한 아침식사 풍경입니다. 전날의 끼니를 '맛없게' 한 번 더 먹습니다.

시켜 먹든 만들어 먹든, 언제나 남는 음식이 고민입니다. 지구 환경도 생각해야 하고요.

 

<내일 뭐 먹지?>에서는 이거. 하루를 제대로 잘 시작하려면 전날 밤에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거. 너무 맞는 말이다.

아침밥은 먹기 쉽지 않다. 밥을 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동일할 때, 아침은 가장 먼저 생략되는 끼니다. 아침밥이 중요하다는 말, 아침을 거르는 법이 없다는 말에는 여유 있는 아침시간이 확보되어 있다거나 아침을 차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속뜻이 있을 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든 건강을 위한 식이요법이든, 삶을 앞으로 밀고 가는 추진력을 발휘해야 할 때는 아침밥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하루를 제대로 시작해야 하루를 잘 이끌어갈 수 있는데, 그러려면 제때 일어나야 하고, 하루를 계획해야 하고, 첫 끼니를 잘 챙겨야 한다는 뜻인 듯하다. 일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능률이 높은 삶을 유지하려면 해가 떠 있는 동안 움직이고 여덟 시간 수면 후 해뜰녘에 기상하기 위해 일찌감치 잠들라는 말이다. 오전의 공복상태를 견디는 대신 머리 쓰는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영양소 공급도 중요하다.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밥 먹는 시간도 확보가 쉽다.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한다는 말은, 전날 밤부터 다음 날에 대한 준비를 마친다는 뜻이다. 저녁식사 준비는 귀갓길에 할 수도 있지만 아침식사는 이른 아침에 문을 여는 마트가 가까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전날 밤에 준비를 마쳐야 한다.

아차차. 샛별배송의 나라에서 내가 또.

하지만 잊으면 안 된다. 샛별배송도 주문 마감은 전날 밤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아침식사라는 단추를 잘 채운다는 건 밤에 시작하는 이튿날의 일정을 정돈한다는 의미. 식사를 챙길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의미.

 

솔직히 <띵 시리즈>의 주제가 흥미로워 보여서 다음 몇 권을 더 시도해 볼 예정이다. 그래도 작가진이 나랑 안 맞으면 이 시리즈는 그냥 포기해야지.

다음 권도 읽고 나서 리뷰를 쓸 테니 기대해 주셔도 좋고, 안 하셔도 저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보다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어서 재밌게 읽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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