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Love Sarah(2020,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 - 세 여자들이 힘을 합쳐 대신 이루어 준 꿈의 빵집
감독: 엘리자 슈뢰더(Eliza Schroeder)
기쁜 얼굴을 하고 자전거를 몰며 어디론가 향하는 한 여성. 그 여성의 이름은 사라(Sarah, 캔디스 브라운 분). 그녀는 자신의 절친 이사벨라(Isabella, 셀리 콘 분)와 함께 빵집을 열 생각으로 들떠서 달리는 중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신나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몰던 중 불의의 사고로 그녀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이제 세상에 남은 것은 그녀의 절친 이사벨라, 그녀의 딸 클라리사(Clarissa, 섀넌 타벳 분),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미미(Mimi, 셀리아 아임리 분).
클라리사는 엄마와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던 듯하지만, 남친과 헤어져 갈 곳이 없어 길에 나앉을 처지다. 그래서 엄마가 빵집을 열려던 그 가게 자리(마침 비어 있었다)에서 잠을 청하고, 다음 날 엄마의 절친 이사벨라를 만난다.
이사벨라는 자신이 사라만큼 좋은 제빵사가 아니라 생각해서 그녀 없이는 빵집을 열 수 없다 판단하고, 이미 세를 얻은 점포를 내놓고 예전에 자신이 일하던 회사에 말 그대로 '구걸을 해서' 되돌아간다.
하지만 클라리사는 댄서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잠시 미루더라도 엄마의 꿈을 꼭 이뤄 주고 싶다. 그래서 이사벨라에게 우리끼리라도 빵집을 열자고 한다.
하지만 누가 빵집 오픈에 필요한 자금을 댈 수 있겠는가? 믿을 구석은 사라의 어머니이자 클라리사의 할머니, 그리고 사라에게는 제2의 어머니와도 같은 미미뿐.
미미와 클라리사는 사실 본 지가 오래되어 어색하고 서먹한 사이지만, 클라리사가 갈 곳이 없어 최근 미미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 빵집 오픈 계획에 미미가 힘을 보태어 준다면, 사라 주위의 세 여자들이 힘을 합쳐 사라의 꿈을 대신 이루어 주는 셈이다.
세 여자는 의견 차이도 있고 싸울 때도 있지만 마침내 빵집을 열고, 사라를 기리는 의미에서 '러브 사라'라고 이름 짓는다. 그러나 오픈의 기쁨도 잠시. 손님 하나 없는 이곳을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까?
'벡델 테스트' 정도는 시작 5분 만에 간단하게 통과해 버리는 여성 영화다. 대놓고 페미니즘을 선전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영화 핵심 주인공 셋이 여성이다. 남성과의 로맨스도 물론 있긴 하지만 그 로맨스의 주체인 여성이 이 남성의 마음에 어떻게 들까 하는 고민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볼만한 영화를 찾으면서 여러 영화를 대충 살펴봤는데, 그중 한 편은 앞에 한 10분쯤 보다가 꺼 버렸다.
남성, 그것도 백인 남성이 주인공인데 하버드가 목표일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만큼 집안도 받쳐 주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런 주제에 자기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쩌다 망했는지에 대해 불평하는 걸 듣고 있자니 도저히 공감이 안 되고 재미도 없어서 그냥 꺼 버렸다.
그리고 다른 괜찮은 영화를 찾다가 마침내 여기에 정착했다. 여자들이 셋이나 나와서 영차영차 힘을 합쳐 빵집을 차린다고? 그래, 이거야!
여성들이 주인공이고,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많이 봤더니, 이제 특권을 가진 남자들이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는 도저히 흥미롭게 볼 수가 없겠더라.
그러던 차에 이 영화를 만나니, 위가 쓰리던 차에 담백하고 깔끔한 죽으로 속을 달래는 듯한 편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세 주인공, 그리고 사라와 이사벨라와 같이 파리에서 제빵을 공부했던 남사친, 매튜(Matthew, 루퍼트 펜리 존스 분)가 빵집을 운영하긴 하지만, 식욕을 폭발시킬 만한 '푸드 포르노' 장면은 별로 없다.
요리를 하는 장면이 안 나온다는 게 아니고, '이거 봐, 엄청 맛있겠지? 배고프냐? 배고프냐?' 하고 묻는 듯 음식을 탐욕스럽게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없다는 뜻이다.
주인공들이 만든 빵, 디저트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 빵들을 또 다른 배우 또는 캐릭터로 보기에는 비중이 크지 않다.
그보다는 주인공들이 빵을 만들어 어떻게 주위 사람들과 연결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미미, 이사벨라, 클라리사는 빵집을 열고 운영하며 각자 자신에게 소중했던 존재인 사라를 기리게 되고, 클라리사는 이 빵집을 통해 클라리사의 아버지일 수도 있는, 사라의 친구 매튜를 만나게 되며, 이사벨라는 매튜와 다시 가까워지게 되고, 미미는 황혼의 로맨스를 다시 시작한다.
그뿐만 아니라, '러브 사라'는 그냥 흔한 빵집이 아니라, 영국 런던이 온 세상 사람들이 모이는 국제적인 도시라는 점에 착안해, 이민자들이 그리워하는 고향의 빵/디저트를 만들어 주어 그 '타자'들과 연결된다.
사실 나는 '뭐야, 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자기도 맛 한 번 못 본 이국의 음식을 설명만 듣고 만든다고? 레시피야 요즘 인터넷으로 다 검색해서 찾을 수 있다 쳐도, 뭘 먹어 봐야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거 아냐?'라는 다소 비딱한 생각을 했지만, 주인공들이 알아서 '조사' 과정에 실제로 다른 이들이 만든 그 이국의 음식을 맛봤을 거라고 믿자.
어쨌거나, 마지막에 '러브 사라'가 나름대로 대박을 치는 빵집이 된 것도, 빵을 통해 그렇게 타인과 이어졌기 때문이다.
'위꼴사'할 만한 장면은 거의 없지만, 잔잔하고 소소한 재미와 감동이 있는 영화라고 해 두겠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고소한 빵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