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서귤, <인생은 엇나가야 제맛>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서귤 작가님의 책이다!
2020.08.24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서귤, <회사 밥맛>
작가님 신작 나왔다고 왜 아무도 나에게 삐삐 안 쳐 줬냐 😢 이것 이전에 나온 <판타스틱 우울백서>도 너무너무 읽고 싶은데 이건 이북으로 안 나왔더라. 그래서 그건 못 읽고 이것만 이북으로 읽었다.
나와 개그 코드가 너무너무 잘 맞는 서귤 작가님의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빵빵 터졌는지 모른다.
이 책은 머피의 법칙이라고 할까, 뭐가 되려다가도 안 되는 그 '미스터리'한 삶의 순간들을 담았다.
각 '머피의 법칙'과 관련한 저자의 에피소드를 풀어내고 난 후 '미스터리 파일'이라는 짧은 코너가 등장하는데, 그 법칙/에피소드를 나름대로 설명해 준다. 대체로 (저자가 지어낸) 환상의 동물 또는 말도 안 되는 이론이다.
예컨대, 법칙 1 <소개팅이 잡히면 뾰루지가 난다>에서 하필이면 소개팅 때 뾰루지가 나서 "웃을 때마다 아침에 화장실에서 터트린 코 옆의 뾰루지가 찌릿찌릿했"던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이와 관련한 미스터리 파일 1번으로 "피지 난쟁이"가 소개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피지 난쟁이란?
인간의 피지선 속에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난쟁이. 지역마다 구체적인 묘사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물 풍선과 흡사한 비정형적 외형에 짧은 팔다리를 갖고 있다. 피지 난쟁이가 인간 본체에게 불만을 가지고 몸을 부풀리면 인간의 모공이 막히면서 부어오르는데 이것이 바로 뾰루지다.
그리고 그 밑에 작가가 그린 피지 난쟁이 상상도가 있다. 대략 이런 식이다.
그러고 나서는 역시 작가가 그린 네 컷 만화가 두 개 나오는데 정말 너무너무 웃겨서 읽는 와중에 몇 개는 친구에게 보여 주기까지 했다.
친구도 너무 웃기다고 했다. 아, 뿌듯ㅎㅎ
아, 그 만화라는 것은 <회사 밥맛>에도 중간에 틈틈이 들어간 그런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
이거 말고도 웃긴 게 많은데 내가 다 찍어서 보여 드릴 수가 없으니 제발 꼭 이 책 읽어 주시라.
우리 작가님을 대신해 내가 좀 더 책 칭찬 및 홍보를 해 보자면, 역시나 너무너무 웃기다. 몇 부분만 소개해 볼까.
<웹 소설 쓰기 쉬울 줄 알았는데 어렵다> 법칙에서 웹소설 편집자님과 나눈 대화는 이렇다(정확히는 편집자님이 작가님에게 날린 공격일까).
"작가님은, 작가님의 시놉에서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투력이 장난 아니시네. 우리 엄마인 줄.
당황해서 머뭇거리니 바로 기술이 들어온다.
"일단 저희 플랫폼에서는요. 이 정도 길이로는 연재가 불가능하고요."
1 콤보
"인물이 너무 많아서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2 콤보
"문장도 길고 쓸데없는 묘사도 너무 많고. 웹소설은 모바일 환경을 고려하셔야 하거든요."
3 콤보
"선악 구도가 불분명해서 몰입하기가 어려운 점도 아쉽고."
4 콤보
"소재도 논란의 여지가 너무 많고요. 이거 저희 플랫폼에는 못 올려요."
5 콤보
"작가님, 웹소설 읽어 보기는 하셨어요>"
저기요, 편집자님. 캐릭터 죽었잖아요. 더 이상의 부관참시를 멈춰 주세요.
<냉동실에 초면인 오징어순대가 있다> 법칙에서 청소를 하다가 딴생각을 하는 장면. 모두가 공감할 거라 본다.
과거 나의 룸메이트였던 E는 영원을 믿었다. 한번 냉동실에 들어간 식품은 절대 변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E는 냉동실에서 오래도록 자리보전을 하던 옥수수를 먹은 뒤 배탈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나는 꾸준히 냉동실 청소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만 했다.
지금 내 눈앞에 정체불명의 희고 검은 비닐봉지로 만석인 냉동실 풍경이 펼쳐지자 갑자기 E가 그리워진다. 아이 엄마가 된 E. 아이가 옥수수를 좋아하니? 이유식은 시켜 먹이니, 직접 만들어 먹이니? 언젠가 그 아이에게 우리가 국물떡볶이 1인분을 사서 남은 국물로 볶음밥과 비빔면을 말아 먹으며 이틀을 버텼던 오병이어의 기적을 얘기해 주고 싶구나. 자꾸 딴 곳으로 뛰어나가는 생각을 애써 다잡고 다시 냉동실로 눈을 돌렸다. 청소. 청소를 해야 한다.
(...)
하지만 대개 부잡스러운 사람들이 그렇듯 포장된 음식물 하나하나를 열어 보고 이따금 추억에도 잠기며 허송세월을 보넀다. 예컨대 이런 것이었다.
이 반쪽짜리 치아바타는 F과장님이 사줬다. 팀장님에게 혼나고선 입을 일자로 다물고 시위하고 있었더니 밖으로 데려가 커피를 사 먹이고 집에서 먹으라고 빵도 쥐어 주었다. 따뜻했던 사람. 얼마 전 연봉 1.5배 올려서 이직하셨다. 보고 싶네. 오랜만에 연락이나 해 볼까. 정말 연락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냥 하는 소리.
이 외에도 정말 무심하게 읽다가 가슴이 찡해질 정도로 감동적인 에피소드들도 만날 수 있다. 대체로 가족 일화가 그렇다. 오빠라거나 아버님 이야기.
한번 읽기 시작하면 너무 재밌어서 계속 키득거리며 읽게 될 테니까 딱 한 번만 날 믿어 보시라.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뭔가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떠나 보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오늘 몇 주간 조금씩 재밌게 보던 <The Good Place>를 끝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럴 때는 빨리, 좋은 다른 책으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진다.
이만큼이나 좋은 책은 찾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노력해 봐야지. 이렇게 좋은 책은 그런 아쉬움과 노력을 감수할 가치가 있으니까.
+ 추신: 이 글을 쓰려고 검색을 하다가 작가님이 텀블벅에서 새책 <애욕의 한국 소설>을 위해 펀딩을 하신 걸 발견했다.
아이고 아쉬워라. 알았다면 참여했을 텐데. 내가 지금 한국에 없으니 종이책 못 보는 것도 서러운데... 이 책은 꼭 이북으로도 출간되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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