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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by Jaime Chung 2021.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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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며칠 전에 심너울 작가의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를 읽고 느낀 감상을 올린 적이 있다.

2021.11.29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우리나라 SF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심너울 작가의 단편. 사실 나는 SF를 무척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우주선의 구조나 낯선 외계인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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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퍽 재미있어서, 심너울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보다가 에세이집인 이것,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를 선택했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심너울 작가가 참 귀엽고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다.

자신이 과거에 쓴 작품을 돌이켜보며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이라면 이런 것을 이러이하게 바꿀 텐데' 하는 생각이야 누구야 하는 거지만, 혹시나 자신이 과거 작품에서 다른 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은 인격적 발전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에 수록된 <정적>에는 농인들의 비영리 재단 카페가 등장하는데, 청인인 주인공인 농인인 주인공이 고맙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 소설을 발표했을 때는 자부심도 느꼈지만 몇 개월 후에는 그 자부심만큼 커다란 민망함과 후회를 느꼈다고 한다.

글 속 곳곳이 끼어들어 있는 시혜적인 면모를 인식하게 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청인인 주인공이 수어를 배우려고 할 때 농인인 주인공이 고맙다고 하는 장면이라든가. 왜 그게 고마운데? 대체 왜 나는 그게 괜찮은 대화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한 소설에 나오는 모든 문장이 작가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건 아니고, 고맙다는 말 또한 맥락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 그 맥락은 청인이 농인에게 수어를 배움으로써 무언가를 베푼다는 것처럼 보인다.

(...)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어떻게 인식의 한계를 넘어, 내 세상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인물로 쓸 수 있을까?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면서 재미까지 있는 완벽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는 꿈은 꾸지 않는다. 그건 작법이 아니라 마법의 영역에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 고민이 유의미한 성과를 조금이라도 달성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 나는 이 일에서 약간이나마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 작가는 엄청 웃기다. 과장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게 취향만 맞는다면 정말 빵빵 터진다. 예를 들어서 저자가 시범 PT를 받아 본 이야기에서

시범 PT가 끝나고,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초기형 로봇처럼 비틀거리면서 트레이너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때요, 할만한가요?"

"그럴 리가요! 제 꼴을 보셨잖아요. 전혀 할만하지 않아요. 제가 품었던 불안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걸 알겠네요. 보세요, 불안은 상당히 고등한 인지 기능이라구요. 미래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겪을 고통을 예측해야 하니까요. 근데 운동을 하는 동안엔 모든 감각 신경이 고통을 울부짖으니 뇌의 고등 인지가 모조리 셧다운 되네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게 불가능하거니와, 다른 사람들도 제각기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저를 신경 쓰겠어요. 허, 참."

할만하지 않다는 발언 뒤의 이야기를 정말로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니면 이런 건 어떤가.

위의 꼭지에서 애초에 심너울 작가를 헬스장에 끌고 간 심완선 작가의 집에 놀러가 그곳의 풍경을 보고 놀라며 자신의 집과 비교해 보는 맥락이다.

심완선은 제자리에 물건을 넣어두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의 정리 철학은 내 연약한 두뇌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괴로운 개념이라 상세하게 설명하기가 힘드니 사례로 보이도록 하겠다. 한번은 그의 집에 놀러 갔는데, 나는 내가 일종의 모델하우스에 잘못 들어오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 좁은 공간에 수많은 물건들이 무시무시한 효율과 일관성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기계적이고 차가운 인간 소외 현상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것에 질서의 미학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나의 정리 철학은 우주의 수명을 늘린다. 우주는 모든 에너지가 쓸데없는 열에너지로 화하고 모든 입자가 균등하게 퍼져 그 어떤 변화도 없는 궁극적 열평형의 순간이 도달했을 때, 즉 엔트로피가 최대치가 됐을 때 죽는다. 그리고 우리 사람이 움직일 때, 세포 내에 ATP의 형태로 저장된 화학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되고, 그중 대부분의 에너지는 폐열이 되어 발산한다. 움직잃수록 우주의 죽음이 앞당겨지는 것이다! 정리는 우주의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며, 나는 우주를 지키고 있다. 나의 의도는 고귀하다. 누가 이 완벽한 열역학적 논리를 공격할 수 있겠나?

자신의 깨끗하지 못하고 정리정돈이 습관이 되지 않은 집 상태를 변명하기 위해 엔트로피와 열역학, 우주까지 주워섬기다니. 진지하게 허풍을 떨어서 더 웃기다.

 

이런 유머가 취향에 맞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에세이니까 아주 편하고 쉽게 읽을 수 있다. 나는 리디북스에서 1만 5백 원 주고 구입했는데 돈이 아깝지 않았다. 

위의 인용한 문단들을 보면서 빵빵 터졌다면 이 책도 츄라이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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