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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김휘빈, <웹소설 작가 서바이벌 가이드>

by Jaime Chung 202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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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휘빈, <웹소설 작가 서바이벌 가이드>

 

 

2013년에 데뷔를 해서 지금까지 웹소설 판에서 살아남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저자가 웹소설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서바이벌 가이드'를 준비했다.

나는 웹소설을 쓰려는 건 전혀 아니지만, 평소에 웹소설을 심심풀이로 자주 읽기 때문에 이 주제가 흥미로워서 한번 읽어 보았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의 목표와 범위를 이렇게 설정했다.

완전히 처음부터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면 기초 작법서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배우고 싶다면 시나리오 작법이나 캐릭터 소설 쓰는 법에 대한 책이 다수 존재한다. 다만 웹소설이 가지는 특징과 호흡에 맞춘 작법서는 아직 없다.

이 책은 웹소설 쓰는 법에 중심을 두고 있으나 일반적인 작법서는 아니다.내 개인적인 경험을 근거로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어떤 정신적 위험이 있는지, 어떻게 해야 꺾이지 않는지'에 중심을 두고 썼다.

나는 아주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웹소설에 대해 뭔가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랜 기간 웹소설의 시장성과 대중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작가로서 나 자신의 성향에 대해서도 탐구헀으며 개인지 및 합동지 출간 같은 독립 출판도 여러 번 진행해 보았다. 이전부터 전자책 매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해 오랫동안 정보를 수집하고 행사에 참여해 왔고, 직접 전자책을 제작해 본 경험도 있다. 작가로서도 나는 만족할 만큼 성공했으며 주변에 장르소설과 일반 도서 편집자들, 유통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장르소설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있어 여러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웹소설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알려 주고 싶다.

 

전반적으로 저자가 이 웹소설 계에 대해 잘 알고, 또 이제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 웹소설 작가 지망생)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조언을 해 주고자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고 훈훈하다.

자신이 이미 겪어 봤으니 후배들은 좀 더 쉽게 길을 갈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주는 것. 선배로서 참 바람직한 자세다.

 

저자의 통찰력도 놀랍다. 내가 그걸 강하게 느낀 건 로맨스소설에 대한 설명 부분이었다.

로맨스소설이 보수적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저자의 말을 들으니 납득이 되었다.

먼저 로맨스소설은 기본적으로 성인 여성을 위한 장르다. 정확히는 기혼 여성을 위한 장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관계자들은 늘 로맨스의 핵심 소비층이 40~50대 여성이라고 말해 왔는데 이는 1980년대에 할리퀸 시리즈를 읽던 세대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관계자나 작가들, 독자들 사이에서도 "로맨스소설은 보수적"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외국에서도 로맨스소설은 기혼 여성, 그중에서도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있는 장르이다.

로맨스소설은 순수하고 정신적인 사랑만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로맨스소설에 대해 편견을 가진 남성들이 실제로 로맨스소설을 접하고 가장 충격 받는 부분은 남자주인공의 성적 매력을 평가하는 장면이나 섹스 장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표현 수위는 가벼운 것부터 과격한 것까지 다양하게 있지만 어쨌든 로맨스소설에서 섹스 묘사는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맨스소설은 성인 여성을 위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

마무리하자면 로맨스소설은 낭만적 공상에 기반한 장르가 아니다. 현실의 벽을 아는 여자들이 환상이라는 벽돌로 완벽하게 쌓아 올린 성이 바로 이 협의의 로맨스다. 협의의 로맨스를 쓸 생각이 있다면 이런 욕망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허황된 꿈이나 환상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며, 무척 현실적인 성공과 권력, 인정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하는 장르리므로 섣부른 편견을 안고 손대지 않길 바란다.

나는 로맨스소설에서는 여주가 남주의 성적 매력이나 외모를 평가하고, 또 여주가 연애할 수 있는 대상(남주와 서브 남주들 포함)들이 언제나 여주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려고 하고 그들에겐 그녀가 거의 삶의 이유인 듯한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에 굉장히 전복적인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보수적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냥 '즐기기만' 하는 (성적인 의미를 포함해) 자유분방한 여주가 있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상 필연적으로 남주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있으니까. 그들이 굳이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배타적인 둘만의 관계를 성립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둘만의 사랑 말고 폴리 아모리처럼 완전히 급진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이상향으로 묘사하는 로맨스소설이 몇이나 될까? 아주 적을 것이다).

 

어떤 장르의 웹소설을 계획하거나 쓰고 있든, 웹소설이라고 하면 누구나 흔히 가장 먼저 떠올리는 편견이 있을 것이다. 글을 써서 쉽게 돈을 번다든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나 소재라도 돈을 위해 그냥 써갈기면 독자들이 좋다고 할 거다 등등. 정말 그럴까?

- 몇 시간 만에 며칠 치 일을 하고 논다.  → 틀렸다.
- 상사도 없고 잔소리도 없다. → 모든 독자가 당신의 상사다. 게다가 모두 요구 사항이 다르다.
- 편하게 집 안에 틀어박혀 앉아서 일한다. →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건 맞다. 그러나 모든 재택 근무자들이 그렇듯 이들은 집 밖에 나가지 못해 건강을 위협받는 사람들이다. 1주일 동안 대문 밖으로 못 나가는 자체 유폐 생활은 사람의 육체와 정신 건강을 해친다.
- 따뜻한 아랫목에서 → 당신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면 부모는 당신이 얼마를 벌어도 번듯한 직장 없는 방구석 폐인으로 보며 "집 안ㅇ에 있으면서 왜 이것도 안 하냐"고 잔소리를 할 것이다. 한창 집중하고 있을 때 방문을 벌컥 열고 청소나 심부름을 시킬 수도 있다. 독립했다면? 당신의 생활은 모두 당신이 관리해야 하며 여기에도 큰 에너지와 시간이 들어간다.
- 1,000만 원 → 소수의 이야기다. 내가 본 웹소설계 작가 벌이는 다음과 같다. 상위 1%, 100명 중 한 명은 월 1,000만 원 정도는 쉽게 번다. 최대 억 단위까지도 올라가는 유동성 높은 계층이다. 두 명은 900만~600만 원 정도로 번다. 열 명은 500만~300만 원 정도로 번다. 스무 명은 100만 원 전후로는 번다. 나머지는 밥값도 못 번다. 한국 경제보다도 더 허리가 없는 극단적인 부익부빈익빈 시장이다. 현실적으로 노려 볼 만한 것은 10% 안에 드는 것이겠고, 실제로는 '밥값도 못 버는 축'에 속할 가능성이 더 높다. 자신이 1~2% 안에 당연히 들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신입사원이 '취직했으니 이제 대표나 임원진만큼 벌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1%도 매달 같은 금액을 버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자영업자이며 프리랜서임을 잊지 말자.

 

프리랜서라 상사도 없고 강제되는 규칙도 없어서 편할 거라는 건 정말 말 그대로 마음 편한 생각에 불과하다. 꼭 웹소설 작가가 아니더라도, 어떤 분야에서든 프리랜서를 꿈꾸는 분들이라면 아래 책처럼 프리랜서의 현실을 정확히 잘 알려 주는 정보를 접하실 것을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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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특히 프리랜서들 중에서도 예술계 종사자라면 더더욱 멘탈 관리를 잘해야 한다. 저자도 이 책에서 특히 정신 건강을 챙기고 심리적 안정을 꼭 의식적으로 돌볼 것을 당부하는 말을 많이 한다. 여기에서 후배에 대한 애정도 많이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웹소설의 특성상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분석하는 부분도 나에겐 인상 깊었다.

저자는 이를 "문장은 간단하게, 쓸모없는 수식은 적게, 전개는 빠르게"라고 요약하는데, 독자들이 웹소설을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여유롭게 읽는 게 아니라, 출퇴근길(등하교길), 또는 일이나 공부/작업 등을 하며 틈틈이, 그리고 퇴근/하교 후 휴식을 위해, 잠들기 전에 잠시 읽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세하게 묘사할 필요도 없고 그런 걸 독자들이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저자가 드는 예시처럼,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그는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펼칠 게 아니라 "그는 슬펐다."라고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웹소설에 특화된 글쓰기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책을 참고하시라.

 

나는 웹소설을 쓸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책을 꽤 흥미롭고 재밌게 잘 읽었다.

웹소설이라는 험한 길을 나아가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하며 등을 토닥이고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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