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그렇다. 요즘 들어 심너울 작가에게 빠져 버린 나는 이 단편집도 사서 읽어 보았다.
2020.10.26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2021.11.29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2021.12.03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어쩜 각 단편집의 주제가 하나같이 21세기에 제일 핫한 과학적/윤리적 이슈들인지. 마치 과학 교과서 각 챕터 끝에 '더 생각해 봅시다' 뭐 이런 제목이 달린 코너에 나올 법한 이슈들만 골라 쓴 것 같다(칭찬이다).
몇 편만 소개하자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노인 소외가 주제이다. 아주 안타까우면서도 씁쓸하다.
그런데 나도 왜 사람들이 전자기기(그러니까 예컨대 인공지능 스피커)에 직접 말을 하는 식으로 조작하고 싶어 하는 건지 모르겠다.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뭘 들고 옮기는 상황이라든가)이라면 모르겠는데 도대체 왜 평소에도 전자기기에 말을 걸어야 하는 건지. 목 아프고 부끄럽지 않나?
개인적으로 나는 애완동물이 없어서 룸메이트의 고양이가 마치 이해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을 하는 게 너무 어색했다.
그런데 동물도 아니고 사물에 말을 건다고? 아, 제발... 나는 이렇게 소외되어 낙오될 운명인가 보다.
그다음으로 소개할 것은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인데, 아주 작은 분교를 배경으로 인간의 '친구'가 되어 주는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인공지능이 정말 인간의 벗이 될 수 있을 만큼 똑똑해질 수 있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은 심지어 똑똑하지도 않다. 몇 가지 정해진 말을 되풀이하는 게 전부.
그래도 소녀는 이 로봇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이 로봇을 아낀다. 글쎄, 사람들은 이미 동물들(인간과 비교해 지능이 높지도 않은 존재들)과 친구가 되고 아끼고 사랑해 주지 않는가.
지능이란 건 애초에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닐지도 모른다. 소설 속 인물이 짚어 내듯이, 우리 인간은 마음이 슬프면 새가 '지저귄다'라고 하지 않고 '구슬프게 운다'라고 한다. 우리의 감정을 자연물, 사물에 이입하는 것이다.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기 위해서라면 로봇이 그렇게까지 지능이 높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또 내가 정말 좋아했던 건, SF적이기라기보다는 약간 사회학적에 더 가까운 느낌을 주는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이다.
이 단편소설의 주인공은 이혼을 하고 혼자 된 50대 남성인데, 집안일을 하기 싫어서 집에 제때 안 들어가고 회사에서 뭉개는 그런 이다.
그는 집안일을 해 주거나 밥을 차려 줄, 그리고 섹스를 해 줄 여성이 없어서 아주 곤란해하던 차에 여성가족부테어 주최하는 간담회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길고양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생각해 보시라.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지만, 아이고 고소해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그 유명한 쌍둥이의 역설을 모티브로 삼고 인간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인간 수명의 연장을 소재로 삼은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
한 쌍의 쌍둥이 쪽 한쪽, 손위 형제(형이나 언니)가 빛의 속도로 운행하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갔다고 치자. 우주선 안에 있는 손위 형제 입장에서는 지구의 시간이 느리게 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손위 형제가 10년이나 60년쯤 후에 지구로 돌아오면, 지구에 있던 동생이 오히려 형보다 늙어 보일 것이다(동생에게는 시간이 그만큼 빠르게 흘렀으므로).
그런데 만약에 동생이 나이도 먹지 않고 불멸하는 존재라면? 그러면 손위 형제가 우주에 오래 나가 있다 와도 충분히 (늙지 않고서) 기다려 줄 수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설정이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 볼 만한 것은, 우리가 정말로 불멸하게 된다면 시간을 더 유용하게 쓰게 될까? 모든 것(지식이든 기술이든) 다 통달하고 잘하게 될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흠...
위에서 소개한 세 편 말고도 동물의 인권과 육고기를 소재로 삼은 <<한 터럭만이라도>도 나는 무척 재밌게 읽었다.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은, 흠, 국내 굴지의 모 기업이 떠오른다. 물론 저자는 "순수한 창작의 산물"이며 "만약 실제와 비슷한 점이 있으면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초광속 통신의 발명>은 단편집을 시작하는 데 적절한 짧고 유쾌한 단편이다. 사람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하면 이렇게 미치는구나 싶기도 하고.
<감정을 감정하기>는 과연 인간의 감정이 온전히 뇌의 영역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신체의 피드백이 없다면 우리가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그러니까, 만약에 심장이 마구 쿵쾅쿵쾅 뛰지 않는다면 설레거나 두려움을 느낀다는 걸 우리가 인지할 수 있을까?
<거인의 노래>는 고전 SF에 가깝다. 토성의 작은 위성 엔켈라두스에 도착한 우주 비행사들 이야기인데, 솔직히 나는 정통, 고전 SF는 잘 이해를 못하는 편이라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전반적으로 정말 흥미로운, (대체로) 소프트 SF 소설 단편집이었다. 이런 거라면 몇 편이고 읽을 수 있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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