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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앤 헬렌 피터슨, <요즘 애들>

by Jaime Chung 202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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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앤 헬렌 피터슨, <요즘 애들>

 

 

세상에, 정말 놀랍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를 관찰해서 (저자 본인이 밀레니얼 중 나이 든 편에 속한다)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읽으면서 내내 공감했다. 미국 밀레니얼들도 이렇게 사는구나. 인터넷에서 본 <오징어 게임>에 대한 평에서 사람들은 같은 사회 내의 (예컨대 상류층과 하류층 사이의) 차이를 다른 사회 간의 (예컨대 한국과 미국의) 차이보다 더 크게 느낀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보다.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돼 있다.

1장 - 베이비부머의 번아웃
2장 - 가난부터 배우는 아이들
3장 -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4장 - 좋아하는 모든 게 일이 되는 기적
5장 - 일터는 어쩌다 시궁창이 되었나
6장 - 일터는 왜 아직도 시궁창인가
7장 - 전시와 감시의 장, 온라인
8장 - 쉬면 죄스럽고 일하면 비참하고
9장 - 엄마처럼 살기 싫은 엄마들

나는 아이가 없고 가질 생각도 없기에 육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주위에서 들리는 것이나 인터넷 글만 봐도 9장 내용이 지금 한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끊임없이 번아웃을 느낀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제가 안 좋으니 노동 시장도 안정적이지 않고, 그러니 미래를 위한 저축은 꿈도 못 꿀 정도로 어렵고, 간신히 학자금 대출이나 갚고 근근히 살아가기 바쁘다.

우리는 충분히 노력하면 자본주의와 능력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의 체제 안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아니면 적어도 그 안에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자랐다. 그러나 2010년 말에, 사건이 일어났다. 일에 치여 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체제 자체가 망가진 상황에선 승리할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대공황 이래 처음으로 다수가 부모보다 못살게 되는 세대다.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던 계층 상향 이동의 경향이, 우리의 생애 주기상 경제적으로 가장 주요한 시기에 하필 제자리로 돌아갔다. 우리는 평생 우리의 재정 생활을 위축시켜 온 학자금 대출에 — 채무자당 대략 3만 7천 달러로 추산되는 부채에 —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우리 중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치열하고 선망받는 꿈의 일자리를 찾아 미국에서 가장 비싼 동네로 이사한다. 우리는 이전의 노동 인구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저축하고, 월급의 훨씬 많은 부분을 육아와 월세(운 좋게 계약금을 마련한 경우 주택 융자 상환)에 쓰고 있다. 우리 중 가난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으며 중산층은 자리를 지키느라 애면글면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생은 원래 힘든 거다", "나 때는 말이야..." 같은 말을 하며 한심해한다. 진짜 힘든 게 뭔지도 모르면서 징징댄다는 투다.

하지만 지금 밀레니얼 세대가 처한 상황을 만들어낸 게 바로 베이비부머 세대다.

해커는 <위험의 대이동(The Great Risk Shift)>에서 "개인 책임의 십자군"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는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문화﹒사회 전역에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정부는 자리를 비켜준 채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성공하거나 실패하게 놔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기몰이 중이었다. 해커의 책은 이 개념이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 보여준다.

해커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생각의 핵심은 "위기를 다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체제의 오만한 개입이나 그에 관한 지불 비용 없이, 스스로 경제적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이 미국인들에게 더 낫다"는 개념이었다. 다시 말해 고등 교육을 위한 탄탄한 자금 지원의 형태든, 회사에서 운영하는 연금의 형태든, 위기를 공유한다는 건 주제넘은 일이고 지나치게 관대한 처사이며 불필요한 조치라는 말이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서 보수의 보편적 입장이 된, '사회 안전망이 사람들을 게으르거나 배은망덕하거나 방종하게 만든다'라는 생각이었다(따라서 본질적으로 비미국적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해커는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함으로써" 보험이 "생산적이고 신중하게 행동할 동기를 앗아갔다"라고 설명한다. 

베이비부머 시대에 사회 안전망이 많이 해체된 사실을 상기해 보시라.

위기의 이동이 초래한 또 다른 형태의 착취는 직업 훈련에 따르는 부담을 개인의 몫으로 떠넘기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많은 회사가 대학 학위 유무에 상관없이 노동자들을 고용했고, 특정 직무에 맞게끔 훈련시키면서 급여를 지급했다. 공장에서는 포장 담당으로 고용된 사람이 훈련을 받아 감독관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회계 회사의 접수 담당이 CPA를 딸 수도 있었다. 광산 회사를 예로 들면, 지역 대학의 공학 프로그램에 자금을 대고 학생들이 등록하도록 장학금을 설립함으로써 회사가 직접 직원을 교육시키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비용을 부담할 수 있었다. 위기, 즉 비용이 노동자가 아닌 회사의 몫이었다.

오늘날 대다수의 고용주들은 지원자들이 스스로 훈련의 부담을 지게끔 종용한다. 우리는 대학 학위, 자격증, 대학원 학위를 따려고 돈을 낼 뿐만 아니라 인턴십과 익스턴십(externship,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학외 연수 - 옮긴이) 비용도 지급한다. (수업으로 쳐주는 인턴십에서 무급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대학 학점을 위해 돈을 내는 형태든, 아니면 그저 무보수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든, 개인이 "직장에서 직접 자기 훈련비용을 댄"다는 점은 같다. 

이게 내가 요즘 기업에 대해 빡치는 포인트들 중 하나다(다른 하나는 아래에서 언급할 것이다). 기업이 인재를 훈련할 생각은 안 하고 인턴이니 서포터니 하는 그럴싸한 이름을 갖다 붙이고서는 노동력만 쏙 빼먹고 버리려고 한다.

11개월 계약직 같은 것도 비슷하게 치사한 짓이다. 정직원으로 고용하면 돈을 더 줘야 하니까 1년을 못 채우고 11개월만 이용해 먹고 나 몰라라 한다. 

개인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그리고 기업을 위해 스스로를 개발하는 데 개인 돈을 쓰게 만드는 짓이라니. 무급 인턴 따위를 하면서 알아서 생계를 책임지라는 무책임한 짓이 어디 있나?

기본적으로 (부모님께 지원을 받는다든가, 이전에 다른 일로 돈을 모아 뒀다든가 하는 식으로) 웬만큼 생계를 부지할 수 있는 여유가 있지 않으면 경험조차 쌓지 못하니...

 

요즘 세대에서는 거의 모든 이들이 대학을 가기 때문에, 대학 졸업장 없이 직업(여기에서 말하는 직업은 '남들이 좋게 생각하는' 직업, 예컨대 의사, 변호사 등을 말한다)을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대학 졸업자들과 차이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뿐이다.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이력서를 꾸미는 데 집중한다. 학교 내외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대입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판단된다.

밀레니얼은 자신을 걸어 다니는 이력서로 완전히 개념화한 최초의 세대다. 부모와 사회, 교육자들의 보조 아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적 자원"으로 여겼으며, 경제 활동에서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압박은, 어떤 대가를 치르든 대학에 가기만 하면 번영과 안정을 누리는 중산층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인식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에 짓눌린 채 능력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수백만 명의 밀레니얼들이 증언하듯, 주위 모두가 믿는 신조라고 해서 그게 반드시 사실인 것은 아니다.

요즘 한국 고등학생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무슨 전형이 이렇게 많고 학생부도 챙겨야 할 게 이렇게 많은지, 대학 가기 어렵겠구나 싶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내고, 무슨 활동에 참여해서 뭘 배웠다고 이력서에도 써내야 하고 등등. 최근 대입 전형 방법이 업데이트 안 된 지도 오래된 나이지만, 그 어려움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뭐든 최단 코스, '이상적인 코스'를 딱 정해 놓고(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 진학, 그 이후 바로 취업하고 연애해서 결혼하고 애를 낳고 등등) 거기에서 벗어나면 (그 사유가 개인적인 이유든, 질병이든, 뭐가 됐든 간에) 낙오자 취급 하는 경향이 심해서 대학 못 갔다고, 또는 자신이 바라는 만큼 좋은 대학에 못 갔다고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수능 좀 못 봤다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첫 취업을 했을 때부터 지금도 여전히 제일 싫어하는 개념이 있다. 그것은 "열정 페이". 

이 말 자체가 싫다는 게 아니고,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기업, 고용주들이 싫다. 몸과 정신을 갈아넣어 일을 해도 그에 대해 충분한 보수를 해 주지 않으면서, 일의 보람이니 개인의 실현, 열정이니 하는 멋져 보이는 말을 이용해 사람들을 후려치는 게 싫다.

참 안타깝게도, 그러나 놀랍지도 않게("실망했지만 놀랍지는 않다(disappointed, but not surprised)" 짤을 떠올려보시라) 이런 후안무치한 고용주들은 미국에도 있다. 아니, 전 세계에 있다.

그리고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평생 단 하루도 일을 하지 않게 된다"류의, '좋아하는 일을 해라'라는 생각을 주입하는 말을 믿는다. 이 말은 멋지고 무해해 보이지만, 사실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유해한 말이고 개념이다.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일해서 이익을 얻는 사람이 누굴까? 그거야 고용주다. 노동자들이 자기 일을 정말 좋아해서 추가적인 보수 없이도 알아서 스스로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주말에 놀지 않고 출근을 한다든가, 아니면 퇴근 후에 개인적으로 연구를 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나 제안 사항을 만들어 오면, 결국 돈을 받지 않고도 일을 자진해서 하는 셈이니 고용주 입만 찢어지게 좋은 일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스스로 살을 깎아먹으며 일을 한다면 (즉, 추가적인 보수를 받지 않고 무료 노동을 한다면) 고용주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를 요구한다.

다른 이들이 정당한 보수를 요구하면? "어, 너 이 일 하기 싫어? 그럼 그만둬. 너 말고도 이 자리 채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 하면서 그들을 무시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나은 보수라든지, 더 좋은 노동 환경이라든지, 더 좋은 사원 복지라든지 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못한다. 또한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 그러니까 '남들이 다 가지고 싶어 하는 멋진 일자리'를 갖기 위해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니 노동자들끼리의 연대는 흐릿해진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말은, 이론적으로는 어떤 일이든 좋아만 한다면 "좋아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 "좋아할 수 있는" 일은 눈에 띄는 직업, 사회적﹒문화적 자산에 보탬이 되는 직업, 자영업이거나 직속 상사의 감독을 적게 받는 직업이다. 사회에서 이타적으로 간주되는 직업(교사, 의사, 국선 변호사, 사회복지사, 소방관)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멋지게 묘사되는 직업(공원 관리인, 수제맥주 양조인, 요가 강사, 미술관 큐레이터)일 수도 있고, 언제 어떤 일을 할지 완전히 자율적으로 정하는 게 가능한 직업일 수도 있다.
좋아할 수 있는 직업은 사람들이 무척 탐을 내기에, 그만큼 지속 불가능하다. 너무나 적은 자리를 두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보상 기준이 점차 낮아져도 별다른 여파가 없다. 당신만큼 열정을 불태우며 당신의 자리를 대체할 만한 누군가가 언제나 있기 떄문이다. 복지를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도 된다. 연봉을 입에 겨우 풀칠할 수준으로 낮춰도 된다. 특히 예술계라면 더 문제없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 작가에게 돈을 주는 대신, 역으로 작가가 웹사이트에 이름을 올릴 기회를 얻기 위해 무급으로 노동하는 경우도 많다. 한편으로 고용주들은 구직자의 최소 자격 조건을 상향시킨다. 업무에 필요한 조건인지는 상관없다. 더 높은 학력, 더 많은 학위, 더 많은 훈련을 지닌 자만이 후보에 오를 수 있다.

그리하여 '멋진' 직업 및 인턴십은 수요-공급의 법칙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직업 자체가 근본적으로 보람이 없거나, 알량한 보수에 비해 너무 많은 노동을 요구해 있던 열정도 사그라지게 만든대도,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그 일을 해낼 사람으로 어렵게 뽑혔다는 사실 자체가 그 일자리를 더더욱 열망의 대상으로 만든다.

회사 입장에서는 참으로 완벽한 시나리오다. 거의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일자리를 채울 수 있다. 필요 이상의 스펙과 굉장한 의욕을 지닌 지원자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다. 이것이 겉보기에는 탄탄했던 2010년대 말, 취업 시장에서 회사들이 '좋아할 수 없고' 보수가 적은 일자리를 채우느라 — 아무리 쉬운 업무여도 대부분의 일자리가 대학 학위를 요구했으므로 — 고전한 이유를 설명한다. <애틀랜틱> 전속 작가 어맨다 멀(Amanda Mull)이 지적했듯, 회사 측에서 구인을 위해 쏟은 노력은 점점 더 큰 돈을 투자하며 멋진 직업 광고를 만들고, 그 광고를 완벽하게 다듬어 나가는 형태로 나타났다(지원자들에게 더 좋은 연봉과 복지, 유연성을 제공하는 대신).

 

이 책이 짚어 내는 '빡치는 포인트'를 여기에서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저자의 지적은 정확하다.

'라떼는 말이야...' 같은 소리나 내뱉는 꼰대들에게도, '우린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한탄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밀레니얼 세대와 이제 성장하는 Z 세대들도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하고 연대해서 사회적으로 더 나은 체계, 그러니까 아웃소싱 대신 직접 고용을 더 많이 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이라든가 노동 조합에 대한 담화라든가 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실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안 그러면 노동자들은 더 적은 월급을 받고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노력할 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도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단결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

밀레니얼들을 과소평가하고자 한다면, 마음 단단히 먹어라. 우리는 잃을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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