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애너벨 크랩, <아내 가뭄>
호주/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부 기자 출신이자 정치적 쿠킹 쇼인 <키친 캐비닛>의 진행자인 저자가 '왜 남자들에게는 아내가 있는데 여자들에게는 아내가 없나'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쓴 책이다.
여기에서 '아내'란 집안일도 해 주고 애가 있으면 애도 키워 주어, 개인이 전일제 일에 전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이를 말한다.
따라서 여자들도, 이론상, '아내'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이 전일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일을 해 주고 자녀 양육까지 도맡아 해 주는 남성을 찾기가 쉬운가?
그래서 여자에게는 '아내'가 없다, 여자들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아내가 부족하다는 뜻의 <아내 가뭄>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만약 당신은 전일제 근무를 하는데 배우자가 시간제 근무를 하거나 아예 일을 안 한다면, 축하할 일이다! 당신에게는 '아내'가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아내란 집 안 여기저기 쌓여가는 무급 노동을 더 많이 하려고 유급 노동을 그만둔 사람이다. 무급 노동에는 청소, 자잘한 수리, 배관공이 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기, 배관공이 안 오는 이유를 기다리려고 1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든 채 인내심 테스트하기 등이 속한다. 이런 종류의 노동은 일단 자녀가 추가되면 일의 양이 무섭게 증가한다. 그리고 집안일 리스트에는 공손하고 예의 바른 젊은이로 키우기, 식초와 중탄산나트륨을 섞은 반죽으로 얼룩 제거하기 같은 매우 전문적인 일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아내'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아내가 남자든 여자든 중요한 것은 아내는 끝내주게 좋은 직업적 자산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에 대한 재미있는 농담 중 하나로) 오후 3시는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자 그 누구에게도 편한 시간대가 아니다. 그런데 전일제 근무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은 아내 덕분에 그 오후 3시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고도 아이들이 주는 기쁨과 보람을 맛볼 수 있다. 아내가 있다는 것은 야근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진짜로 일이 많아서든, 급하게 처리할 업무가 있어서든, 아니면 실은 버즈피드를 읽고 있으면서도 신임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가짜 일감을 띄워놓고 컴퓨터를 노려보기 위해서든 상관없다. 그리고 아내들 중에는 일하는 아내도 많지만 대개는 시간제 근무를 하거나 예기치 못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탄력 근무를 한다.
호주는 의외로(?) 남성이 가계를 부양하는 중심 인물로 여겨지는 전통적 부양자 모델이 깊이 뿌리박힌 곳이다. '남성이 전일제 근무로 생활비를 벌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흔히 떠올리는 '가정의 모습'이다.
하지만 여자들도 아내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게 현실이다. 그러면 집안일과 애들 키우기에 시간과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여성 운동이 몇십 년간 그토록 노력하고 또 최근에는 여성들이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도 많이 실현되었는데도 왜 여성들은 여전히 힘든 걸까?
글쎄, 가정과 직장 생활 둘 다 잘해 내도록 기대되는 것은 오직 여성뿐이라는 점도 문제의 일부가 아닐까?
직장에서도 성공하고 집안일도 잘하는 것 같은 여성에게 "어떻게 그걸 다 해요?" 같은 질문을 (감탄을 담아) 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남성들에게는 절대로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남성들은 직장 일만 잘하면 된다고 여기니까.
그래서 실제로 가정 내에서는 아내와 좋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자녀들과 유대감이 부족하더라도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그게 남성들에게 흠이 되지는 않는다.
지난 50년간 양성평등 혁명이 일어났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혁명적인 부분은 주로 '유급 여성 노동자의 증가'로 기업의 게산 장부 한쪽에서만 일어났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가정에서 여전히 무급 노동을 하고 있으며 남성들은 여성의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특히 일하는 엄마에게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마치 직업이 없는 사람처럼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만약 그 두 곳에서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양쪽 모두에서 실패한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이는 일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호소하는 끊임없는 긴장과 불안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상황을 조금 달리 생각해 보자. 남성들이 그렇게 일에만 매달려서 잃는 건 없을까?
아내와의 좋은 관계? 자녀들과의 유대감? 삶과 일의 균형?
이제는 남성들도 직장에만 붙어 있을 게 아니라, 거기에서 잠시 손을 놓고 집 안, 가정에도 신경을 쓸 시간이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여성들을 일터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캠페인을 벌이고 개혁 방안과 사상적 기반 등은 연구해 왔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남성을 일터 밖으로 불러내는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젠더와 노동에 대한 유구하고 분통 터지는 담론에서 우리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터에서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가정과 일터를 연계시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만 패자라고 가정해 버리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모두가 패자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여자들, 일터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남자들, 아버지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이들......
다시 말해, "여자들이 가사 노동의 대가를 못 받는다고 통탄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남성들에게 가사 노동을 별로 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남성들에게 가사 노동을 권할 수 있을까? 글쎄, 한 가지 좋은 예는 노르웨이가 보여 준다.
(...) 1993년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를 도입하여 남성들이 휴가를 낼 수밖에 없게 만든 나라가 바로 노르웨이다. 노르웨이에는 진작부터 인심 후한 유급 육아휴직 제도가 있었고 1977년부터는 아버지들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쓰는 아버지들은 고작 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노르웨이 정부는 1993년 표준 유급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이 아빠여야만 수당의 상당 부분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이 제도는 부모기 초기에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 생게부양자라는 기존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노르웨이는 재정적 헤택을 '안 쓰면 소멸하는' 식으로 바꿔서 휴직을 하지 않으면 재정적으로 오히려 손해를 보게 한 것이다. 그래서 최소 몇 주 동안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은 충동과 실천하는 아버지 노릇이 대개의 경우처럼 충동하기보다는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다.
오늘날 노르웨이의 아버지들 90퍼센트가 육아휴직을 쓰고 있다. 그리고 육아는 물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10년 전 아버지들보다 하루 평균 1시간 더, 1970년 당시 아버지들보다는 하루 평균 2시간 더 많다.
노르웨이의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선택권이 보장되고 장려책과 초보 부모일 때부터 육아에 참여할 기회만 주어지면, 남녀 모두 육아를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노르웨이가 갖추고 있는 완벽한 보육 시설도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러니까, 남성들로 하여금 육아휴직을 써야만 육아휴직 수당을 받을 수 있게 한다면 부모기의 초기, 그러니까 이제 막 아이를 갖게 되고 낳았을 때 육아에 남성들을 더욱 많이 참여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유대감도 키우기 더욱 쉬울 것이고, 일단 유대감이 자라기 시작하면 아이가 보고 싶어서라도 아버지들은 야근을 줄이고 최대한 칼퇴를 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전일제' 아내이든 '시간제' 아내이든 육아 부담이 줄어드니 여성도 이득이다.
남성 육아휴직이 더 자연스럽게 사용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도 사회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일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육아에 참여하고 집안일을 (현재보다) 더 많이 하는 남성들이 많아지면, 또 많아지기 위해서 그런 남성들을 '어딘가 부족해서 직장 경쟁에서 밀려는 사람' 정도로 보는 시각도 거둘 필요가 있다.
사실 무엇이 더 먼저라고 하기가 애매한 게, 여성 운동이 이루고자 하는 양성평등은 결국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자유와 평등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집안일이나 양육을 하면 여성 배우자와 더 평등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는 또한 남성을 얽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다는(또는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이다.
무엇이 더 먼저 온다고 딱 잘라 말할 순 없고, 둘 다 같이 오고, 같이 와야 하며, 그럴 수 있도록 문화적, 제도적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상사가 되어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육아휴직을 승인할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나는 이를 기쁘게 허가할 것이다.
그런 자리에 오르지 않아도 주위에서 육아휴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하며 그들을 도울 것이다.
미래의 평등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니까.
전반적으로 통찰력이 가득하면서 유머도 잃지 않은 이 책을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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