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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황효진,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by Jaime Chung 202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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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황효진,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기자 출신으로 독립 출판, 잡지, 팟캐스트, 뉴스레터까지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만들어 온 저자가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책. 기획은 어떻게 하는지부터 시작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용한 팁을 제공하니 이제 막 독립 출판, 잡지, 팟캐스트, 뉴스레터 등을 시작해 보려는 이들에게 상당히 도움이 될 듯하다.

책은 이러한 목적에 충실히 부합하므로 내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생각은 없다. 내가 직접 그런 콘텐츠 제작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뭐가 좋은 팁이고 아닌지, 어떻게 하는 게 더 나은지 말을 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니까. 나는 저자가 이 책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자신이 아는 한 가장 좋은 조언을 해 주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 조언들에 대해 논의하지는 않겠다. 이 책은 e북도 있고 리디 셀렉트에서도 이용 가능하므로(물론 아마 도서관에도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누구나 이 책을 직접 접해서 그 조언이 쓸모 있는지 없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이 자리에서 주절주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콘텐츠'라는 용어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나는 이 용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랄까, 너무 자본주의적이라고 해야 하나? 전통적으로 어떤 직업이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것에는 '콘텐츠'라고 하지 않는다. 예컨대 소설이나 신문 (요즘엔 다들 뉴스라고 하지만) 기사, 그림을 '콘텐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각자 자기만의 영역이 있다고 여겨져서, 그에 마땅한 이름(소설, 신문 기사, 그림 등)으로 부른다. '콘텐츠'라고 하면 어떤 플랫폼을 미리 상정하고 그 위에서 전개되는 것을 부르는 듯하다. 가장 흔하고 적절한 예가 유튜브와 틱톡이다. 그 플랫폼 위에서 먹방을 하든, 동물 짤을 보여 주든, 댄스 커버 영상을 포스팅하든, 이런저런 논문과 기사를 참조하는 비디오 에세이를 써서 공개하든, '콘텐츠'라는 말은 그 내용물을 평가하지 않는다. 뭐든 그 플랫폼을 채워서 시청자 또는 이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OK다. 그런 점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플랫폼의 이익을 위해, 그 내용물의 질 또는 내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것들을 전무 뭉뚱그리는, 철저히 플랫폼 입장에서 만들어진 용어라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입장에서야 그렇다 쳐도, 그 미디어를 생산하는 (이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어쨌든) 사람 입장에서 스스로를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는 건 너무 그 플랫폼에 영합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 싶다. 차라리 먹방이면 먹방, 사이버렉카면 사이버렉카(그들이 스스로를 이렇게 부르지는 않겠지만) 하는 식으로 자신이 만드는 미디어의 장르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게 낫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를 합니다', '10대, 20대의 트렌드를 발빠르게 전하는 뉴스레터를 만듭니다' 하는 식으로. 이게 더 정확한 표현 아닌가.

'콘텐츠'라는 말은 또한 '소비'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그 점도 내가 보기엔 마뜩치 않다. 소비가 뭐지? 왜 감상이 아니고 '소비'일까? 책이나 영화, 그림 등은 감상한다고 할 수 있는데 유튜브 영상이나 틱톡 영상, 팟캐스트, 뉴스레터 등을 감상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린다. 아마 후자들은 '예술'의 영역으로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예술이 무엇인지 게이트키핑(gatekeeping)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후자들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고 마땅히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최선을 다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든 유튜브/틱톡 영상이나 팟캐스트, 뉴스레터 등이 있을 것이고 존재한다. 하지만 '콘텐츠'라는 말은 그 모든 노력의 결실을 단순히 자본주의적 '소비'의 대상으로 바꾸어 버린다. 실제로 그것들을 얻기 위해 돈을 한푼도 내지 않는다 쳐도, 그것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즉 감상해야 할 작품이 아니라 그냥 플랫폼을 채우는 '내용물'('콘텐츠'라는 말의 일차원적인 뜻)에 불과하다. 그냥 슬쩍 보고서 '하하 재밌네' 웃은 후 머리에서 지워 버리는 그런 내용물. 팟캐스트를, 뉴스레터를, 잡지를 '감상'하면 안 되는가? 간단하게 말해, 내 말은 예술과 '콘텐츠'를 분리하는 게 싫다는 거다.

게다가 '콘텐츠'라고 하면 소비와 직결되므로 어디까지나 그걸 '소비'해 주는 사람들을 예민하게 의식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있다. 아무리 유익해도 사람들이 안 보는 유튜브 영상이나 팟캐스트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창작자가 그걸 받아들이는 대중을 고려하고 어느 정도 마음을 연 채로 의사소통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대중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며, 대중의 취향을 모두 다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콘텐츠'는 아무래도 소비자들에게 영합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세상에는 그저 그걸 하는 게 좋아서 하게 되는 일도 있는 것이다. 글을 쓰든,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뭘 하든 간에, 일단 하는 사람이 재미가 있어야 남들이 그걸 봐주든 안 봐주든 해낼 힘이 생긴다. '그냥 그것이 즐거워서 한다'를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 헨리 다거(Henry Darger, 생전에 1만 5천 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나 아무 곳에도 공개하지 않고 무명으로 사망한 예술가.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이곳 또는 이곳을 참조하시라)의 경우가 될 수 있을 것이나, 굳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아도 '일단 내가 하고 싶어야, 하는 재미가 있어야 할 수 있다'라는 사실은 블로그에 글 한 번만 써 보았어도 누구나 알 것이다. '콘텐츠'라는 말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 즉 창작자에게서 그런 기쁨을 지운다. 소비를 위해 끊임없이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고, 그것이 대중의 취향에 부합해야 한다고 창작자를 압박한다. 왜냐? 플랫폼은 그 안에 '내용물'이 충분히 많아야지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인 발상이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이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게 아니니 당연히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쉬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 창작물을 만들어 낼 자원이 창작자 안에서 고갈되고 창작자가 번아웃을 느낀다고 플랫폼이 이들을 배려해 주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않는 이는 도태되고, 새로 유입된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더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된 것은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 안에 하고 싶은 말은 있으니까. 그게 유튜브 쇼츠가 되었든, 잡지가 되었든, 팟캐스트가 되었든, 뉴스레터가 되었든, 블로그가 되었든, 자기 표현은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을 드러낸다면 우리는 그것을 읽거나 보면서 '아, 세상에는 이런 삶/사람/생각도 있구나' 하고 배우게 될 것이고, 사회적인 면에서 더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다만 '콘텐츠'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자신을 그 플랫폼 안에서만 생각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콘텐츠'라는 모호한 말을 쓰는 대신,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을 정확히 표현했으면 좋겠다. 팟캐스트든 무엇이든, 어떤 미디어 또는 플랫폼을 통해서든 글을 쓰면 작가, 비평을 하면 비평가, 일러스트를 그리면 일러스트레이터 등등. 나는 창작자라면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데, 어떤 플랫폼에 의존하는 건 전혀 긍지 높은 일이라 할 수 없다. 플랫폼이나 미디어는 바뀌어도 창작자라면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계속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콘텐츠' 따위의 용어로 자신의 작품을 정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각가는 이미 자기가 만든 조각 작품이 없어지더라도 여전히 조각가다. 왜냐하면 그 조각을 만든 능력이 그 안에 있으므로. 어떤 이유에서든 조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또는 조각이 아닌 다른 분야의 예술을 하고 싶다면 땅바닥에 나뭇가지를 이용해서라도 예술을 할 것이다. 미디어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 정도 자부심이 있다면 그는 자신을 '콘텐츠 크리에이터' 같은 빈약한 어휘로 정의하지도 않을 테다.

만약 이 책의 제목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는 법'이었다면, 그러니까 꼭 저 표현이 아니더라도 '콘텐츠'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르게 풀어서 썼다면, 그리고 책 내에서도 '콘텐츠'라는 용어로 독립 출판, 잡지, 팟캐스트, 뉴스레터 등의 미디어를 묶어서 표현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접하는 느낌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콘텐츠'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고 길게 늘어놓았지만, 어쨌거나 어떤 용어를 쓰건 간에 독자 여러분이 자신 안에 있는 이야깃거리,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표현해 낼 방법을 찾으시게 되기를 기원한다. 이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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