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캐서린 켈로그, <1일 1쓰레기 1제로>
매일매일 쓰레기를 ‘제로(0)’로 하지는 못해도 그에 가깝게,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취지로 쓰레기 줄이는 법을 알려 주는 책. 이 책을 어떻게든 구해서 읽고 싶었는데 내가 이용하는 전자도서관에는 없어서 아쉬워하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발견해 바로 읽어 보았다. 그리고 이것을 내 돈 주고 사서 읽지 않았다는 점에 안도했다. 책이 쓰레기라는 건 아니고, 따지고 보자면 따지려 들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다. 이제 내 나름대로 비평을 시도해 보겠다.
일단 ‘완벽함’, 그러니까 쓰레기양을 완전히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옳다. 완벽함을 추구하려다 보면 작은 행동을 경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까짓 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회의감에 휩싸일 테니까. 그러면 아예 작은 행동조차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제로 웨이스트’를 한다고 해서 정말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목표일 뿐인 데다, 이 목표는 현대사회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총체적인 점검과 기반 설비의 대대적인 변화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다. 하지만 정책이 변하고 개인과 집단, 기업의 실천이 한데 어우러진다면 그 목표에 점점 가까워질 수는 있다.
제로 웨이스트와 탄소 배출 제로는 혼동하기 쉽지만,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데 초점을 둔다. 물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면 필연적으로 탄소 배출량도 줄어든다. 제로 웨이스트는 지속 가능한 삶에서 더 나아가, 꼭 실현되어야 할 순환 경제를 향한 움직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제로 웨이스트는 실천이 선행되어야 한다. 제로 웨이스트란 한마디로,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선형 경제에 대한 반란이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바로 여러분이다.
다른 유형의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거나 재활용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꼭지도 편집자가 꼼꼼히 확인해 각주로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설명해 준 것은 참 잘한 일이고 무척 유용하다.
하지만 저자는 쓰레기의 전문가이지, 다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는 게 불편하다. 예컨대, ‘#37 피부 관리’ 꼭지에서 저자는 ‘파라벤’을 “내가 피하는 화장품 성분” 목록에 올리며 “파라벤은 주로 제품의 방부제로 사용된다. 유방암과 불임 등을 유발하며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위에 언급한 물질들은 아주 소량만 사용하면 치명적인 해를 끼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떤 것도 매일 피부에 바르고 싶지 않다. 피부는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유기 조직이므로 우리 몸에 무엇을 바르고 사용할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파라벤은 화장품에 주로 방부제 성분으로 사용되는데, 화장품에서 방부제를 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화장품이 쉽게 상한다. 그렇게 되면 피부에 안 좋은 것은 물론이고 사용할 수가 없으니 곧장 쓰레기통행이다. 방부제를 안 넣어서 미생물이나 박테리아가 판을 치는 화장품을 쓰는 게 피부에, 그리고 지구에 좋을 리가 없다. 조금만 쓰고 버려야 하니 쓰레기가 더 많이 발생할 테니까 말이다. 방부제는 적당량, 각 국가의 식약처(나 그에 상응하는 기관)에서 정한 기준에 맞춰 사용하기만 하면 문제가 없고, 낭비할 일도 없을 것이다.
대한화장품협회는 ‘이슈 추적, 진실은 이렇다! <파라벤>편’에서 파라벤이 널리 알려진 오해와 다르게 인체에 사용하기에 안전하다는 사실을 여러 국가의 예시를 들며 설명했다 (여기). 내가 화장품에 대해서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인 폴라 비가운도 인터뷰에서 ‘화장품에 함유된 파라벤이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고 말했다 (여기). 폴라 초이스(Paula’s Choice) 웹사이트에도 여러 논문을 참고해 파라벤을 적정량 사용하면 안전하다고 써 놨다(여기). 일개 기업도 (물론 궁극적으로는 자기네 제품을 팔기 위해서겠지만) 파라벤의 안전성을 주장하기 위해 논문을 이렇게나 인용해 가며 글을 쓰는데, 저자도 뭐가 위험하다고 말할 거면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쓰레기 관련 책에 화장품 관련 논문이 각주로 들어간다면 그것도 이상하지만, 애초에 쓰레기 관련 책에, 쓰레기 전문가가 화장품 이야기를 마치 전문가인 것처럼 한다는 게 더 이상하다.
또한 저자는 “나는 화장품을 고를 때 투명한 유리 용기를 가장 먼저 찾는다. 투명한 유리는 색이 들어간 유리보다 재활용이 더 많이 이루어진다. 색이 들어간 유리는 그다음이다. 어쨌든 유리는 품질 저하 없이 영구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라고 하는데, 저자는 재활용을 상정하고서 제품을 고른다는 걸 알겠다. 하지만 어떤 화장품 성분들(예를 들어 비타민 C나 알부틴)은 자외선을 막을 수 있는 갈색 유리병에 담겨 있을 때 그 유효 성분의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여기). 같은 맥락에서 대부분의 식용유들이 산패 방지를 위해 어두운 색의 병에 담긴다. 그런 점은 알고 계시나요?
파라벤에 대한 쓸데없는 공포를 유발하는 발언도 문제거니와, 화장품업계를 낮잡아보는 시선도 나는 마음에 안 든다. 아무리 화장품업계(’뷰티업계’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화장품이나 미용에 관련된 상품이 진실한 아름다움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가 여성의 욕망과 상상력, 그리고 플라시보 효과를 바탕으로 한 업계로서니, 과학이나 각 국가 행정부의 관리 및 감독이 전혀 닿지 않는 곳이라 생각하는 건가? 아무렴 특정 화장품을 그냥 예뻐 보이려고 갈색 병에 담았겠습니까?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은 전문가의 의견을 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자는 또한 바디 로션을 비롯해 여러 화장품을 집에서 직접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는데, 당연히 방부제 없이 만든다. 저자는 “집에서 로션을 직접 만들면 한두 달 정도 냉장 보관하며 사용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로션을 만드는 것도 귀찮은데, 그걸 냉장 보관을 해서 한두 달밖에 못 쓴다고요? 들인 노동에 비해 너무 결과가 초라한 거 아닙니까. 뭐, 지구를 지켜야 하니까 어느 정도 품이 드는 건 감수한다 치자. 그래도 다시 한번 안전(박테리아와 미생물의 번식 문제)과 또 다른 낭비(방부제를 이용하지 않는 대신 냉장고를 이용) 문제가 불거진다. 냉장고에 내용물이 많으면 냉기가 잘 돌지 않고, 전력 소모량도 늘어난다. 이는 무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소개하는 ‘냉장고 전기 요금 절약법’에 나오는 내용이다(여기). 파라벤이든 뭐든 방부제를 썼으면 애초에 냉장고에 넣을 필요가 없을 텐데.
게다가 저자가 대체물로 제시하는 홈메이드 화장품의 레시피도 따지고 보면 딱히 지구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저자의 방식대로 ‘끈적이지 않는 바디 버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코코아버터 3/4컵’과 ‘홍화유 1/4컵’이라고 한다. 미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기 한국에서 ‘국산’ 코코아버터와 홍화유를 구입하긴 어려울 거다. 홍화유는 검색해 보니 국산이 몇 개 나오긴 하는데, 코코아버터는 없다. 그나마 이건 덜 이국적인 재료들이다. ‘색조 립밤’을 직접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밀랍 1큰술, 올리브유 3큰술, 알카넷 뿌리 1작은술’이다. 알카넷 뿌리를 어디서 구하는지는 둘째치고 난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자초’라는 약재라고 한다). 그냥 기존에 쓰던 립스틱을 조금 잘라서 색 넣는 데 이용하면 안 되나요? (물론 수제 립밤을 만들 때 대체로 그렇게 한다. 그게 알카넷 뿌리를 구하는 것보다 쉬우니까.)
저자는 ‘들어가며’에서 농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농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제철 음식보다 더 맛있는 건 없다고 했다. 거기에 ‘이국적인’ 물건을 구입해 탄소 배출량을 늘리는 데 드는 죄책감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내가 이 책에 ‘탄소 상쇄’ 꼭지가 따로 있다는 얘기를 했던가?). 스크롤을 조금만 위로 올려 보시면 ‘탄소 배출 제로’에 대한 저자의 말을 인용한 게 보일 것이다. 아무리 제로 웨이스트와 탄소 배출 제로가 동의어가 아니라지만, 이게 위선, 많이 봐줘도 아이러니가 아니면 뭔가? 동네 마트에 털레털레 걸어가 또는 차를 타고 가서 방부제가 (적당량) 들어간 바디 로션을 사서 쓰고 통을 재활용하는 게, 굳이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 벨기에, 페루에서 수입된 코코아버터나 인도산 홍화유를 이용해 바디 로션을 직접 한두 달마다 만들어 쓰는 것보다 낭비가 덜하지 않을까? 적어도 탄소 발자국은 적을 것 같은데. 모든 이들이 바디 로션을 비롯해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써서 이미 만들어진 바디 로션들은 다 폐기하게 되는 것이 저자가 바라는 ‘제로 웨이스트’일까? 난 정말 모르겠다.
화장품에 대한 이야기 하나만 더 하고 싶다. 저자는 “얼굴 각질을 제거할 때는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 있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팥이나 세안용 곡물, 설탕, 소금 등 천연 재료로 만든 각질 제거제를 찾아보자.”라고 했다. 천연 재료는 입자 크기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피부에 더 자극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완전히 무시하는 걸까? (위니님이 스크럽에 대해 쓰신 Q&A 글 참고) ‘천연’이 ‘인공’보다 늘 우월한 게 아닌데 왜 천연을 무턱대고 추천하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병이나 다른 모종의 이유로 피부 관리를 설렁설렁 할 수 없다. ‘인공 비즈’가 천연 재료보다 피부에 훨씬 자극이 덜해 더 낫다는 걸 우리가 이미 과학적인 사실로 아는데, 그걸 포기하고 피부 자극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피부가 튼튼하지 않은 이들은 어쩌고요? 어떤 이들은 외적으로 남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직업을 가졌거나, 피부에 컴플렉스가 있거나, 기저 질환이 있어 피부 관리를 조금 놓았다가는 그 영향을 고스란히 본인이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화장품 전문가가 아닌 저자가 하는 소위 ‘조언’을 받아들여 ‘문명의 이기’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 좋은 대의명분이지만, 그걸 위해 우리가 가진, 또는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니 혹시나 이걸 보고 ‘그래도 나는 환경을 위해 내 미용을 포기할 수 없어… 난 너무 이기적인가 봐. 흑흑 😢’ 하는 독자가 없길 바란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실천하면 되는 거니까.
책의 다른 분야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방법들을 많이 알려 주는데, 옷은 중고 상점에서 구입하기, 물병 들고 다니기, 손수건 이용하기, 자전거 타기 등이 그 예이다. 이런 것들이라면 부담스럽지 않고 쉽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속옷을 중고 상점에서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저자 말대로,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것을 ‘개인의 지속 가능성’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사람마다 할 수 있는 범위와 내용이 다르다. 자신의 일정, 의지력, 게으름 정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자신뿐이다.
뭔가 저자의 말을 역시 저자의 말로 받아치는 느낌이 들지만, 결론은 그렇다. 우리 모두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나는 이것밖에 못해’라며 부끄러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이나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라면 아마 이미 노력하고 있을 테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전용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유명인이나 백만장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경우엔, 음, 전용기는 작작 타시고 요트도 그만 타시길 바랍니다. 그게 아니라면, 하던 대로 잘하시면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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